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보이는 생각 정리법
마인드맵의 개념을 안 것은 20년도 넘었다. 어느 과목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학교 수업 시간에 배운 적이 있다. 숙제를 하기 위해 마인드맵을 그려보기도 했다. 대학에서도 마인드맵을 활용한 도표를 자주 접했다. 회사를 다니면서는 신입 사원 연수, 직급 교육 과정에서 전지에 마인드맵 비슷한 것을 그렸다.
새로울 것도 놀라울 것도 없는 마인드맵에 관심이 생긴 것은 2년 전, 첫 책을 쓰면서였다. 고등학생 때 대학 논술 입시를 준비하면서 글의 개요를 짜는 법, 서론-본론-결론, 문단 구조, 중심 문장과 뒷받침 문장을 공부했지만 대개 그렇게 배운 공부법은 습관이 붙지 않는다. 10년이 훌쩍 지나 에세이를 쓰기 시작하면서 별다른 준비 과정 없이 글을 썼다. 지금 돌아보면 완성된 한 편의 에세이가 아니라 일기였다.
영감이 오면 신나게 쓰고 떠오르는 생각이 없으면 글쓰기가 지지부진했다. 혼자 브런치나 블로그에 글을 쓸 때는 간헐적인 영감에 종속된 글쓰기도 괜찮았다. 문제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후부터였다. 마감이 정해진 글을 쓰면서 더 이상 ‘영감’을 기다리고 앉아있을 수 없게 되었다. 어떻게든 하루에 한 장, 일주일에 한 챕터 분량을 써야 마감 전에 한 권의 책을 완성할 수 있었다.
반짝 하고 떠오르는 문장이 없어도 꾸역꾸역 되는대로 글을 썼다. 6개의 챕터로 구성된 1장을 완성한 후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다. 엄청난 칭찬을 받을만한 원고는 아니었지만 이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며칠 뒤, 담당 편집자로부터 메일이 왔다.
돌리고 돌려서 쓴 장문의 피드백이었다. 세심한 배려가 담긴 표현을 걷어내고 건조하게 요약하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명확하게 전달되지 않는다.”였다. 내 글이 이 정도였나? 다시 읽어보니 편집자의 피드백이 구구절절 다 맞는 말이었다. 초보 작가의 어리숙한 원고를 받고 한참을 고심하며 메일을 썼을 편집자님을 생각하니 미안해지기까지 했다.
명확한 메시지를 담으면서도 재미있고 글맛이 살아있는 글을 쓰려면 설계도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도서 팟캐스트 <책읽아웃>을 듣다가 김하나 작가의 마인드맵 활용법을 듣고 “바로 이거야!” 무릎을 쳤다.
그동안 왜 마인드맵을 그려볼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김하나 작가는 글을 쓸 때도, 팟캐스트 방송 준비를 할 때도 늘 마인드맵을 그린다고 했다. A4 1장으로 정리된 마인드맵만 있으면 복잡한 일도 금방 정리할 수 있고, 정신없이 진행되는 방송 중에도 마인드맵만 있으면 해야 할 말을 놓치지 않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책 <말하기를 말하기>에도 마인드맵 예찬이 이어졌다.
팟캐스트를 진행할 때면 나는 꼭 A4 용지 한 장을 준비해서 마인드맵을 작성한다. 가운데엔 초대 작가 이름을 적고, 거기서 뻗어 나온 가지에는 그분의 저서들에서 기억해야겠다 싶은 것들을 써둔다. 초대된 작가님들은 내가 적재적소에서 본인의 여러 책 중 어느 부분을 인용하는 것을 놀라워하는데, 그게 다 마인드맵 덕분이다. 내가 만약 기억해둘 내용을 다 글로 써서 녹음실에 가지고 간다면 대화 중에 그것을 찾기란 어려울 테고 흐름도 끊기고 말 것이다.
– <말하기를 말하기>, 김하나
나의 강점은 <실행력>과 <따라 하기>이다. 누군가 “이게 좋아요.”라고 했을 때 꽤 그럴싸해 보이면 일단 열심히 따라 해서 내 것으로 만든다. 그렇게 해보고 효과가 없으면 그만두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선 의심하지 않고 100% 흡수해보는 것이다..
마인드맵으로 에세이 원고 작업을 하니 놀랍게도 작업 속도도 오르고 글도 더 좋아졌다. 이후 편집자님의 피드백도 달라졌다. “읽으면서 정말 공감 갔고 작가님 일상을 따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글이 명쾌하고 재미있어요. 잘 읽혀요.”
가볍게 시도해본 마인드맵이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다른 일을 할 때도 일단 마인드맵부터 그리는 습관이 생겼다.
학생 때 논술 답안을 쓰며 꼬박꼬박 [서론-본론-결론]과 글의 구조를 썼지만 시험장을 나서면서 훨훨 날려버렸다. 그때는 생각의 설계도를 그리는 일이 귀찮고 답답하게 느껴졌지만 해야 한다고 하니까 억지로 꾸역꾸역 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필요해야 하게 되고, 아쉬운 사람이 우물을 파게 되어 있다. 직접 마인드맵의 효과를 체험해보고 나니 생각이 막힐 때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마인드맵을 그리게 된 것이다.
노트에 손으로 그리던 마인드맵은 점점 발전했고 지금은 디지털 마인드맵으로 정착했다. 그중 내가 가장 만족하는 프로그램은 [윔지컬]이다. 아래는 윔지컬을 쓰면서 발견한 마인드맵의 장점과 활용법이다.
마인드맵 장점 1.
