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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Sep 09. 2024

터부(taboo)

학교에서 민원이 들어왔다. 돌아가신 선생님의 신원이 학부모들에게 드러났다는 이야기였다. 민원 담당 직원이 물었다. “반장님, OOO님 기억하세요?”


방에선 방향제 냄새가 났다. 깔끔한 베이지톤 벽지엔 액자에 고이 모셔둔 롤링페이퍼가 걸렸다. 뻔한 이야기들. 선생님 사랑해요. 선생님, 나보단 못생겼지만 잘생겼어요. 김미나가 선생님 좋아한데요. 피자 먹고 싶어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


유리 진열장엔 주먹 만한 것부터 팔뚝 만한 것 이르기까지  다양한 건담 프라모델들이 역동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데칼과 칠이 벗겨지지 않은 비교적 최근 제품들도 있고, 플라스틱이 변색되어 누렇게 뜬 것들도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모은 것 같았다. 방 한구석엔 보드게임 상자 몇 개가 쌓여 있었다. 작은 방에 어울리는 작은 티브이엔 닌텐도가 아직 전원이 들어온 채로 연결되어 있었다. 젊은 선생님은 벽에 기대앉아 있었다. 잠든 게 아니란 건 분명했다. 붙박이장 손잡이에서 인터넷 랜선이 뻗어 나왔고, 선생님은 그 아래에 있었다.


선생님 이야기를 퍼뜨린 용의자 중 하나로 학교가 우릴 지목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예민한 문제니까. 하나 맘에 걸리는 건 학교가 선생님의 죽음을 쉬쉬하는 만큼 충분히 애도는 했을까 하는 의심이었다. 나는 원래 조직에 큰 기대가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함께 일했던 동료 개개인이 선생님의 죽음을 슬퍼하길 바랐다. 기억하길 바랐다. 조직은 죽음을 곱씹는 일을 터부시 하며 체면을 챙기고 싶겠지만 그런다고 죽음이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니다.


산 사람의 삶만큼, 죽은 사람의 죽음도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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