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에 옷이 가득한데 입을 옷이 없다?
한 20년 전이었을까요? 이화여대 근처의 어떤 매장을 자주 다녔는데요. 그곳에서는 보세옷을 다양하게 판매도 했고, 한편에 옷을 무덤처럼 쌓아 올려놓고 kg 단위로 판매하는 코너가 있었습니다.
신기해서 사람들이 몰려들고 다들 빙 둘러서서 두더지처럼 옷을 파헤쳐 가면서 골랐는데, 저도 당시에 보물찾기 놀이하듯 옷을 골랐던 기억이 납니다. 어떤 경우에는 상당히 괜찮은 기본템을 고르기도 했었죠.
그때 kg 당 판매를 하는 의류를 보면서 새로운 경험이기도 했고, 의류가 이렇게 싸게 판매될 수 있는 이유도 궁금했죠. 재고, 폐업으로 인한 땡처리인지 혹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저품질의 옷인지 등등 말이죠.
시간이 흘러 나이가 들면서 즐겨 찾던 이대 근처의 보세옷 쇼핑도 줄었고, 패스트패션이라고 SPA 열풍이 불어닥쳤어요. 유니클로, 자라, H&M, 탑텐, 에잇세컨즈와 같은 업체들이 옷을 3주-4주 단위로 찍어내며 매번 새로운 옷들을 선보이는데 가격마저 싸다 보니 마구 사서 입고 버리고를 반복했던 기억도 납니다. 지금은 그 과정을 다 거쳐서 그런지 옷을 사도 분기에 1-2회 정도 사고 한 번 산 옷은 오래 입곤 합니다.
아마 대개의 소비자도 저와 비슷하게 패스트패션 열풍에 휩쓸려 옷을 샀다 버렸다, 매번 옷장에 옷은 많은데 입을 옷이 없다고 생각하셨던 분들 많을 텐데요. 이러한 쇼핑 패턴을 경험하고 나니 점점 내 주위로 눈을 돌리고 환경도 고민하며 가치소비에 대한 생각도 하게 되었죠. 코로나 전후로 시장에서는 ESG가 여전히 화두입니다. 환경에 대해 좀 더 고민하고 가치소비를 하는 소비자들도 많아졌죠.
그래서 요즘에는 쇼핑에 있어서도 ‘세컨핸드’라는 단어가 참 많이 보입니다. 중고제품, 중고의류, 중고명품 등 다양한 제품이 특정 기업들과 만나 서비스가 이루어지고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오늘은 다양한 중고 물품 거래 플랫폼 중 중고의류 쪽으로 최근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2가지 앱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지난 2021년, 23년에 등장한 ‘리클’ 서비스와 마인이스의 ‘차란’ 이라는 앱인데요. 이 두 곳은 헌 옷 수거와 판매의 관점에서 새로운 생태계를 빠르게 만들고 있습니다.
세계 최대 의류 플랫폼인 스레드업(ThredUp)이 발표한 세계 중고의류 시장 규모를 보면 2022년에는 1770억 달러(244조 원)이었지만, 지속적으로 성장해서 2028년 경에는 3500억 달러 (483조 원)에 이를 전망이라고 합니다.
한국은 현재 중고의류 시장 규모가 대략 5조 원 정도인데요. 매년 30%씩 성장을 한다고 합니다. 중고의류 판매 관련된 서비스 기업들은 참 다양하게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다룰 기업은 ‘수거’와 ‘판매’ 쪽에 초점을 맞춘 기업입니다. 하나씩 살펴볼까요?
리클은 2021년에 서비스를 시작한 기업입니다.
