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와 쏘니의 결합의 왜 실패로 마무리되었는가?
"자동차는 이제 바퀴 달린 스마트폰이다."
지난 몇 년간 모빌리티 업계를 지배해 온 이 매혹적인 문구는 수많은 '이종 산업 간 동맹'을 탄생시킨 일종의 복음이었습니다. 그 혁신의 정점에 서 있던 주인공이 바로 가전의 제왕 소니와 제조의 장인 혼다가 손잡은 '소니-혼다 모빌리티(SHM)'였습니다. 두 거인의 결합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완벽히 하나가 되는 'SDV(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의 이상향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습니다.
하지만 2026년 3월, 우리에게 들려온 아필라(AFEELA) 개발 중단 소식은 뜨거웠던 환상에 차가운 얼음물을 끼얹었습니다. 화려한 전광판 뒤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놓치고 있었던 것일까요? 애초에 서로 다른 DNA를 가진 두 거인의 '화학적 융합'은 가능한 시나리오였을까요, 아니면 우리는 실체 없는 신기루를 쫓았던 것일까요?
다양한 모빌리티 산업을 경험하고, 분석을 해온 저는 이번 아필라의 멈춤이 단순한 프로젝트의 실패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테크와 제조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을 증명하는 사건이자, 우리가 마주할 냉혹한 'SDV 2막의 현실'을 알리는 서막입니다. 오늘 이 글에서는 아필라가 멈춰 설 수밖에 없었던 비즈니스적·기술적 본질을 파헤치고, 이 실패의 유산이 우리 모빌리티 생태계에 던지는 묵직한 화두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이번 브런치 글의 목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1. 4년의 설렘, 그리고 예견된 마침표
2. 정체성의 혼란: '달리는 PS5'가 놓친 모빌리티의 본질
3. 보이지 않는 성벽: 플랫폼 주권을 둘러싼 동상이몽
4. 캐즘의 파고: 경제적 지속 가능성이라는 냉혹한 성적표
5. SDV 2.0 시대: '느슨한 연대'의 종말과 '지독한 내재화'의 시작
6. 성벽을 허물고 마당을 만드는 혁신을 꿈꾸며
2022년 봄, 소니와 혼다가 손을 잡았다는 소식은 모빌리티 업계에 던져진 거대한 화두였습니다. 가전과 엔터테인먼트의 제왕 '소니'와 기계 공학의 자존심 '혼다'의 만남. 이는 단순한 기업 간 협력을 넘어, 내연기관 시대의 종말과 SDV(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 시대의 진정한 개막을 알리는 상징과도 같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한때 그들이 써 내려갈 새로운 문법에 설레었습니다.
CES 2023의 메인 무대에서 베일을 벗은 '아필라(AFEELA)'는 그 정점이었습니다. 차량 전면의 '미디어 바'를 통해 보행자와 소통하고, 에픽게임즈의 언리얼 엔진으로 구현된 대화면 인포테인먼트는 "차가 거실의 확장이 될 수 있다"는 환상을 현실로 보여주었습니다. 당시 모빌리티 현업자들 사이에서는 "이제 하드웨어의 시대는 끝났다"는 탄식이 터져 나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아필라가 걸어온 길은 화려한 전광판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2022년: 소니-혼다 모빌리티(SHM) 합작법인 출범. '모빌리티의 재정의' 선언.
2023년: CES에서 '아필라' 프로토타입 공개. 퀄컴, 에픽게임즈 등 화려한 파트너십 과시.
2024~25년: 반복되는 전시와 업데이트. 그러나 구체적인 양산 계획과 가격 전략에 대한 불확실성 증폭.
2026년 3월: 혼다의 EV 플랫폼 전략 전면 수정과 함께 프로젝트 중단 발표.
이 과정을 지켜보던 냉정한 분석가들에게 이번 마침표는 결코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협력'이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속도감의 결여'가 뼈아픈 실책이었습니다. 테슬라가 FSD를 수만 번 업데이트하고, 샤오미(Xiaomi)가 발표 3년 만에 실제 도로 위에 SU7을 굴리는 동안, 아필라는 여전히 전시장의 조명 아래에서 '미래'만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아필라의 마침표가 예견되었던 가장 큰 이유는 '캐즘(Chasm)의 파고'와 '비즈니스 모델의 부재'였습니다. 2025년부터 본격화된 글로벌 전기차 수요 정체기 속에서, 대중은 더 이상 "차 안에서 게임을 할 수 있다"는 감성적인 제안에 1억 원이 넘는 비용을 지불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혼다가 처한 경영 환경의 변화가 결정적이었습니다. 하이브리드 시장의 예상 밖 선전과 차세대 EV 전용 플랫폼 개발 지연은, 소니라는 화려한 외피를 유지하기엔 너무나 무거운 짐이 되었습니다. 결국, 제조의 현실이 소프트웨어의 로망을 집어삼킨 셈입니다.
