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최초의 김밥은 고무 다라이에서 고추 내놓고 수영할 때 할머니가 빨래판 위에 썰어주신 김밥이었다. 열다섯인가 시집와서 지금 내 나이쯤 손주를 본 할머니 김밥은 단단했다. 속 썩이는 남편과 다운증후군이었던 첫아들과 데모하다 월북한 둘째 아들을 거기 꾹꾹 눌러 담은 듯. 그나마 울 엄마와 막내 삼촌이 밥벌이를 하고 살아서 할머니는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그래도 반타작은 했네.
세월이 흘러 김밥은 점점 물러졌다. 시간에 두들겨 맞아 부들부들해진 할머니 같단 생각을 자주 했다. 할머니는 죽기 직전에도 김밥을 싸서 손주 식구들에게 보냈다. 온 힘을 다한 김밥이었다.
할머니는 함박눈이 펑펑 오는 어느 아침에 돌아가셨다. 그래서 겨울에는 김밥이 먹고 싶다. 입안에서 눈처럼 스르륵 풀어지던 할머니 김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