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빠른 환승’ 칸 앞에 가서 기다리기, 엘리베이터에 올라타자마자 ‘닫힘’ 버튼 누르기, 자판기에 손 넣고 음료가 떨어지길 기다리기…. 성미 급한 한국인의 일상이다.
그런데 1분 1초를 다투는 모습이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단순히 ‘빨리빨리’의 문화적 차원이 아니라 시간이 귀한 자원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2024년 트렌드로 소개된 ‘분초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같은 시간 안에 더 많은 것을 소화하고자 하며 가치 없다고 판단하는 시간은 기꺼이 돈을 지불해서라도 아끼려고 한다. 한마디로 초효율주의 사회가 되어가는 것이다.
초효율주의 생활 속에서는 무엇이든 요약을 원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2023년 말 카카오톡에서는 ‘AI 기능 이용하기’라는 옵션을 만들었다. 다양한 기능이 있지만 사람들의 눈길을 끈 것은 대화 요약이다. 누구나 메신저를 확인하지 못한 사이 단체 대화방에서 대화가 빠르게 진행돼 안 읽은 메시지가 100개쯤 쌓여 있는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이때 대화 요약 기능이 대화 전체를 다시 올려보지 않아도 안 읽을 메시지를 요약해 준다고 한다.
영상을 요약해 주는 서비스도 많아졌다. 필자도 내용을 알고 싶지만 길어서 보기 어려운 영상은 챗GPT에 맡긴다. ‘Video Summarizer’ GPT는 유튜브 링크를 넣으면 핵심 내용만 간추려 주는데, 필요한 부분만 자세히 물어볼 수도 있다.
노래를 빠른 배속으로 즐기는 문화도 인기를 더하고 있다. 원곡을 1.5배속, 2배속 등 빠른 속도로 재생해 만든 2차 창작물인 ‘스페드업(sped up)’ 이야기다. 빨리 감기 하면 나오는 독특한 음색이 틱톡과 같은 숏폼 폼 콘텐츠에서 짧고 중독적인 배경음악으로 맞아떨어졌다. 이용자들이 만들어 올린 스페드업 곡으로 10년도 전에 나온 곡이 관심을 끌고 역으로 원곡이 다시 음원 차트에서 역주행할 만큼 인기를 끈 것이다.
스페드업이 하나의 문화가 되면서 최근에는 아티스트들이 직접 자신의 신곡을 발표할 때 스페드업 버전을 만들어 함께 선보이기도 한다. 보이넥스트도어라는 그룹은 곡 중간에 ‘속사포 랩’ 구간을 만들어 노래와 안무 모두 ‘자체 스페드업’ 효과를 의도하기도 했다.
틈새 시간도 아끼기 위해 예약 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소비자도 많아졌다. 음식점 예약 앱의 경우 2030뿐만 아니라 중장년층으로 사용자층이 넓어졌다. 헤어숍, 병원, 아파트 커뮤니티 시설 등 생활 속 많은 서비스가 앱으로 예약하는 것이 필수가 됐는가 하면 광역버스 좌석을 예약하는 앱도 인기다. 모바일 앱 ‘미리(MiRi)’에서는 마치 고속버스를 예약하듯 광역버스의 좌석도 이용하려는 날짜와 시간에 맞춰 예약할 수 있다. 수도권에서 서울로 매일 ‘출퇴근 전쟁’을 벌이는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으며 현재 가입자가 18만 명이 이른다.
