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사는 많은 자본과 시간을 들여서 게임을 개발하고 서비스한다.
일반적으로 많은 게임 프로젝트의 목표 시장은 해당 기업이 속한 나라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첫 번째 이유는 언어적 장벽이 있기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당연하게도 가장 먼저 내수 시장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얻어야 다른 시장을 고려할 수 있는 자본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특정 프로젝트가 해당 게임사가 속한 내수 시장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다면, 게임사는 그 시장에서 얻은 자본력으로 해외 진출을 꾀한다. 해외 시장을 개척하는 것은 하나의 게임 프로젝트로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같은 소스 코드와 같은 아트 리소스, 즉 내수 시장에서 이미 한번 사용했던 자원들에 언어만 추가로 제공함으로써 새로운 시장에서 새로운 게임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고, 그것으로 내수 시장에서 상품을 출시했던 것과 같은 수준의 추가 수익, 혹은 더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기회를 얻기 때문이다.
현지화의 사전적 의미는 ‘기업이 목표시장으로 하는 현지의 문화, 언어, 관습, 자연환경 등을 고려하여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과정’이다. 즉, 재화나 서비스를 가장 현지에 부합하도록 현지에 맞게 변화시키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현지화의 필요성에 대해서 느끼게 되는 순간이 해외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추가적인 언어 리소스를 제공하는 순간이고, 게다가 현지화라는 단어가 굉장히 추상적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쉽게 번역과 동일시한다.
자국 시장과 해외 시장의 가장 큰 차이점은 언어이고,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현지화와 번역을 동일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하지만 번역은 현지화의 방식 중 하나일 뿐, 현지화의 본질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그 본질에 가까운 것은 문화화다.
문화화는 현지화의 본질이라고 볼 수 있다. 즉, 현지화라는 것은 단순한 번역이 아닌, 각 목표 시장의 문화를 이해하고 수용하며 게임 프로젝트에 반영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현지화를 진행한다는 것은 문화를 반영하고, 그 시장의 특성을 반영하여 이용자들에게로 하여금 친밀감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며, 즉, 게임 프로젝트를 단순한 코드와 아트의 집합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유동적인 유기체로 본다는 것과 가깝다.
이러한 기반에 자리 잡은 문화화는 이미 많은 분야에서 이용되고 있고, 게임 업계에서도 다양한 모습으로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문화화에 대한 예시를 알아보자.
한국의 게임사 스마일게이트는 ‘로스트아크’에서 신규 직업 도화가를 출시했다. 해당 클래스는 붓과 먹물을 이용해 각종 기술을 펼치는 지원가형 클래스로, 10대 소녀의 외모를 하고 있지만, ‘요즈’라는 인간이 아닌 종족이며, 그래서 실질적으로는 성인이라는 설정을 지니고 있다.
로스트아크의 북미 서버는 아마존이 맡고 있는데, 설정상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아마존은 한국 서버의 ‘도화가’ 클래스를 추가하면서 짧은 치마를 입은 복장에 반바지가 추가되고 바지 길이가 길게 조정되는 등의 수정이 가해질 것이라고 공지했다.
즉, 북미가 동양보다 미성년자의 외모를 한 캐릭터의 성적 대상화에 더욱 엄격하기 때문에 수정을 통해서 문화화를 진행한 것이다. 비단 로스트아크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는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게임 이용자들의 환경에 맞춰 캐릭터의 인종이 변하기도 한다.
검열이라는 형태로 불리는 이런 종류의 의상 수정 등의 행위도 하나의 문화화로 볼 수 있다. 물론 이 형태의 문화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해당 검열의 근거가 목표 문화권의 이용자들에게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목표 문화권의 이용자들에게조차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문화화는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다.
한국의 게임사 넥슨의 메이플스토리는 다양한 나라에 게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눈에 띄는 건 나라 각각에 제공되는 직업과 맵이 다양하다는 것이다.
메이플스토리는 크게 두 종류, KMS와 GMS로 나뉜다.
KMS는 한국 서버를 뜻하고, GMS는 글로벌 서버를 뜻한다. KMS와 GMS의 콘텐츠 업데이트 간격은 평균 6개월 정도인데, 일반적으로 KMS에 콘텐츠가 업데이트된 후, GMS에 같은 콘텐츠가 업데이트된다. 하지만 KMS의 콘텐츠가 GMS와 완전히 똑같다고는 말할 수 없다. 기본적인 콘텐츠에 큰 차이가 있진 않지만, GMS는 KMS에는 없는 콘텐츠가 지원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하야토와 칸나는 일본 서버에서만 플레이할 수 있다. 하야토는 일본 전국시대와 에도 시대의 사무라이 문화를 배경으로 제작된 직업이고, 칸나는 일본 헤이안시대의 문화를 배경으로 제작된 직업이다. 중국 서버에서만 플레이할 수 있는 묵현이라는 직업도 있는데, 직업 스킬들이 동양 무술의 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이처럼 만약 한 문화권에 대한 이용자의 수요가 충분하다면, 목표 문화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 문화권의 특징을 잘 살린 캐릭터를 출시할 수도 있는데, 이런 경우를 개발적 관점에서의 문화화라 볼 수 있다. 해당 문화권의 독특한 특징을 잘 살려서 기획을 하는 그 과정 속에서 현지화 담당자는 기획팀과 소통하거나 제안을 하는 등의 역할을 맡게 된다.
한국의 게임사 스마일게이트의 성장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작품은 ‘크로스파이어’라는 FPS 게임이다. 하지만 크로스파이어를 한국에서 처음 선보였을 당시, 사실 돋보이는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스마일게이트는 좌절하지 않았고, 해외, 그중에서도 온라인 게임 시장이 급성장하던 중국으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현지화에 공을 들였다.
