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나 방금 좋은 생각이 났어!’에 들어있는 ‘생각’은 대부분 행동으로 옮기기 어렵습니다. 실행에 필요한 기본 요건들이 갖춰지지 않은 날것의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이 생각들, 흔히 말하는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전부 쓸모없는 것은 아닙니다. 각 잡고 만드는 기획보다 스치듯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오히려 신선도 측면에서는 훨씬 좋죠. 이런 아이디어는 기존 사고의 틀을 벗어난 곳에서 오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버리기 아까운 내 소중한 아이디어 자산을 전략 기획서로 옮기는 습관을 만들어보세요. 세세한 분석이 들어간 몇십 장 짜리 기획서를 말하는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둥둥 떠다니는 생각을 ‘실행할 수 있는 일’로 만들어주는 1페이지 기획서면 충분합니다. 날것의 재료를 훌륭한 요리 레시피로 바꾸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죠.
안에 들어갈 요소는 딱 다섯 가지입니다. [현대인들을 위한 디지털 명상 서비스]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가정하고, 이 날 것의 아이디어를 예로 들어 각 항목 밑에 함께 적어보겠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시장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해석입니다. 그냥 ‘관찰’이 아니라 관찰을 거친 ‘해석’까지 가야 합니다. 꼭 공식 통계나 연구 자료들을 인용하지 않아도 됩니다. 일상에서 접하는 정보들에만 귀 기울여도 알 수 있는 것들이 분명 있습니다. 고객과 우리는 같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딱 세 가지 정도만 적으면 큰 밑그림은 그릴 수 있습니다.
이 시장에 있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정서
그 정서를 드러내는 단적인 예
이에 대한 우리의 해석과 문제 재정의
디지털 명상 서비스를 개발한다면 이렇게 적어볼 수 있겠죠.
경제 위기에 대한 불안감, 과도한 정보들에 의한 피로감이 만연해짐
온라인상에 드러난 자조적이고 비관적인 표현들, 멘탈 케어에 대한 관심 증가
크고 작은 ‘번아웃’을 겪고 있지만 일상에서는 내색하지 않는 사람들 : ‘소란스럽지 않은 치료제’가 필요
개인이라면 삶을 대하는 자신만의 태도나 신념이 있을 겁니다. 브랜드라면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와 메시지가 있겠죠. 이 정체성을 바탕으로 우리가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가치를 적어봅니다. 사람들이 이걸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는 이유와 함께요. (정체성에 반하는 아이디어는 성공 확률이 극히 낮습니다. 오랜 시간 꾸준히 하기도, 전력을 다하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짧게 요약해 항목으로 적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아래처럼 풀어서 작성해도 됩니다.
예) 우리는 명상이 ‘현대인을 위한 마음의 영양제’라고 믿어. 영양제는 언제 어디서든 먹을 수 있어야 해. 카페에서도, 사무실에서도 모니터 화면을 보면서 짧은 명상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를 만들면 어떨까? 일정 시간 동안 우리가 제공하는 장면과 소리를 들으며 몸과 마음을 가다듬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거야. 꼭 요가 매트를 깔고, 자연 속에 가야 명상을 즐길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면 사람들이 더 쉽게 명상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이 아이디어를 구현한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이 펼쳐질까요? 아무것도 모르는 지인에게 들려줘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쉬운 언어로 그 상황을 표현해봅니다. 딱딱한 전략 기획이 아니라 한 편의 시나리오를 만든다는 느낌으로 적어보세요. 여기에는 우리가 원하는 결과가 꼭 포함되어 있어야 합니다.
예) 평소 명상에 대해 좋다는 말만 들었지 직접 해보지는 않은 어떤 사람이 있어. 솔직히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기도 바쁜데 가부좌를 틀고 앉아 시간을 보내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그 사람이 출근길에 우연히 유튜브를 통해 어떤 사이트의 존재를 알게 돼. 이 사이트에 들어가면 마우스도, 키보드도 움직이지 않고 2분의 시간을 가만히 있어야 해. 화면에는 드넓은 바다가 나타나고, 그에 어울리는 잔잔한 파도 소리도 들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타이머는 다시 리셋돼. 그냥 가만히 바다를 보면서 천천히 호흡을 해야 하는 거야. 이 정도는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회사에서 컴퓨터를 켜고 웹사이트에 접속해. 정말 2분 동안 해보니까, 생각보다 마음이 충만해지는 걸 느껴. 명상에 흥미를 느낀 이 사람은 점심시간 주변 동료들에게 이 웹사이트를 소개해. 링크도 보내주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잠깐의 휴식이 필요할 때 들르는 웹사이트로 바이럴이 되기 시작해. 그 뒤로는… (우리가 원하는 다음 경로로 이동하거나 or 제품을 구매하거나 등 바이럴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결과)
*명상 앱 ‘CALM’의 초기 아이디어를 참고했습니다.
위의 시나리오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해야 할 일을 나열합니다. 만들어야 할 제품, 고객의 여정, 각 여정에 배치해야 할 콘텐츠, 그 외 마케팅 요소 등의 측면에서 생각나는 대로 다 적어봅니다.
위의 사례대로 한다면 이런 것들을 나열할 수 있겠죠.
키메시지 설정, 서비스 이름 기획, URL, 웹사이트 페이지 설계, 디자인, 자연 이미지와 사운드 소싱, 타이머 세팅, 핏이 맞는 인플루언서 혹은 뉴스레터 섭외…
위에서 나열한 일들 중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을 정합니다.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인력이나 강점, 투자할 수 있는 시간 등을 고려해 정하면 됩니다.
만약 바로 일을 실행한다면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아무리 검증이 안된 기획이라 하더라도 각 업무의 퀄리티는 평균 이상의 수준으로 높인다는 생각으로 임해야 합니다. ‘아직 확실하지 않으니 대중하자’는 생각으로 실행하면 될 것도 안됩니다. 결과물에서 풍기는 ‘대충’의 아우라는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첫인상을 심어 줄 테니까요.
이제 여러분의 아이디어는 일의 기본 요건을 가진 기획이 되었습니다. 첫 번째로 해야 할 일도 정해졌습니다. 실행에 옮겨보세요. 이게 정말 먹히는 기획인지는 시장에 있는 사람들이 평가해 줄 겁니다.
박상훈 (플랜브로)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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