마인드맵을 쓰면 복잡하고 방대한 내용을 한눈에 보기 좋게 정리할 수 있다. 중심 키워드에서 가까울수록 중요도와 연결성이 높고 멀어질수록 낮다. 정보의 위계를 볼 수 있어서 핵심 키워드부터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 마인드맵을 정리하는 과정은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이다. 실타래처럼 엉킨 생각과 정보를 시각화된 텍스트로 정리하면서 뇌 속도 정리된다. 마인드맵의 가지를 만들고 연결하고 수정하는 작업을 하면 뇌 속에서도 똑같은 작업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인간의 뇌는 무언가를 배울 때마다 변한다는 것이다. 무언가 새로운 내용을 배울 때마다 뉴런 사이의 연결 상태가 달라진다.
– <마음의 미래>, 미치오 카쿠
시각화된 정보는 기억하기 쉬운 구조가 된다. 마인드 맵을 그리는 것만으로도 정보를 잘 기억할 수 있게 된다.
마인드맵 장점 2.
마인드맵을 그리다 보면 키워드 간의 ‘관계‘를 계속 생각하게 된다. 이 키워드가 여기 붙어야 하나, 저기 붙어야 하나 고민하는 과정은 여러 개념 간의 구조를 분류하고 연결하는 작업이다. 딱 떨어지는 1:1 연결이 어려운 경우도 있다. 이럴 때는 이렇게 화살표를 이용해 관계를 표현하기도 한다.
** 회색 화살표와 텍스트로 키워드 간의 관계를 표현한다.
윔지컬 장점 1.
손으로 마인드맵을 그리다가 윔지컬로 갈아타게 된 계기는 워낙 악필인 글씨체 때문이었다. 내가 써놓고도 한참을 들여다봐야 무슨 단어인지 알 수 있다 보니 마인드맵의 장점인 <한눈에 쉽고 빠르게>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윔지컬은 여러 마인드맵 프로그램 중 가장 UI가 깔끔하고 사용하기 쉬웠다. 색감도 예쁘고 화살표 연결과 텍스트 정렬이 깔끔하다.
윔지컬 장점 2.
이건 모든 디지털 마인드맵에 포함되는 장점이다. 수정, 이동, 복사가 편하다는 것. 손으로 마인드맵을 그리면 개념 간의 연결 구조를 바꿀 때마다 지우고 다시 써야 하는 게 번거롭다. 디지털 마인드맵에서는 드래그로 연결을 바꿔주면 된다. 키워드를 떼어서 다른 곳에 붙일 때 “착-” 자석처럼 붙는 사용감도 좋다.
2015년에 에버노트를 사용한 이후로는 모든 메모를 디지털 텍스트로 남긴다. 그래야 검색이 쉽고 언제든 빠르게 찾아서 필요한 순간에 활용할 수 있다.
윔지컬도 에버노트처럼 [폴더 – 파일] 구조로 정리할 수 있다. 제목으로 검색도 된다.
폴더 안에 있는 마인드맵을 미리보기로 한 번에 볼 수 있는 점도 편리하다. 시각 정보는 경제적이고 효율적이다.
윔지컬 장점 3.
윔지컬을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는 노션과 연동된다는 것이다. 노션에 아래와 같이 임베드 형식으로 마인드맵을 볼 수 있다. 페이지를 넘기거나 새로 열지 않고도 확대할 수 있어서 내용을 확인하기 편리하다.
이렇게 쓰고 보니 윔지컬 직원 같으니 단점도 소개하겠다. 가장 큰 불편은 앱/웹 사용이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우선 별도의 앱이 없다. 웹으로 보는 것도 제한적이다. 네이버 웨일 브라우저에서는 링크가 열리지 않는다. 크롬 브라우저로 페이지가 열리기는 하지만 텍스트 입력이 안 된다. ‘나무’를 입력하면 ‘ㄴ나ㅏㅏ무무ㅜㅜ’ 이런 식으로 입력된다.
어쩔 수 없이 노트북으로 작업해야 해서 불편하다. 노트북 없이 가볍게 마인드맵을 그리고 싶을 때는 손으로 휘리릭 메모해두거나 노션에 적어두었다가 윔지컬로 옮긴다.
두 번째 단점은 유료 서비스라는 점이다. 일정 용량까지는 무료로 사용할 수 있지만 자주 사용하는 사용자라면 결국 유료 결제를 해야만 하는 타이밍이 온다. 워크 스페이스를 새로 만드는 편법도 있지만 통합 폴더 정리가 안 된다는 게 불편해서 결국 유료 결제를 했다. 한 달에 12달러로 5달러인 노션과 비교하면 꽤 비싸다.
그럼에도 윔지컬을 잘 쓰고 있는 건 장점이 워낙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회사 일을 할 때도 개인 작업을 할 때도 윔지컬로 마인드맵을 그리는 게 습관이 되었다.
이렇게 업무 흐름을 정리하기도 하고
이렇게 프로모션 페이지 기획안을 만들기도 하고
독서노트를 정리하면서 중요 내용을 발췌해서 적어두기도 한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건 독서 기록 정리와
글 개요 짜기이다.
마인드맵으로 생각 정리하는 습관을 만들고 나니 복잡한 개념과 프로세스를 정리할 때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마인드맵을 그리게 된다. 마인드맵으로 생각 훈련을 한 셈이다.
복잡성이 크고 방대한 경우에는 직접 마인드맵을 그려야만 정리가 되지만 간단한 정리는 머릿속에서 마인드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
다양한 일을 하느라 정신없고 도통 정리가 안 되는 기분이 든다면 마인드맵을 그려볼 것을 추천한다.
단단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