우리는 아필라를 통해 '이종 산업 간의 결합이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배웠지만, 동시에 '물리적 실체가 없는 혁신이 얼마나 신기루처럼 사라지기 쉬운지'를 목격했습니다. 4년간의 설렘은 그렇게 차가운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하지만 이 실패는 단순한 소멸이 아닙니다. 모빌리티 산업이 마주할 더 지독한 '현실의 2막'을 알리는 신호탄이기 때문입니다.
아필라(AFEELA)를 수식하던 가장 강력한 별명은 '달리는 PS5'였습니다. 소니의 강력한 콘텐츠 자산과 혼다의 제조력이 만났을 때, 시장이 기대한 것은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었습니다. 차 안에서 고사양 게임을 즐기고, 영화적 몰입감을 누리는 '움직이는 엔터테인먼트 룸'이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이 아필라의 치명적인 정체성 혼란(Identity Crisis)의 시작이었습니다.
소니는 차량 내부에 45개의 센서를 박아 넣고 에픽게임즈의 언리얼 엔진 5를 구동하며 '경험의 극대화'를 외쳤습니다. 그러나 모네의 시선에서 본 아필라는 '자동차라는 그릇에 담긴 가전'에 가까웠습니다. 사용자가 차를 구매할 때 느끼는 가장 근본적인 페인 포인트(Pain Point)는 "어떻게 더 안전하고 편안하게 목적지까지 도달할 것인가"입니다. 아필라는 이 '이동의 본질'에 대한 답보다 '이동 중의 소일거리'에 너무 많은 자원을 쏟아부었습니다.
모빌리티 플랫폼에서 콘텐츠가 빛을 발하기 위한 필수 전제 조건은 '운전으로부터의 완전한 해방', 즉 고도화된 자율주행 기술입니다. 내가 운전대를 잡고 전방을 주시해야 하는 상황에서 대화면 시네마틱 디스플레이와 실시간 레이 트레이싱 게임은 '그림의 떡'일뿐입니다.
테슬라가 FSD(Full Self-Driving)라는 '운전의 자동화'를 먼저 정복하고 그 위에 넷플릭스와 게임을 얹으려 했다면, 아필라는 자율주행이라는 숙제가 채 끝나기도 전에 거실의 소파를 차 안으로 옮겨놓는 데 급급했습니다. 자율주행 레벨 3 혹은 레벨 4가 대중화되지 않은 2026년의 도로 위에서, 아필라의 화려한 UI는 운전자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비싼 간섭'으로 전락할 위험이 컸습니다. 결국, 에네이블러(Enabler, 기술적 기반)가 부실한 상태에서 얹어진 상부 구조는 사상누각에 불과했습니다.
결국 소비자는 냉정했습니다. 1억 원이 훌쩍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아필라의 가격표 앞에서 대중은 자문했습니다. "내 스마트폰과 태블릿으로도 충분한 콘텐츠 소비를 위해, 굳이 이 비싼 '바퀴 달린 하드웨어'를 사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아필라는 자동차의 성능(주행 거리, 충전 속도, 승차감)이나 자율주행의 신뢰도보다 '소니의 감성'을 파는 데 주력했습니다. 하지만 모빌리티 시장은 감성만으로 움직이기엔 너무나 고관여 된, 그리고 '안전'이라는 보수적인 가치가 지배하는 영역입니다.
정체성의 혼란은 결국 수익 모델의 붕괴로 이어졌습니다. 차를 팔아 이윤을 남겨야 하는 혼다와, 플랫폼 구독료를 챙기려 했던 소니의 계산법은 '이동'이라는 본질적 가치 앞에서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아필라의 사례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깁니다. 모빌리티 혁신은 화려한 '외피'가 아니라, 이동의 고통을 덜어주는 '본질'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종 산업 간의 결합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나리오는 '화학적 융합'입니다. 테크 기업이 스마트한 '뇌(OS)'를 만들고, 제조사가 튼튼한 '근육(차체)'을 제공하여 완벽한 생명체를 만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소니와 혼다의 협력 과정에서 우리가 목격한 것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려는 '보이지 않는 성벽'이었습니다.