기업의 슬로건이 “옷장 정리가 필요할 때 그냥 버리지 말고 리클하세요”인데요. 슬로건을 통해 기업의 정체성을 확실히 알 수 있죠. 헌 옷 버리고 옷장 정리하려고 하면 우리를 이용하라, 즉 헌 옷 수거에 포커스를 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 서비스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앱을 깔고 들어가 보니 헌 옷을 픽업, 택배 두 가지가 방식으로 수거하고 있었습니다. 리클의 담당자가 직접 수거할 수 있는 지역의 경우에는 픽업(비대면)을, 지방이나 그 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택배 서비스를 이용해 리클 가이드에 맞게 제품을 보내면 됩니다. 이때 20벌 이상의 헌 옷을 모으면 무상 수거 신청 가능하며, 옷 외에 가방과 신발도 개수에 포함됩니다.
리클 서비스의 경우 대체로 소비자의 헌 옷을 kg 단위로 매입하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kg당 기본 매입은 330원 정도의 가격을 쳐주게 되고요. 플러스 매입이라는 제도가 있어서 상태가 멀쩡하거나 브랜드 가치를 갖는 의류의 경우엔 한 벌당 500원~2만 원 내외의 가격으로 계산해 줍니다.
이 서비스의 매력은 ‘빠른 정산’이에요. 제품이 입고 완료된 이후에 영업일 기준 3일 이내에 포인트 또는 현금으로 정산해 주니, 소비자 입장에서 헌 옷을 내놓고 빠르게 돈을 받고 싶을 때 이용하기에 좋죠.
그렇다면 이렇게 매입된 헌 옷을 통해 리클은 어떻게 수익화를 해 나갈까요?
기본적으로 중고의류를 매입해 kg당 100-200원의 마진을 남기고 재판매 활동을 합니다. 개도국에 수출하거나 빈티지숍, 도소매업체에 판매 하고 자사 리셀 스토어에 제품을 올려 판매하기도 하죠.
리클은 오프라인의 접점을 통해 O2O 마케팅을 전개하고자 오남점, 성수점 2곳의 오프라인 매장도 운영 중에 있습니다. 앱의 경우 구성이 심플합니다. 하단 탭이 4개로 구성돼 있는데 스토어, 수거 내역, 마이메뉴, 홈으로 구성돼 있어서 수거를 중심으로 판매까지 사이클을 운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고요. 스토어의 경우 카테고리별 검색을 해서 중고의류를 구입할 수 있도록 꾸며 놓았습니다.
서비스를 ‘수거’ ‘판매’에 집중해 뾰족하게 운영하다 보니 수치도 좋습니다. 누적사용자는 400만 명을 돌파했고요. 현재 MAU는 2-3만 명 내외이지만, 수거 기록을 보면 2023년 단일 기업 기준 중고 의류 수거량은 1위를 차지했죠. 무려 8억 벌 이상, 무게로는 1880톤 정도의 헌 옷을 수거했습니다. 2022년 313톤 대비 500%나 증가한 수치입니다. 또한 수거한 의류 중 7일 이내 재판매 비율을 80% 이상으로 꾸준히 유지하면서 최근 시리즈 A 투자를 받았습니다.
투자 금액은 비공개지만 스마일게이트, 세마인베스트먼트, 빅베이슨캐피탈, 젠티움파트너스 등 큰 기관들이 투자에 참여했죠. 리클의 경우 이번에 유치한 투자금으로 효율적인 물류 처리를 위한 시스템 구축, 서비스 품질 개선을 위한 개발자 채용, 거점 물류 센터 오픈, 오프라인 스토어를 확장한다고 합니다.
이번엔 차란을 살펴볼까요?
차란은 2022년에 설립된 마인이스가 출시한 중고의류 수거-판매 플랫폼입니다. 이들의 기업 슬로건은 “가장 저렴한 세컨핸드 패션앱”입니다. 슬로건만 봐도 앞서 리클과 다른 길을 가겠다는 것이 분명해 보이죠. 리클이 헌 옷 수거에 초점을 두었다면 차란은 패션앱에 방점을 두었죠. 이를 통해 차란은 좀 더 판매에 집중하는 서비스로 온라인 중고백화점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2023년 8월에 서비스를 시작해서 론칭 8개월 만에 이용자 20만 명을 돌파했고요. 이들의 서비스는 리클처럼 kg 당 매입을 통해 정산을 빠르게 해주기보다는 판매를 잘 해서 정산한다는 개념이 강해 보입니다.
