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도 팬이 많은 영화감독 드니 빌뇌브. 최근 개봉한 <듄> 시리즈가 유명하지만, <시카리오>, <프리즈너스>, <블레이드 러너 2049> 등의 영화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의 수많은 명작 중 개인적으로 최고로 꼽는 것은 바로 <컨택트(Arrival)>이다.
갑자기 지구 곳곳에 나타난 UFO와 외계인. 이들과 접촉한 인류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컨택트에서 중요 포인트 중 하나는 인간과 외계인이 쓰는 언어가 다르다는 점이다. 사용하는 언어의 체계가 다르니, 사고도 달라지고, 이로 인한 간극을 영화는 잘 보여주고 있다. 마치 노엄 촘스키가 말하는 보편문법을 영화는 이야기해 주는 것만 같다. 보편문법이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두 종족의 ‘컨택트’를 그린 영화 컨택트. 사실 이 영화는 소설 원작이 있다. (스포일러를 할 수 없어 최대한 간략히 영화 소개를 했습니다. 꼭 한 번 보시길 강추 드리는 영화입니다)
바로 테드 창의 <네 인생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테드 창은 1967년 태어난 대만계 미국인 SF 작가로, 현재 최고의 SF 소설가로 평가받고 있다. 지금까지 단편과 중편을 총 17편만 썼지만, 상이란 상은 다 휩쓸고 다니는 그는 브라운 대학에서 컴퓨터과학을 전공하였고,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잠시 근무하였다. 그러다 프리랜서로 전향하며 작가의 길로 들어선다. 그의 소설은 기발한 상상력에 과학적 정합성과 철학적 사고실험이 결합되어 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전 세계 사람들이 사랑한다.
*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Stories of Your Life and Others>라는 중단편집 속에 영화 <컨택트>의 원작인 <네 인생의 이야기(Story of Your Life)>가 수록
테드 창은 2024년 6월 12일, 국내에서 열린 한 강연회에서 “사람 넘보는 AI, 인간 가치도 담아낼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였다. 주 내용은 인공지능이 진정한 지능을 지녔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인공지능은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하고 패턴을 찾아내는 데 능하지만, 인간이 가진 창의성과 의도는 담아낼 수 없다.
그는 자신의 주장의 근거를 다음과 같이 든다. 알파고는 바둑을 잘 두지만, 그 실력에 도달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학습해야 했고, 자체 대결을 수천만 번 수행한다. 반면, 쥐는 비교적 적은 시도로도 새로운 기술을 배울 수 있다. 이는 인공지능이 인간이나 동물의 지능과 차이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최근, 알파고를 만든 구글 딥마인드의 CEO, 데미스 허사비스 역시 현재의 인공지능의 수준은 고양이 정도라고 밝힌 바 있으며, 그 근거로 현실 세계를 보고 이해하는 면이 떨어진다는 점을 들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테드 창은 비판적이다. 챗GPT와 같은 언어 모델은 단어를 조합해 문장을 생성하지만, 진정한 의사소통이라 볼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단지 텍스트를 모방할 뿐, 그 안에 담긴 의미나 의도를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테드 창은 또한 인공지능이 예술 창작에 미치는 영향을 우려한다. 그는 예술이 수많은 선택의 결과물이며, 인공지능은 이러한 인간의 선택을 대신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예술가는 선택의 과정에서 수많은 고뇌를 하며, 그 고뇌에는 인간의 고유한 경험과 감정이 녹아있다. 반면, 인공지능이 만드는 예술은 수많은 데이터의 평균이기에, 독창성과 깊이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테드 창 작가의 의견에 전반적으로 공감이 간다. 인공지능은 아직 인간의 의도와 감정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다. 특히, 현재의 딥러닝 방식은 언어를 ‘이해’하지 않고, ‘확률’에 근거하여 단어를 조합하기에, 인공지능이 인간의 예술을 완전히 대체하기 어렵다. 