아필라가 지향한 '코-크리에이션(Co-creation)' 플랫폼이 작동하기 위해선 차량의 깊숙한 곳까지 소프트웨어가 접근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령, 게임의 상황에 따라 차량의 서스펜션이 움직이거나 실내조명이 실시간으로 반응하는 식이죠. 하지만 여기서 OS 주권(Sovereignty)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사인 혼다 입장에서 차량의 제어권(VCU)을 외부 소프트웨어(소니)에 완전히 개방하는 것은 안전과 책임 소재 측면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도박이었습니다. 결국, 소프트웨어는 인포테인먼트라는 '외피'에 머물렀고, 하드웨어는 기존의 보수적인 '틀'을 깨지 못했습니다.
두 기업이 가진 '시간의 문법'이 달랐던 점도 치명적이었습니다. 소니로 대표되는 테크 업계는 6개월 단위로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하고, 버그가 발견되면 실시간으로 패치하며 진화합니다. 반면 혼다와 같은 자동차 제조사는 하나의 부품을 채택하기 위해 수만 번의 안전 테스트를 거치며 5년 이상의 긴 호흡으로 움직입니다.
아필라 프로젝트 내부에서는 이 '속도의 역설'이 끊임없이 충돌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소니가 제안하는 파격적인 사용자 경험(UX)은 혼다의 엄격한 안전 가이드라인 앞에서 번번이 가로막혔고, 이는 결국 제품의 혁신성을 희석시켰습니다. 모빌리티 현업에서 흔히 말하는 'SDV(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는 단순히 차에 S/W를 얹는 것이 아니라, 제조 공정 전체를 S/W 속도에 맞추는 '조직적 혁신'이 전제되어야 함을 아필라는 간과했습니다.
가장 본질적인 갈등은 '데이터 거버넌스'에 있었습니다. 차 안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주행 데이터와 사용자의 콘텐츠 소비 데이터를 누가 소유하고 수익화할 것인가에 대한 합의가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플랫폼 기업인 소니는 데이터를 확보해 구독 서비스와 광고 모델을 구축하고 싶어 했지만, 제조사인 혼다는 차량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를 자사의 차량 개발과 AS망 유지의 핵심 자산으로 보았습니다.
이러한 플랫폼 주권 다툼은 결국 생태계 확장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외부 개발자들이 뛰어놀 수 있는 '마당'을 만들겠다고 선언했지만, 정작 마당의 주인들이 서로의 땅금을 긋는 데 급급했기 때문입니다. 아필라의 중단은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서로의 주권을 내려놓지 않는 '느슨한 연대'가 과연 테슬라처럼 모든 것을 내재화하여 수직 계열화를 이룬 '거대 괴수'를 이길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결국 아필라의 성벽은 외부의 경쟁자가 아닌, 내부의 동상이몽에 의해 먼저 무너져 내렸습니다.
혁신적인 기술과 화려한 디자인도 결국 '팔리지 않으면' 신기루에 불과합니다. 2026년 3월, 소니-혼다 모빌리티(SHM)가 아필라 1의 개발 중단을 발표하며 마주한 가장 뼈아픈 진실은 경제적 타당성의 결여였습니다. 아필라 1의 예상 시작 가격은 약 89,990달러(한화 약 1억 2천만 원). 이는 프리미엄 전기차 시장에서도 초고가에 해당합니다.
문제는 시장 환경이었습니다. 2020년대 초반, 얼리어댑터들이 혁신에 기꺼이 지갑을 열던 '낭만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2026년 현재, 글로벌 전기차 시장은 이른바 '지독한 캐즘(Chasm)'의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고금리 기조가 유지되고 실용성을 중시하는 대중 소비자가 시장의 주류가 되면서, "와우 포인트"만 있고 "프라이스 포인트"는 놓친 아필라는 설 자리를 잃었습니다.
아필라의 운명을 결정지은 결정타는 제조 파트너인 혼다의 재무적 위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혼다는 전기차 전략 재검토의 결과로 2025회계연도(2025년 4월∼2026년 3월)에 최대 6,900억 엔(약 6조 5,000억 원)의 적자가 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습니다.
아필라는 혼다의 전용 EV 플랫폼과 오하이오 공장의 생산 인프라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구조였습니다. 이미 북미에서 생산 예정이었던 3개 전기차 차종의 개발을 중단한 혼다에게, 수익성을 담보할 수 없는 아필라 프로젝트를 지속하는 것은 무리한 도박이었습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 등 외신은 중국 비야디(BYD) 등 경쟁사들이 성능과 가격 경쟁력을 무섭게 확보해 나가는 가운데, 일본 연합의 대응이 한 박자 늦었다고 꼬집었습니다. 결국, 연간 6,500억 원 규모의 대규모 적자 위기라는 제조 현장의 현실이 소프트웨어의 로망을 집어삼킨 셈입니다.
