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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Mar 07. 2023

제철 사랑은 원래 맛없다.

 여동생이 이혼했다. 말쑥한 생김에 정장이 잘 어울리는 날렵한 몸, 악기도 제법 다룰 줄 알았고 외국어에 능통한 남자였다. 여동생과 남편은 젊은 시절에 남들과 다른 꿈을 꾸어 보겠노라 미국행인지 캐나다행인지를 했고, 거기서 헤어질 결심을 했다. 남편이 주먹질을 종종 했단다. 멀쩡한 도시남자인 줄 알았는데 글로 적기에도 미안한 촌놈이었다.


 아는 소방서 동료도 이혼했다. 소방 시험 합격하고 첫 발령지가 집에서 3 시간 거리였다. 야간 당직을 마치고 그다음 날 근무까지 오며 가며 시간이 빠듯했을 텐데, 그래도 눈을 비비며 집으로 향했다. 하루는 근무를 빼고 출근하는 척하다가 아내를 놀래켜 주려고 몰래 집으로 향했다. 집에 다른 남자가 있었다. 이제는 헤어졌지만 부부의 아이도 그 집에 있었다.


 함께 일하던 노총각 주임도 떠오른다. 유부녀들과 만나는 이야기를 연신 담배 연기를 뿜어 대며 자랑처럼 말했다(소방서도 사람 사는 곳이다. 멀쩡한 사람만 있지 않다). 내게도 의무방어전은 가끔만 치르고 정신건강을 위해 다른 여자들과 남들 보지 못하게 연애하라고 조언이랍시고 이빨을 털었는데, 그때는 내가 짬이 너무 안 돼서 이 좀 닦고 말하시라고 대답을 못했다. 어느 날엔 우크라이나 여성을 소개해주는 결혼정보회사 사이트를 보면서 다 예뻐서 누구를 골라야 하나 고민이란 말을 하길래 속으로 조용히 기도했다. 만인을 사랑하시는 하느님, 어여쁜 여자는 무슨 죈가요. 부디 그 사람이 자기랑 똑같은 사람을 만나 결혼하게 해 주세요.


 사실 결혼한 우리 부부의 민낯이야 뻔하다. 누가 봐도 예쁘다 잘생겼다 할까 모르겠는 얼굴, 굴곡 없는 평탄한 몸매, 말주변도 없어서 툭하면 싸움이 나고, 결혼 이후엔 엄청나게 달라질 것처럼 얘기하더니 늘 제자리걸음이라 거기에 보조를 맞추는 나(아내)까지 제자리걸음이고. 그걸 뭐가 좋다고 쫓아다녔는지도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거기에 딸린 애들까지 더해져서 피로감은 배가 되었다. 아내의 주름이 늘고 내 머리숱이 줄어드는 속도에 가속이 붙었고, 몸뚱이만 못나지면 좀 다행인데 애들한테 소리치고 신경 쓴다고 성격까지 못되게 변한 것 같다.


 그래서 이혼이고 휴혼이고 하는 게 당연한 것 같다. 아이의 천진한 표정과 상대방의 살가운 말마디 같은 건 소위 ‘운명적 헤어짐’을 막기엔 턱 없이 빈약해 보인다. 아내와 남편 서로에 대한 건실함도 요새 트렌드와는 맞지 않는다. 아아,  넷플릭스 드라마처럼 어디 로또 같은 사랑이 있는 거 아닐까, 공상하며 하릴없이 애들 아침밥을 뒤적이는데 둘째가 내 뒤통수에 대고 묻는다.


“아빠, 아프리카 커피 알아? 아프리카 커피. ”


“바보야 아프리카노겠지. “ 첫째가 한 마디 거든다.


“그래? ”


 곁에 있던 아내가 빵 터진다. 요새 들어 자주 보는 진짜 웃음이다. 우울증에 시달리며 눈물과 밥을 함께 씹던 몇 년 전이었다면 상상도 못 했을 얼굴. 의심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듯 손을 잡은, 우리만의 시간이 어렵게 빚어낸 얼굴이다. 잊을 만하면 떠오르는 생각이 다시 자리를 잡는다. 제철 사랑은 원래 맛이 없다고. 통에 담아 천천히 익히다 보면 오늘처럼 숨길 수 없는 향기가 퍼질 거라고. 나는 내 안에 담긴 귀한 열매들이 상하지 않도록 단단한 참나무 통이 되고 싶다 생각한다. 좋은 술처럼, 사랑을 빚어서 너와 나눠 마시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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