테드 창이 지적한 것처럼 인간의 고유한 경험 역시 인공지능에게 온전히 학습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를 고려할 때, 인공지능이 예술 분야에서 사람을 대체하지는 못하더라도 도움이 될 가능성은 높다. 인공지능이 우리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인간의 고뇌를 담아내지 못하더라도, 그들이 만들어내는 양산형 예술 작품들은 빠르게 사람의 수준으로 근접하고 있다. 가는 길은 다르지만 도착점은 비슷해지고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그래서 많은 전문가들은 작가와 인공지능이 협업하는 형태로 예술 창작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 보고 있다. 인공지능이 창작의 영감을 제공하고, 작가는 이를 바탕으로 깊이 있는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유머 감각을 요구하는 분야에서만큼은 인공지능이 유용한 도구가 아님이 밝혀졌다. 구글 딥마인드 연구팀은 인공지능이 코미디 각본을 작성하는 데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는지를 조사한 연구 결과를 최근 발표하였다. 연구팀은 인공지능이 대략적인 초안을 작성하거나 독백을 구성하는 간단한 작업에서는 유용했지만, 독창적이며 유머러스한 코미디 소재를 생성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코미디언들은 인공지능이 만든 농담을 뻔하며 지루하다고 평가하였다.
인공지능이 유머러스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오픈AI, 구글 등 LLM(거대 언어 모델)을 만드는 회사들은 자사 언어 모델이 규범에 어긋나는 말을 하지 않도록 필터링을 수행한다. 이러한 필터는 언어 모델이 농담이나 블랙 코미디 등의 소재를 생성하는 것을 방해한다. 따라서 유머러스한 말보다는 진지한 말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오늘날의 LLM이다.
그럼 필터를 제거하면, 인공지능은 유머러스하면서 창의적인 글을 쓸 수 있을까? 컬럼비아 대학의 컴퓨터과학 연구원이며, 인공지능의 창의성에 대해 연구하는 투힌 차크라바티는 LLM 자체가 창의적인 내용을 만드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LLM이 창의적인 글을 쓰려면 규범에서 벗어난 독창적인 방식을 따라야 하는데, 오늘날의 LLM은 정해진 규범을 모방하는 것뿐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자신의 연구에서도 인공지능이 재밌거나 창의적인 글을 생성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덧붙인다.
앞으로 인공지능은 지금보다 더 창의적이 될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방식을 활용하는 인공지능은 아직 독창적이지 않고, 사람을 따라 하기 급급하다. 우리는 소설, 대본, 광고를 작성할 때 인공지능을 활용하겠지만, 당분간은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역할에 그칠 전망이다. 정말 창의적이고 코믹한 글은 인간이 직접 경험한 사건과 분위기가 기반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구글 딥마인드의 연구 결과에 포함된 인공지능이 만든 농담 중, 그나마 재밌는 것을 소개한다.
“저는 마술쇼를 보고 직업을 바꿔서 소매치기가 되기로 했어요. 그런데 사라지는 게 제 명성뿐 일 줄은 몰랐죠!”
– ‘소매치기에 관한 10가지 농담’을 작성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LLM이 답변한 내용
“우리 프로젝터는 ‘AI’의 개념을 잘못 이해한 모양입니다. ‘아예 보이지 않는 것(Absolutely Invisible)’을 의미한다고 착각했나 봐요. 왜냐하면 오늘 밤에 아주 완벽하게 사라지고 있거든요!”
– ‘AI에 관한 라이브 코미디 쇼에서 프로젝터가 고장 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관한 농담’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고 LLM이 생성한 농담
– 테드 창 강연 내용 기사 링크 : https://n.news.naver.com/article/028/0002696022?sid=105
– 구글 딥마인드 연구 관련 내용 MIT TR 링크 : https://www.technologyreview.kr/20명의-코미디언이-ai로-코미디-아이디어를-작성했을-때/
슈퍼피포님의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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