즉 혼다가 자신의 미래 전략을 철회는 "중국산 저가 EV와 경쟁할 수익 구조를 만들지 못했다"라고 자인하는 상황에서, 그보다 훨씬 비싼 '소니의 실험작'을 계속 밀어붙일 여력은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제조 파트너의 기반이 무너지자, 아필라라는 상부 구조는 순식간에 동력을 상실했습니다.
거시적 정책의 변화도 아필라에게는 악재였습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등장 이후 전기차 보조금($7,500) 폐지와 연비 규제 완화는 전기차 시장의 매력도를 급격히 떨어뜨렸습니다. 반면, 하이브리드(HEV) 차량의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포드(Ford), GM에 이어 혼다마저 "전기차 올인" 전략에서 "하이브리드 병행"으로 급격히 선회한 것은, 이제 모빌리티 기업들에 필요한 가치가 '놀라운 비전'이 아닌 '당장 수익을 내는 지속 가능성'임을 시사합니다.
아필라의 중단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기술은 화려한데, 비즈니스는 건강한가?"
현업 실무자들이 내일의 전략 회의에서 가장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은 이제 '기술의 고도화'가 아닌 '비용의 최적화와 시장의 수용성'이 되어야 합니다. 아필라가 남긴 냉혹한 성적표는 모빌리티 혁신의 기준점이 '테크'에서 '이코노믹스'로 완전히 이동했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애플카의 프로젝트 포기에 이어 아필라(AFEELA)의 중단은 모빌리티 업계에 명확한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테크 기업의 'S/W 감성'과 제조사의 'H/W 신뢰'가 적당히 만나 시너지를 내는 '느슨한 연대(Loose Alliance)'의 시대가 끝났다는 선언입니다. 우리는 이를 'SDV 1.0의 종말'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단순히 차에 소프트웨어를 '얹는' 수준의 협력은 속도와 비용, 그리고 주도권 다툼이라는 현실의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이제 시장은 'SDV 2.0' 시대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핵심은 '협업'이 아닌 '지독한 내재화'**와 **'압도적 인프라 동맹'입니다. 제조사는 이제 소프트웨어를 외부에서 빌려오는 수준을 넘어, 스스로 테크 기업이 되거나, 테크 기업은 제조사를 하청업체로 부릴 수 있을 만큼의 강력한 플랫폼 파워를 갖추는 극단적인 선택지에 직면해 있습니다.
아필라가 '누가 주인인가'를 다투다 멈춰 선 사이, 업계는 폭스바겐그룹과 리비안(Rivian)의 58억 달러(약 8조 원) 규모의 동맹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는 아필라 식의 '대등한 공동 개발'과는 차원이 다른 전략적 선택입니다.
자체 소프트웨어 조직인 카리아드(Cariad)의 부진으로 신차 출시가 지연되는 고통을 겪은 폭스바겐은, 결국 리비안의 검증된 '존 아키텍처(Zonal Architecture)'와 소프트웨어 스택을 통째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제휴가 아닙니다. 레거시 제조사가 자신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신생 테크 기반 제조사의 '뇌'를 이식받아 생존을 도모하는 '플랫폼 통합형 동맹'입니다. 아필라가 서로의 영역을 지키느라 속도를 내지 못했다면, 폭스바겐은 거액의 자본을 투입해 리비안의 속도를 자사의 규모에 강제로 결합시킨 셈입니다.
아필라의 좌초 이후, 소니를 비롯한 빅테크들의 행보는 다시 '소프트웨어 공급자(Supplier)'로 회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직접 차를 만드는 리스크를 짊어지기보다, 차세대 카플레이(CarPlay)나 안드로이드 오토모티브(GAS)처럼 차량 내 공간을 장악하는 '디지털 콕핏' 라이선스 사업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기 때문입니다.