생활 속 시간을 구매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배달뿐만 아니라 청소, 세탁, 줄서기, 반려동물 산책 등 모든 일상 속 일이 대행이 가능해졌다. 최근 급격히 성장한 대행 서비스는 쓰레기를 버려주는 일이다. 여러 업체가 등장했는데 대체로 사용법은 비슷하다. 사용자가 쓰레기봉투 혹은 전용 용기에 쓰레기를 담아서 문 앞에 놓고 앱으로 수거 요청을 하면 업체가 새벽 사이 수거해 가서 분리수거를 비롯해 폐기 절차를 밟는다. 가격은 기본 요금에 쓰레기 무게에 따른 추가 요금을 더해 산정되는데 보통 가정집에서 1주일에 한 번 내놓는 쓰레기로 치면 8000~1만 원 정도 요금이 든다고 한다. 스타트업 분석 업체 혁신의 숲에 따르면 가장 사용자 수가 많은 ‘오늘수거’의 월별 사용 건수는 지난해 11월 8,106건에서 올해 4월 1만 7,000건으로 반년도 되지 않아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소비자들이 쇼핑하는 모습도 변화하고 있다. 숏폼 콘텐츠를 보고 물건을 고르는, 일명 ‘숏핑’이다. 숏츠, 릴스, 틱톡 등 숏폼 콘텐츠에는 ‘지금 안 사면 후회하는 아이템 5’ ‘다이소 필수템 7’ 등 안 보면 후회할 듯한 섬네일 영상이 조회수를 올린다. 생활용품처럼 가벼운 쇼핑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쇼핑 플랫폼도 ‘숏핑’화 한다.
최근 TV 홈쇼핑 기업들이 모바일 플랫폼으로 방향을 전환하면서 콘텐츠도 숏폼을 밀고 있다. GS샵은 TV홈쇼핑과 라이브 커머스 채널에서 송출된 상품 판매 영상을 1분 이내로 편집해 보여주는 ‘숏픽’을 선보였다. 신세계라이브쇼핑은 AI가 자동으로 방송 화면을 분석해 1분가량으로 편집해 주는 ‘AI 숏츠’ 기능을 도입했다. 긴 영상을 전부 보지 않고 핵심만 보고 상품을 파악할 수 있는 만큼 소비자의 선호가 높다.
직장 내에서도 효율주의가 가속화하고 있다. PPT와 문서 제작, 회의록 작성 등 업무에서 은근히 시간 소요가 컸던 부분을 AI가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AI 서비스 ‘퍼플렉시티(Perplexity)’는 보고서, 마케팅 자료, 발표 자료 등을 자동으로 생성해 준다. 특히 사용자 요구에 맞춰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비즈니스 영어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딥엘(DeepL)’도 인기다. 비즈니스 데이터를 중점적으로 학습한 덕에 여타 번역 서비스에 비해 맥락을 고려한 의역이 가능하다.
AI가 사람의 일자리를 대체한다는 말이 어느 정도 현실화되고 있기도 하다. SK텔레콤은 AI직원 ‘나법카’를 도입했다. 이제까지 자금 담당 부서에서는 법인카드 사용, 한도와 관련해 사내에서 들어오는 질문이 하루 20~30건에 달했는데, 이제는 직원들이 부서 메신저에서 나법카 사원을 검색해 문의할 수 있게 됐다. 삼성SDS 역시 사내에서 생성형 AI 서비스를 도입해 회의록 작성 시간 75%, 메일 확인·작성 시간이 66% 감소하는 성과를 거뒀다고 한다.
초효율주의 사회로 나아가는 데 공통적으로 작용한 요인은 기술 발전이다. 사실 인류가 기술을 개발하는 근본적인 목적이 인류가 시간을 더 잘 사용하도록 돕기 위함일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현대인은 항상 시간에 갈증을 느낀다. 시간을 써야 할 곳은 갈수록 늘어나고, 여백의 시간을 생기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양상이다.
특히 삶을 즐기고 휴식을 취할 시간이 부족하다. 최신 데이터인 2021년 기준으로 국내 근로자는 1인당 15.5일의 연차휴가를 부여받고 9.0일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때 미사용 연차에 전체 근로자 수를 곱해보면, 우리나라에서 사용되지 못한 휴가는 1억 일에 가깝다고 한다. 초효율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얻고자 하는 효율은 무엇일까? 그 의미를 생각해 보게 된다.
권정윤 님의 브런치와 <병영에서 만나는 트렌드>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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