기본적으로 소비자는 차란 사이트에서 헌 옷 수거 후 어떻게 활용할지 고를 수 있습니다. kg 판매로 수익화하는 방법도 있고 아예 판매가 불가능한 헌 옷은 대신 기부 요청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소비자를 통해 제품을 받은 후 차란은 30일 이내에 상품화 작업을 하는데요. 이때 소비자에게 적정 판매가를 제안하고, 고객이 가격을 결정하면 이후 90일 동안 차란 앱에서 판매가 됩니다. 만약 판매가 완료되면 수수료 정산 후 현금 전환이 가능한 크레딧으로 정산을 해주는 겁니다.
차란 앱에 들어가 보면 리클과는 다른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초기 홈 화면부터 ‘백화점’처럼 꾸며져 있습니다. 이들은 카테고리를 중심으로 제품을 진열해 두었는데요. 1층, 2층, 3층 식으로 층을 나누어 트래디셔널 브랜드, 디자이너 컨템포레리 식으로 진열을 기획했죠.
그리고 아무래도 패션앱에 포커스를 두다 보니 검색의 편의성이 높습니다. 예를 들어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검색할 만한 ‘브랜드 카테고리별’ ‘가격대별’로 검색 기능을 넣어 원하는 가격대의 원하는 카테고리를 빠르게 찾을 수 있도록 세팅해 둔 부분이 인상적이네요.
브랜드 카테고리는 영캐주얼, 캐주얼, SPA, 포멀, 트래디셔널, 럭셔리, 스포츠 등으로 나누어서 일반적인 패션앱의 쇼핑 분류를 그대로 가져와 소비자 편의성을 높인 것 같고요. 가격대를 1만 원 이하, 1-3만 원 등으로 구간을 나눈 것은 중고의류 제품의 특성상 원하는 가격대를 검색해 서칭하려는 소비자의 심리를 반영한 듯합니다.
차란의 경우 ‘차란 팩토리’라고 해서 경기도 남양주에 검수, 재처리, 물류 프로세스를 하기 위한 700평 규모의 센터를 구축했고요. 여기에서 수거한 제품의 살균 처리와 재처리 과정을 거쳐 판매하기 좋은 상태로 만드는 겁니다. 세탁특공대와 같은 세탁물 수거, 세탁 업체도 최근에 중고의류 매입 판매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는데요. 이 부분은 결국 기존의 규모가 커진 세탁특공대, 런드리고와 같은 기업들과 경쟁 구도를 가져가게 될 수 있겠네요.
차란도 리클과 마찬가지로 올해 4월 말에 시리즈 A 투자 유치를 했습니다. 100억 원 규모로 투자가 이루어졌고요. 알토스벤처스, SBVA(전 소프트뱅크벤처스), 딜리버리히어로벤처스, 하나벤처스, 해시드가 참여해서 총 누적 투자금은 154억 원을 돌파했습니다.
차란의 경우 투자금액을 서플라이 체인 구축과 관리 역량 강화에 활용하겠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차란 팩토리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물류 처리, 재처리 등의 효율성을 높이고 빠르게 재판매를 할 수 있는 프로세스 효율화를 하는 것이 자사 역량이 올라갈 수 있을 테니, 이 부분에 집중하겠다는 의도로 보이네요.
이와 관련하여 마케터의 시각에서 정리해 보면 리텐션의 고민 측면에서 분석할 수 있습니다.
리텐션이라는 부분의 경우 리클, 차란 모두 고민의 포인트가 될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커머스 브랜드의 경우 제품이 스테디셀러가 되고, 소비자들의 누적 리뷰가 쌓이면서 신뢰도를 높이는 요인이 됩니다. 예를 들어 쿠팡에 판매되는 어느 제품의 리뷰가 1만개 이상 쌓여고, 평균 별점이 5점 만점에 4.5점 정도라면 사람들은 거의 믿고 구매합니다. 이것이 신뢰의 서클로 작용하거든요.
