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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Mar 08. 2023

사장님, 여기서 라면 끓여도 되나요

 굳이 표현하자면 그런 느낌이다. 리코타 치즈 샐러드와 크라상, 은은하게 내린 커피를 브런치로 먹는 테이블 옆에 자리를 잡고, 나의 다 떨어진 검정색 배낭을 뒤적여 휴대용 버너와 스뎅 반합, 그리고 좋아하는 빨간 맛 라면을 꺼낸다. 주광색 LED조명 탓에 하얀 테이블이 더 하얘 보인다. 테이블 보에 빨간 국물이 튈까 봐 젓가락을 조심조심 뒤적여 라면을 익힌다. 남들처럼 구색을 맞추기 위해 동네 슈퍼마켓에서 파는 크림빵(보름달에서 따온 전설의 그 빵)과 커피맛 우유도 내놓는데 어쩐지 눈치가 보인다. 이러면 안 될 것 같지만 제지하는 사람이 없다.


 식당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지성인이다. 우리 할머니가 좋아하고 꼭 저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던, 와이트-카알라. 결국 아버지도, 나도 그런 사람이 되지 못해서 선망의 눈으로 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선생님, 기자, 교수님, 의사(저기 프랑스 의사 선생님도 계신다, 반갑습니다!), 어디 회사의 CEO, NASA에서 일하는 과학자(한 명쯤은 있겠지) 등등. 그분들 테이블에 놓인 요리들은 그야말로 새로움으로 가득 차서 나의 시선은 갈 곳을 잃는다. 세상엔 참 멋진 것들이 많구나, 감탄한다. 대부분 센스 있는 캐주얼이나 세미 정장 차림이다. 아무 옷이나 입어도 된다고 해서 나는 소방서에서 일할 때 입는 주황색 활동복을 입고 왔는데 말이다. 더운 척 몰래 웃옷을 벗는다. 유니X로에서 파는 기능성 검정 메리야스 한 겹만 남지만 오히려 맘이 편해진다.


“맛있어 보이는데요? 정말이에요. ” 건너 건너 테이블에 계신 몇 분이 친절하게 다가와 말을 건네주신다. 그럼 나는 짐짓 진지한 남자인 척 따로 챙겨 온 은박지 앞접시 두 개에 라면 한 젓가락과 크림빵을 떼어 담고 조심스레 내민다. 친절한 그분들은 정말 맛있게도 드신다. 얼마나 감사한 마음이 되는지 모른다. 다음번엔 해물맛, 아니 짬뽕맛 라면을 가져와 볼까, 신나는 마음이 되어 콧노래를 부른다.


 요새 라면을 끓이는 일이 잦아졌다. 아니,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일이 잦아졌다. 새벽에 눈을 뜨는 순간 시계를 확인하고, 아이들 등교까지 글을 적을 시간이 많이 남았다는 사실에 마음이 설렌다. 조금 옛날 표현 같지만 그야말로 나만의 ‘비밀한 시간’이다. 아직 어둠의 이불을 뒤집어쓴 아침, 나는 경첩이 다 떨어져서 너덜거리는 마음속 찬장을 뒤적여 봉지라면을 하나 꺼낸다. 후레쉬를 비추어 포장지를 확인하고 예의 그 낡은 배낭에 집어넣는다. 브런치 식당에서 오늘의 스페샬 라면을 끓일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그런데 사장님,


 여기서 라면 끓여도 되는 거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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