FPS 게임 대부분은 현실감을 높이기 위해 총기의 색상을 모두 검은색으로 통일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스마일게이트는 붉은색, 황금색 등 화려한 색이 들어간 무기를 등장시켰고, 동시에 중국 전통 의상 치파오를 입은 캐릭터, 중국풍 건물과 거리로 꾸며진 전투 공간을 선보였다.
이러한 현지화 작업의 결과로 크로스파이어는 중국에서 최고의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2008년 7월 서비스를 시작한 지 만 1년이 되지 않은 2009년 4월 동시 접속자 수 100만 명을 돌파했고 2010년에는 200만 명을 넘어섰다. 기네스북에 가장 많은 동시 접속자 수를 기록한 게임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이처럼 각 목표 시장의 문화를 고려하여 콘텐츠의 내용물을 변경하거나, 그 문화에 따른 신규 업데이트를 진행하는 것도 문화화의 한 종류다.
하지만 개발적인 관점에서 이러한 문화화는 가성비가 좋지 않다. 시간과 자본력을 들여서 개발했음에도 다른 나라에는 해당 결과물을 선보일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시장에서 사용할 수 없는 아이템을 개발하거나, 혹은 그 문화만의 특별한 것을 만든다는 것은 하나를 만들어서 많은 문화권에서 서비스할 수 있는 이점을 가져가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게임사는 이러한 문화화를 진행할까?
어떻게 보면 이러한 문화화는 해당 목표 시장의 문화를 존중한다는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이러한 문화화의 결과물들은 대체적으로 이용자의 환영을 받고 있고, 그렇기에 더욱 게임사들은 목표 문화권 이용자들이 선호할 만한 문화화를 진행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그만큼 문화화를 위해서는 추가적인 자금의 투자가 필요하고, 그것은 게임사의 이익이 줄어든다는 것을 뜻한다. 만약 문화화를 진행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사례를 알아보자.
2003년, Xbox용 대전게임 격투 초인이 종교적인 문제로 인해 판매를 중지하고 전 세계 매장에서 일제히 리콜하게 된 사례가 있었다. 그 결정적인 이유는 격투 초인에 사용된 BGM에 이슬람교의 성전 코란의 일부가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이용자들의 반발을 넘어서서 자칫 큰 문제로 번질 수 있기 때문에 사전에 반드시 삭제했어야 하는 사안이었으나, 삭제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발매된 일부 제품들로 인해 많은 소비자의 항의를 받게 되고 MS는 결국 전 세계 매장에서 전량 회수하게 된다.
즉, 문화화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위에서 서술한 어느 정도 선택의 성격을 띠는 문화화 요소도 있겠지만, 이처럼 필수적으로 진행했어야 하는 문화화 요소도 존재한다. 문화화가 해당 문화권의 존중이라면, 문화화를 하지 않는 것은 해당 문화권을 존중하지 않는 것으로도 곡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핵전쟁 이후의 세계를 배경으로, 머리가 두 개 달린 돌연변이 소가 등장하는 ‘폴아웃 3’는 소를 신성시하는 인도에서 발매되지 못했고, 남녀 캐릭터를 가리지 않고 자유로운 연애가 가능한 ‘매스 이펙트’는 동성애가 금지된 싱가포르와 이슬람 문화권에서 발매되지 못했다.
게다가 ‘포켓몬스터 시리즈’는 진화론을 긍정한다는 이유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금지되는 사례도 있었다.
위의 예시처럼 만약 문화화를 진행하지 않는 경우, 이처럼 특정 국가에서는 출시하지 못하게 되거나, 결국은 그 게임을 리콜해야 되는 사태까지 발생한다.
이에 따라 게임사는 철저한 지역별 지역별 게임 문화에 대한 이해를 선행하여, 각 목표 시장에 대한 철저한 현지화(문화화) 전략을 세우지 않으면 시장에서 외면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게임사는 다른 문화권에서도 세부적인 게임 요소를 온전히 즐길 수 있도록 전달하고, 현지 정서에 반감을 줄 수 있는 내용은 없는지, 게임 그래픽이나 환경이 제작 의도대로 받아들여지는지 확인해야 한다.
또 타국의 문화, 종교, 역사 등에 대해 현지 퍼블리셔나 기관 등을 통해 정보를 얻어 게임에 반영해야 하고, 현지의 인프라 수준, 문화적 선호사항, 문화적 금기 및 심의규정, 각 문화의 민족이 지닌 색, 모양, 물건, 관습 등에 대한 선호도에 따라 현지화를 진행해야 하며, 마지막으로 다른 문화권과 상충되는 금기 사항과 법률, 관습에 대한 분석도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다른 문화권에서 성공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글로벌 시장의 성과가 중요해진 만큼 많은 게임사들이 현지화에 노력을 기울이지만 대부분 번역을 하는 선에서 멈춰있는 경우가 많다. 어느 업체는 현지화 부서를 만들어놓고도 현지화에 대한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현지화 담당자들에게 부서 마케팅을 시키는 등 보여주기식으로 운영하기도 한다.
물론 현지화 담당자는 번역은 물론 각 목표 시장의 문화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하기 때문에 전문성을 가지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만약 현지화의 본질을 이해하고, 각 문화권의 요소들을 고려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면, 그 게임사는 많은 문화권에서 환영받는 프로젝트를 만들고 서비스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들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도 현지화 담당자의 역할이자, 능력이다.
병욱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