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장님 좀 이중인격 아니에요?”
“그래 보여?”
“출동 나갈 때는 구시렁 대다가 막상 가면 잘해주잖아요. “
”내가 그래? “
”네. 특히 할머니들이랑 장애인들.”
“아쉬워서 그런가 보다.”
“뭐가요?”
“그런 게 있어. “
누워 있는 노인의 손가락과 발가락을 구부려 본다. 턱을 잡고 아래로 당겨 본다. 아직 오래지 않아서 움직인다. 눈꺼풀을 열어 동공을 확인한다. 완전히 풀려 있다. 손가락으로 경동맥을 짚는다. 맥은 없다. 나는 이제 이걸 꽤 많이 해서 실수가 없다. 실수였으면 좋겠다. 노인의 얼굴을 만진다. 손 끝에서 차가운 쇠 맛이 난다. 곁에는 간이 화로에서 재로 변한 번개탄과 유서가 있다. 유서에 첫 손주인 나에 대한 얘기는 없다. 부모와 떨어져 외할머니가 키운 작은 손주들에 대한 염려만 그득이다. 나는 그게 또 섭섭하다.
외할머니는 안식원 2층에서 계단 좌측으로 세 번째 방에 모셔져 있다. 다른 식구들이 놀란다. 너 그걸 어떻게 기억하냐고. 십자가가 정면에 그려진 유골함이다. 장담하는데 외할머니는 종교인이 아니었다. 자식 키우려고 십자가를 이용했으면 했지 십자가에 의지하지 않았다. 외할머니의 종교는 자식이었다. 그리고 삶이 십자가였다.
1층으로 내려와서 외할머니 쫓아간 큰 삼촌한테 간다. 삼촌은 다운증후군이라 오래 못 산다 했는데 외할머니 죽을 때까지 버티다가 갔다. 그거 하나는 효도한 셈이다. 삼촌은 명절 때마다 내가 세배하면 만 원짜리 지폐를 쥐어 주었다(다른 사람한테는 천 원). 사람들은 그게 백만 원짜리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삼촌 자리엔 손바닥 만한 조화 한 송이 밖에 없다. 다음에 올 땐 가족사진이라도 가져다 붙여야겠다고 생각한다.
마감 시간이 다 되어서 뒤늦게 찾아온 사람들로 건물이 북적인다. 그리운 사람의 자리에 꽃을 놓고, 좋아하던 담배를 놓고, 사탕을, 플라스틱으로 만든 모조 제사상을 놓는다. 떠밀리듯 방에서 나오니 바로 옆 텅 빈 방이 눈에 띈다. 스테인리스 서랍장이 방의 세 면을 가득 채우고, 서랍장마다 ’ 미상‘이라고 적힌 스테인리스 명패가 붙었다.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묻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