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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Mar 02. 2023

스페샬 토스트

“아빠가 그랬다고? ”


“응. ”


“진짜? 내가 그걸 먹으러 가자 했다고? 당신도 들었어? ”


아내는 시선을 휴대폰에 고정한 채 긍정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몇 백 원 더 싼 물건을 찾는다고 자동차에 오르면서부터 쇼핑 사이트를 뒤지는 모양이었다. 이번에는 칫솔인가. 그냥 대충 아무거나 사지. 뒷좌석의 아이들은 ‘나는 문어, 꿈을 꾸는 문어’ 하고 시작하는 유명한 노래를 오징어로, 고래로, 삼겹살로, 솜사탕으로 바꿔 불렀다. 날이 흐려서 바깥은 우중충한데, 차 안은 사방에서 햇빛이 들이치는 것 같았다.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그게 또 기분이 좋았다.


 엊저녁에 아껴두었던 돼지껍데기를 볶아 먹는 핑계로 소주를 한 잔 했다. 취기가 오른 김에 선심 쓰듯 이야기 한 모양이었다. 아빠가 아는 정말 맛있는 토스트집이 있는데, 내일은 거기를 가보자고. 요새 유행하는 오마카세나, 스테이크 하우스의 OO스테이크 같은 걸 먹으러 가잔 것도 아니고 겨우 토스트라니, 취기도 나의 좀스런 씀씀이를 어쩌진 못했구나 하는 생각에 조금 씁쓸했다. 더군다나 초등학교 입학 전날 가족 외식인데.


 지난밤 나의 무의식이 강력하게 추천한 토스트 가게는 본래 고속도로 초입에 포장마차 형태로 있던 것이었다. 새벽 다섯 시쯤에 문을 열고 오후 두 세시쯤 닫았다. 꽉 찬 속재료와 사장님의 자부심으로 가득 찬 토스트를 맛보기 위해 출근 시간 즈음해선 늘 문전성시였다.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서 기껏 포장마차를 찾았다가 빈 손으로 고속도로에 올라타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오래도록 같은 자리를 지키던 포장마차는 시내의 대학가에 작은 점포 형태로 재탄생했다. 우리 가족이 찾아가는 장소는 바로 그곳이었다.


 가게문을 열자마자 마가린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가게의 한쪽 벽 전부 길게 등받이 의자를 놓았고 한 사람이 겨우 팔을 걸치고 먹을 만한 좁은 식탁이 네 개 있었다. 마악 한글을 뗀 첫째가 메뉴판을 보며 말했다. “아빠, 스페샬이 무슨 뜻이야? ” “특별하다는 뜻이야. ” “그럼 나는 스페샬로 먹을래. ” 그때, 철자의 오기가 불러오는 향수라니! 2023년에 초등학생이 되는 큰 딸의 입에서 밀레니엄 이전의 스페샬이 오랜 잠을 깬 듯한 소리를 냈다. 그건 ‘스페셜’도 아니고, 유튜브 영어학습앱 광고처럼 ‘스페이셜’ 혀를 굴리지도 않고, 조금 있어 보이게 영국식으로 ’스파하셜‘ 하지도 않았다. 말 그대로 스페샬, 내 이전 세대의 전설이고 내 세대에 이르러 무덤이 된 스페샬이었다.


 마가린에 겉면이 바삭하게 익은 식빵 속을 야채계란부침, 계란후라이, 치즈, 떡갈비, 햄, 케요네즈에 버무린 양배추가 채웠고, 어색하지만 당당하게 뿌려진 흰 설탕이 토스트 겉면을 빙 둘러가며 반짝이는 자태를 뽐냈다. 한 입 꽈악 물자 엄청나게 촌스러운 맛이 났다. 맛있을 만한 건 죄다 채워 넣었는데, 그리고 맛이 참 좋긴 한데 어쩐지 한마디로 설명이 안 되는, 그래, 그야말로 내가 만든 맛 같았다. 내 인생 같기도 했다. 독립영화 찍는다고 20대를 다 보내고, 영화 찍을 돈 마련한다고 영어학원 강사일을 하느라 살이 너무 찌는 바람에 운동에 빠지고, 그런 김에 체육관 트레이너 하다가 아내를 만나고, 첫째를 만나고, 소방관이 되고, 둘째를 만나고, 뭔 바람이 들었는지 이젠 글을 쓰고 있고.


 아이들이 각각 8년, 6년을 세상에 나와 지내면서 가장 가까이서 본 삶이 ‘스페샬’한 아빠의 것인 게 마음에 걸린다. 왜 나는 조금 더 노력하지 않았을까. 왜 나는 그토록 이기적이었던 걸까. 등신 같이 글을 적으면서 자꾸 젖은 눈을 찍어 누르고 있다. 사실 스페샬 토스트도 괜찮다 하고 마무리하고 싶었는데 그건 솔직한 심정이 아니었나 보다.


 ”너무 배불러. “ 첫째가 크게 후욱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래도 맛있었어. “ 배시시 웃는 얼굴이 너무 예쁘고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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