아메리칸 어패럴의 전 이사였던 라이언 홀리데이는 그의 저서, “그로스 해킹”(2015, 길벗)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로스 해커는 전통적인 마케팅 교본을 버리고 그것을 검증 가능하고, 추적 가능하며, 확장 가능한 방법만으로 대체하는 사람이다. (…) 마케터들이 ‘브랜딩(branding)’, ‘마인드 공유(mind share)’와 같은 모호한 개념들을 추구하는 반면, 그로스 해커들은 이용자와 함께 끊임없이 성장을 추구하며, 그들이 제대로 했을 때 이용자는 더 많은 이용자로, 그렇게 해서 들어온 이용자는 더더욱 많은 이용자로 이어진다.
이 글 이전에 썼던 9개의 글은 이 한 문단을 몇 배로 늘여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아니, 더 심하게 말해서 하나의 문구를 수십 배로 늘여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전통적인 마케팅 교본을 버리고”. 마지막이니만큼 가장 하고 싶었던 질문을 하나 하겠다.
당신이 이 연재를 읽기 시작한 데에는, 그리고 여기까지 지속해온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로스해킹에 대해 정확히 알고 싶어서, 새로운 마케팅 방법을 찾고 싶어서, 마케팅에서의 똑같은 실패를 두 번 세 번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그도 아니면 단순히 제목에 이끌려서, 혹은 관성으로.
그러나 지금까지 읽었던 것들은 모두 잊어버려도 좋다. 어떤 마케팅을 하든 이 질문 하나만 새기고 있으면 된다. 다시 한 번 얘기하는데, “나는 전통적인 마케팅 교본을 진정으로 버릴 수 있는가”
그동안 알아온 수많은 중소기업이 다 그랬다. 어떤 곳은 네이버 검색 광고에, 어떤 곳은 페이스북 광고에, 어떤 곳은 고객을 귀찮게 하는 상품 노출에, 어떤 곳은 무분별한 출혈 경쟁에 두 손 두 발 다 묶여 있었다. 이런 방법들이 지금도 아예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들이 한두 가지의 마케팅 도구에만 목을 매고 있었으며, 그 도구를 선택했던 것에 아무런 맥락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왜 그랬을까. 그런 마케팅 방법이 기업을 오히려 위기로 몰아넣는다는 사실을 몰랐을까. 아마 몰랐을 것이다. 왜냐하면, 여태까지 잘 돼 왔고 앞으로도 잘 될 거라 생각했으니까. 한두 가지의 도구만으로도 충분히 시장에서의 입지를 다질 수 있었으니까. 그래, 과거에는 운에 의해서도 그런 일이 가능했다.
변화해야 하고 폭을 넓혀야 하며 전략과 전술을 함께 가져가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 소수의 기업들조차 현실에 안주했던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그들은 변화를 두려워했다. 하던 대로 하는 것이 최선이며 변화에 드는 비용은 불필요하거나 위험한 것이라 생각했다. 굳이 변화하지 않아도 위기가 찾아오지 않는 상황이 그들을 점점 더 고이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고객은 그들의 이름을 머릿속에서 지워갔다. 아니, 애초에 이름으로 기억할 필요도 못 느꼈을 가능성이 높다. 고객의 머릿속에 남은 이름은 기껏해야 다음과 같았다. “네이버 키워드 검색에서 1위를 차지한”, “쿠팡 상단에 노출된”, “값싼”, “어디선가 본”, “스팸함에 처박아둔”, “홈페이지를 예쁘게 꾸민” 등등. 당연히 여기에는 기업의 진짜 이름도, 기업이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도, 기업의 제품이 가진 특징도 포함되지 않았다.
위기는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매출은 곤두박질쳤고 고객들은 발길을 끊었으며 심지어는 도산 위기에까지 처했다. 어떤 원인에 의해서인지 알기 어려웠기에, 최신의 것으로 도구를 바꾸는 데에만 급급했고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끄자 싶었고 그럴수록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 위기를 기회로 받아들이고 진정으로 혁신을 꾀하며 성장의 발판을 마련한 기업은 극소수였다.
가혹한 얘기지만 당연한 결과였다. 위기의 순간에도 관성을 버리지 못했으니까.
그래서 나는 단정한 것이다. 어쩌면 당신도, 전통적인 마케팅 교본을 버리지 못할 것이라고. 지금 잘 나가고 있다면 더더욱.
그러나 잘 나갈 때일수록 버리면서 가야 한다. 그것도 아주 큰 것을 버려야 한다. 빌 비숍의 저서, “핑크펭귄”(2021, 스노우폭스북스)에는 이런 얘기가 나온다.
방 안의 온도가 22︒C인데 누군가 온도를 22.5︒C로 올려놓았다 해도 사람들은 차이를 느낄 수 없다. 별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충분히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하지만 누군가 실내 온도를 33︒C로 올려놓으면 어떻게 될까?
다 버릴 수 있는 결심이 섰는가. 그러나 또 당신은 이렇게 물을 것이다. “어떻게 새로운 해법을 찾죠?” 너무 걱정하지 마라. 답은 의외로 간단하니까. 아마 듣고 나면 어이가 없을지도 모른다. 당신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판매자가 고객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라도 안다. 그러나 대다수는 이 말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하더라도, 너무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는 앞선 장들에서도 몇 번씩이나 한 적이 있다. 그럼 이번에는 이야기의 방식을 한 번 바꿔보겠다.
단순히 카페를 가거나 음식을 사 먹거나 옷을 사 입는, ‘구매 활동’을 할 때만 고객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카페에서 종업원의 서비스를 겪을 때도, 어제 산 잠옷을 입고 꿈을 꾸고 있을 때도, 몇 년 전에 산 노트북으로 글을 쓰거나 게임을 하고 있을 때도 당신은 고객이다. 고객이라는 역할은 당신의 일상을 지칭하는 또 하나의 이름이다.
이번엔 질문을 몇 가지 해보자. 당신은 가격은 싼데 1년만 쓰면 갈아치워야 하는 노트북을 원하는가. 계속 따라다니면서 전단지를 나눠주는 사람을 반기는가. 종업원을 하대하는 카페 사장이 좋은 인상을 주는가. 식탁은 제대로 치우지도 않고, 혹은 몇 번이나 벨을 눌렀는데도 답하지 않고 새 손님을 맞이하는 데에만 혈안이 된 식당을 가고 싶은가. 야근을 하면서도 제대로 된 수당을 받지 못하는 편의점 직원을 볼 때 마음이 불편하진 않은가.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당신은 기업이, 가게가 보여주는 모든 모습 앞에서 고객이라는 것이다.
당신이 다른 기업을 대할 때 그렇듯이, 다른 고객들도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당신 기업을 끊임없이 감시하고 있다. 그리고 만약 감시해야 할 필요성을 더 이상 못 느낄 정도라고 느끼면 즉시 관심을 꺼버린다. 그러니 기업은 모든 면에서 고객을 생각하고 고객의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이건 쉽다. 왜냐하면 당신은 여태껏 한 번도 고객이 아니었던 적이 없기 때문에.
버릴 거라면 다 버려라.
대신, 고객을 위해서 버려라.
이재인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