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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틈새

by 백경 Mar 25. 2025

원룸 건물 외벽에 사다리를 세웠다. 대원 한 사람이 사다리 후면에서 세로대를 잡고 지지하는 동안 다른 한 사람이 등반을 했다. 다행히 창문이 열려 있었다. 창틀을 타 넘고 사라진 대원이 잠시 뒤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안에 계십니다.


출입문이 열리자마자 담배 냄새와 지린내가 훅 끼쳤다. 노인은 한 손에 휴대전화를 쥐고 침대와 장롱 틈에 끼어 있었다. 움직이지 못하는 노인을 일으켜 침대에 눕혔다. 멍이 들었다 색이 빠져나간 듯 왼쪽 광대뼈 주위가 누리끼리했다. 수도꼭지에 얼굴을 들이받았단다. 자기 몸 하나 지탱하지 못할 만큼 약해지면 수도꼭지마저 삶을 위협하는구나 싶었다. 노인은 틈새에 끼어 볼일을 못 봤다고, 화장실에 데려다 달라고 말했다. 기저귀를 끌어내린 뒤 변기에 앉혔다. 겨우 몇 방울 쪼르륵 오줌이 나왔다. 그 소리가 꼭 남은 삶을 쥐어짜는 소리 같았다. 선생님. 노인이 겁에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저, 여기서 나가라고 하는 거 아니겠지요.


소방서로 돌아오고 다들 한참 말이 없었다. 각자의 생각에 빠져 있는 것 같았다. 온몸에 욕창이 들끓는 그녀에게 홑이불 한 장 달랑 덮어주는 게 최선이었나. 내 책임은 아니니까. 깨끗하고, 안온하며, 수도꼭지가 나를 위협하지도 않는 일상으로 맘 편히 돌아와도 되는 걸까. 언젠가 친한 친구가 해준 말이 떠올랐다. 맘 쓰지 마, 너 그러다 죽어. 그러나 죽어가는 인간을 외면하는 인간의 삶에 과연 의미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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