그러나 리클, 차란과 같은 서비스의 경우 헌 옷이 수거되고 판매가 되는데 이 제품은 일회성으로 판매되면 종료되기 때문에 ‘연속성’이 없습니다. 리뷰가 쌓이는 구조도 아니라 기업의 포커스가 수거-판매에 초점을 둘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지속적으로 방문하고 서비스를 사용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내부에 고객과의 접점이 필요합니다. 리텐션을 위한 장치죠.
물론 이에 대한 고민으로 리클의 경우 헌 옷 수거 경험에 대한 리뷰를 마련해두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리뷰에 대한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보니 최저점의 리뷰들이 상단에 배치되면서 오히려 서비스 신뢰를 갉아먹는 아쉬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최근의 리뷰들이 1-2점대를 보이고 있으면 해당 서비스 만족도에 대한 개선이 필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개의 경우 리뷰는 양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좋은 별점은 잠재고객의 서비스 이용을 푸시하는 긍정적 요인이 되고, 나쁜 별점은 서비스를 이용하기도 전에 편견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래서 리클의 경우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이를 반영한 듯한 개선 사항들이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소비자들이 필요한 페인포인트는 어쩌면 수거 기준의 완화보다, ‘어떤 제품이 플러스 매입이지?’ ‘어떻게 수거되고 관리될까’ 일 수도 있습니다. 내 옷 중 뭐가 높은 평가를 받았는지 확인하면 소비자는 다음에는 이런 부분을 신경 써서 제품을 내놓아야지라는 학습을 하게 됩니다.
차란의 경우에는 현재의 차란 팩토리로 검수, 살균 처리 프로세스를 만드는 과정은 소비자의 신뢰도 측면에서 매우 긍정적입니다. 다만 패션앱에 포커스를 두고 있기 때문에 결국 기존의 중고의류 패션플랫폼들과 경쟁 관계에 놓이게 되고, 이에 더해 세탁 관련 스타트업들과도 경쟁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업체는 현재의 20만 명 넘는 사용자를 모아두었다면, 이들을 위한 CRM 마케팅을 본격적으로 해서 중장기적인 사용을 이끌어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와 별도로 최근 재활용에 관심을 갖다보니, 재활용 쓰레기와 관련된 유튜브 영상이 눈에 띄어 보게 되었는데요. 이 영상은 폐지, 폐비닐, 폐페트병이 수거되어 어디로 흘러가고 어떻게 재활용이 되는지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보면서 놀랐던 것은 생각보다 많은 재활용 쓰레기가 전 세계적으로 발생해 중국으로 수입이 되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나라는 1995년도에 분리배출 제도가 도입된 이후에 정말 분리수거를 열심히 잘 합니다. OECD 국가 중에 한국의 쓰레기 분리수거율은 최상위를 차지할 정도이니까요. 하지만 2022년 한국환경공단의 <ESG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서는 수거한 재활용품의 40% 이상은 다량의 악취 협착물로 재활용이 안된다고 합니다.
이에 비해 일본의 경우 분리수거율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떨어지지만 재활용 배출 방식 수거에 있어 프로세스가 개선되었는지 이 중 폐페트병의 재활용률은 98%나 된다고 합니다. A등급 기준 페트병의 비중이 89.8%나 되니 페트병이 다시 활용되는 선순환 구조가 이루어지는 거죠.
재활용과 관련하여 선순환 구조를 만들게 되면 자원의 재활용 측면뿐만 아니라 ESG, 가치소비 측면에서도 소비자들과 함께 상생의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한 점에서 리클, 차란 모두 소비자들이 자주 찾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으로 이어진다면 더 높은 단계로 성장하지 않을까 생각이 되네요.
해당 콘텐츠는 이은영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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