SDV 2.0 시대에 현업 실무자들이 주목해야 할 지점은 명확합니다. 내일의 경쟁자는 옆 동네 자동차 회사가 아니라, 우리 차의 '뇌'를 장악하려는 거대 테크 기업이거나, 혹은 그 테크 기업을 통째로 집어삼킨 초거대 완성차 그룹일 것입니다. 이제 모빌리티 비즈니스는 '연대'가 아닌 '생태계의 설계 권한'을 둔 처절한 전쟁터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아필라의 실패는 역설적으로, 이제는 적당한 타협이 아닌 **'누구의 아키텍처 위에 올라탈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잔인한 선택의 시간이 왔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화려한 조명 아래 관객의 환호를 받던 아필라(AFEELA)의 프로토타입은 이제 차가운 연구소 구석으로 자리를 옮겼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이를 보고 6조원대 적자가 부른 '비싼 수업료'라 비웃고, 누군가는 거대 기업들의 오만이 부른 참사라고 비판합니다. 하지만 모빌리티 현업에서 매일 전쟁 같은 의사결정을 내리는 우리에게, 아필라의 멈춤은 단순히 남의 집 불 구경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혁신의 딜레마'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거울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분석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주권(Sovereignty)'이었습니다. 소니와 혼다는 각자의 영역에서 최고였지만, 역설적으로 그 '최고'라는 자부심이 서로의 성벽을 더 높게 쌓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혁신은 서로의 성벽을 허물고 그 사이에 사람들이 모여 뛰어놀 수 있는 '마당(Yard)'을 만들 때 비로소 생명력을 얻습니다.
테크 기업은 제조의 신뢰를 무시하고, 제조사는 소프트웨어의 속도를 두려워했습니다. 아필라가 내세웠던 '코-크리에이션(Co-creation)'이 공허한 구호에 그친 이유는, 정작 판을 깔아줘야 할 주인들이 서로 "여기는 내 땅"이라며 금을 긋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플랫폼은 주권을 주장하는 곳이 아니라, 주권을 공유함으로써 더 큰 가치를 창출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아필라 이후'를 준비해야 합니다. 테슬라가 보여주는 '지독한 내재화'의 효율성도, 폭스바겐과 리비안이 보여주는 '생존을 위한 아키텍처 통합'도 결국 하나의 결론으로 수렴합니다. "모빌리티는 더 이상 기계의 영역이 아닌, 연결의 영역"이라는 사실입니다.
자동차는 이제 에너지를 주고받는 에너지 거점이자(V2G), 노동력을 해방하는 이동 로봇이며, 우리의 시간을 가치 있게 채우는 제4의 공간입니다. 이 거대한 흐름 속에서 개별 기업이 모든 것을 다 해내겠다는 생각은 위험한 환상입니다. 우리가 만들어야 할 것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성채'가 아니라, 수많은 서비스와 데이터가 심리스하게 흐르는 '거대한 마당'입니다.
아필라는 비록 멈춰 섰지만, 그들이 시도했던 '이종 산업 간의 대화' 그 자체는 지워지지 않는 데이터로 남을 것입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아니라, '더 세련된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스승입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하면 더 화려한 차를 만들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우리 플랫폼을 모두가 기꺼이 참여하는 매력적인 광장으로 만들 것인가"를 질문해야 합니다. 성벽 안의 평화는 짧고, 마당 위의 활기는 영원합니다. 모빌리티 혁신의 2막은 바로 그 성벽을 허무는 용기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오늘 글은 여기에서 마무리합니다. 관심을 가지고 읽어서 감사드리고, 창을 닫기 전에 잊지 마시고 “좋아요” 혹은 “추천” 그리고 브런치 "구독"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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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기업과 스타트업을 넘나들며 개발자, 컨설턴트, 사업 기획자, 그리고 운영자까지 모빌리티 산업의 다양한 층위를 직접 경험해 왔습니다. 이러한 다채로운 시각을 바탕으로 제가 발견한 비즈니스 인사이트를 이곳에서 나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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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및 출처]
[1] SHM Official, "Discontinuation of Development and Launch of AFEELA 1 and the Second Model of AFEELA Vehicles", <AFEELA News>, 2026.03.25, 링크
[2] Nicholas Takahashi, "Honda and Sony drop joint EV development project", <The Japan Times>, 2026.03.26, 링크
[3] Scooter Doll, "Volkswagen Group's joint venture with Rivian hits latest milestone, unlocking another $1B", <Electrek>, 2026.03.27, 링크
[4] 김흥수 기자, "아필라의 몰락, SDV 시장에 던진 경고장", <모빌리티 인사이트>, 2026.03.28, 링크
[5] Bengt Halvorson, "Honda cancels 0 Series EVs amid 'extremely challenging' financials", <WardsAuto>, 2026.03.13, 링크
[6] Gasgoo, "Tesla Officially Announces New Mission: Build a World of Amazing Abundance", <Gasgoo News>, 2026.01.21,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