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맛 찬가

by 백경

그날은 손을 잡지 않고 걸었다. 내가 아내에게 화가 난 것도, 아내가 나에게 화가 난 것도 아니었다. 첫째 아이 초등학교 하교하는 걸 함께 데리러 가는 길이었다.


밥 먹을래?

뭐.

시간 없으니까 김밥 먹자.


그 말을 끝으로 김밥집까지 가는 길에 서로 나누는 말이 없었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그 전날 밤 나는 새벽 한 시와 세 시, 다섯 시와 여섯 시에 각각 출동이 있었고, 아내는 아빠 보고 싶다고 애들이 울어서 통 잠을 이루지 못했다. 우리는 각자의 인생에 삐쳐 있었다. 이건 피곤하단 말을 싫어해서 하는 표현이다. 피곤하단 말은 어딘지 수동태의 뉘앙스다.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의 표식이다. 그래서 인생에 삐쳤다는 표현을 쓴다. 강렬한 능동태의 느낌이 나기 때문이다.


각자의 인생에 삐친 우리는 남은 힘을 발바닥으로 그러모아서 방향 잃은 분노를 밟아가며 걸었다. 김밥집은 초등학교 근방이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아니 아무 생각이 없었는지 먹어보지도 않았던 고추냉이가 들어간 김밥을 시켰다. 떡볶이도 하나 시켰다. 아주머니가 맵기는 보통으로 할까 묻길래 아주 맵게 해달라고 말했다.


팔뚝만 한 김밥엔 고추냉이에 버무려진 진미채가 한가득이었다. 이맛살을 찌푸리던 아내는 한 입 먹더니 미간의 주름이 풀어지며 제법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떡볶이는 캡사이신의 공장표 매운맛이 아니고, 내가 집에서 청양고추 쓸어 넣으면 낼 수 있는 그런 매운맛이었다. 숭덩숭덩 잘라낸 가래떡과 종잇장처럼 얇은 어묵이 정겨웠다.


말없이 김밥과 떡볶이를 먹고 있는 중에 무언가 이마에 와서 닿았다. 휴지를 집어 든 아내의 손이었다. 두피의 모공이 열려 연신 땀을 흘리고 있던 내가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가만 보니 아내의 숱 많은 머리칼도 땀으로 젖어 이마께가 번들번들했다. 매워서 벌겋게 부풀어 오른 입술로 연신 후우, 후우 하고 더운 숨을 뱉어내며 손으로는 열심히 내 이마의 땀을 닦아주고 있었다. 티슈를 한 장 뽑아서 나도 아내의 이마와 입술을 닦아주었다. 그러면서 서로 뭐라고 열심히 놀리는 말을 한 것 같은데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학교 정문까지는 손을 잡고 걸었다. 잠시 뒤 하교하는 1학년 아이들이 양떼처럼 교문 밖으로 쏟아졌다. 실루엣만 보아도 만사 해탈한 인상을 주는 내 새끼는 멀찍이 하늘이며 나무며를 보고 느릿느릿 걷다가 손잡고 기다리는 엄마 아빠를 발견하고 종종종 뛰어왔다. 아주 조금 남아있던 삐친 마음은 솜사탕이 혓바닥에서 녹듯 사라졌다. 셋이 손을 잡고 걸었다. 첫째가 저녁에 또 떡볶이를 해달라고 졸라서 그러마 하고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