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맛있다

by 백경

나는 주방짬밥이 올해로 7년 차다. 주변 사람들에겐 아내가 손이 느려서, 멸치 볶음 하나 만드는데도 1시간이 걸려서 주방에 서노라 농담처럼 이야기하지만 실상은 조금 다르다. 손이 빨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냥 내가 음식 만드는 걸 좋아한다. 다른 남편들과 차별화된다고 공치사를 할 수 있는 건 덤이다. 양말 뒤집어서 빨래통에 넣지 좀 마요! 같은 잔소리 중간에 미안해 허허하고 슬쩍 넘어갈 수 있는 것도 다 나의 오랜 주방경력 덕이다.


어떤 사람들은 돈 아끼려면 집밥을 해 먹으라 하지만 그것도 다 옛말이다. 시중에 잘하는 반찬가게며 밀키트며 값싼 배달음식이 지천인 세대다. 자는 동안 누가 늘여놓기라도 하는지 하룻밤 새 쑥 자라 있는 애들 때문에 우리 식탁엔 늘 고기나 계란이 빠지지 않는다. 삼겹살 백 그람에 보통 2천 원 중반, 유정란 한 판에 1만 원 전후. 야채값도 만만치 않아서 로컬 매장을 애용하지만 양배추 한 통, 대파 한 단이 며칠을 못 가고 3kg짜리 양파망도 일주일이면 바닥을 드러낸다. 조리하는 기름도 산패되는 값싼 씨앗기름(포도씨유, 카놀라유, 면실유, 옥수수유, 대두유 등등)은 배제하고 리터당 만 원을 호가하는 올리브유, 아보카드유, 코코넛 기름을 쓴다. 맛내기용 들기름은 국산들깨를 짠 걸 엄마가 구해다 주시는데 이것도 2리터 들이 한 통에 십만 원이다. 여기에 각종 양념, 고춧가루(알 만한 사람은 안다. 얼마나 비싼지) 값까지 더하면, 매 끼니 외식이나 다름없는 식사가 완성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돈 아끼려고 집밥을 해 먹는다는 건 우리 가족에게 전혀 맞지 않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경제적인 이점은 없지만 집밥이 지닌 힘은 실로 여럿이다. 우선 자연스럽게 다이어트가 된다. 좋은 재료를 가지고 최소한의 조리과정을 거쳐 탄생한 집밥은 맛도 있을뿐더러 해로운 성분이 덜 첨가되어 내 몸에 스트레스를 덜 준다. 다이어트를 오래 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항상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성공적인 다이어트의 왕도다. 항상성을 유지하려면 스트레스를 덜 받아야 하고, 그래서 잘 만들어진 집밥을 먹어야 꾸준히 다이어트를 이어갈 수 있다. 시판 다이어트 도시락은 몸에 좋지 않으냐? 누군가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내 기준에선 그것도 낙제점이다. 먹으면서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맛이 없거나, 양이 적거나, 아니면 같은 메뉴만 조리돌림 하거나. 그냥 나쁜 걸 최소한으로 넣고 최대한 맛나게 만들어 먹는 집밥이 최고다. 때문에 다이어트를 꾸준히 하려면 일단 밥 해 먹길 귀찮아하지 않아야 한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또 다른 중요한 이점은 부부관계, 아이들과의 관계가 돈독해진다는 것이다. 부부싸움을 하더라도 밥은 먹어야 한다. 실컷 감정의 폭포에서 허우적 대고 서로를 향해 눈을 흘기다가도, 먼저 다가가 뭐 먹을 거야? 하고 물으면 김치찌개건 된장찌개건 섞어찌개건 대답이 돌아온다. 재료를 썰어 끓는 물에 퐁퐁 담그는 동안 벌써 마음이 누그러지고 헛소릴 뭐 그리 길게 늘어놨나 후회가 된다. 아내도 밥 한 술 뜨며, 맛있다 한마디를 시작으로 언제 싸웠냐는 듯 말을 건다. 그래서 우린 싸워 봐야 끼니때를 못 넘겨 서로에게 항복하고 만다.

아이들에게 집밥은 어린 내가 그랬듯 사는 동안 수많은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사랑, 위로, 격려, 빛, 소금, 여름 한 때의 미풍, 새로운 아침, 돌아갈 수 있는 그곳. 한 자리에 앉아 밥을 먹을 때마다 켜켜이 기억을 쌓아 올리고, 그 기억은 아이들이 사는 동안 지금보다 더 풍성한 행복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든든한 뿌리가 되어줄 것이다.


오늘은 닭갈비를 만든다. 신선한 닭다리살에 고춧가루, 굴소스, 맛술, 사과와 양파는 즙을 내어 넣고, 마지막으로 고형카레를 잘게 부수어 양념이 잘 배도록 섞어준다. 야채는 숨이 죽어버리기 때문에 조리하기 직전에 썰어 고기와 함께 익혀야 식감이 살아있다. 하루 이틀 냉장고에 두면 더 맛있지만 그전에 애들 눈에 띄면 그냥 먹는다. 고기를 다 먹고 국수와 밥까지 볶아 먹어야 온전한 닭갈비라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