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드라마, 야구 같은 드라마를 쓰자.

by moca

야구장에 가끔 혼자 가는 취미가 생긴 건 한 십년 전부터였다. 퇴근 후 마실 거 하나 사들고 관중석으로 올라가면 눈 앞에 펼쳐진 푸릇푸릇한 잔디구장에 눈도 마음도 시원해졌다. 그렇게 나의 번잡스런 상황들을 위로해주던 야구. 드라마를 좋아하는 내가 야구를 좋아하게 된 건 필연적인 걸지도 모르겠다. 야구와 드라마는 참 많이 닮아 있으니.

야구예능 '불꽃야구'를 시청하다 보면 야구가 '한 편의 드라마 같다'는 캐스터의 비유를 자주 들을 수 있다. 9회말 2아웃에도 뒤집힐 수 있는 야구처럼 드라마에는 얘기치 못한 반전과 감동이 있어야 한다. 다 끝난 것 같아도 끝이 아닌, 끝까지 가봐야 알 수 있다는 투지와 기대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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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내가 쓴 대본들은 과연 그런 것들을 갖춘 이야기였을까. 생각해보면 나는 끝까지 가는 이야기를 쓰지 못한 것 같다. 끝까지 가야 재미도 감동도 반전도 훨씬 컸을 텐데. 어쩌면 평소 내 삶의 태도가 반영되었는지내 인물들은 늘 마지막까지 가는 것을 두려워하며 그 언저리에만 있었던 것 같다. 내가 그린 인물들이 대본을 읽는 이에게 제대로 감정적 울림을 주지 못했던 건 아마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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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런 캐릭터에 대한 반성도 야구를 보면서 해본다. 강력한상대팀, 즉 빌런의 등장은 드라마를 훨씬 재밌게 만들어준다. 과연 나는 매력적으로 빌런을 그려왔던가. 일전에 김은숙 작가님의 강연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려 본다. 빌런도 신념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내 이야기 속 빌런들은 그 깊이가 결코 깊지 못 했다. 단순하고 약한 빌런은 내 이야기를 뻔하고 김 빠지게 만들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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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야구를 보며 캐릭터에 대한 사랑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떠올려본다. 처음 야구를 좋아했을 땐 특정 팀을 꽤 응원하며 보곤했다. 응원가도 함께 부르고 동작도 하며 한층 신이 나게 관람했었다. 현재는 야구 그 자체가 좋다는 마음이지 어떤 팀이나 선수를 크게 응원하고 있지는 않다. 불꽃야구의 팬인 것 정도?

하지만 드라마는 그래선 안 된다. 시청자가 내 캐릭터를 사랑하며 보게 하려면 내가 훨씬 많이 사랑해야 한다. 그냥 그 캐릭터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일전에 쓴 이야기들 중에 내가 참으로 사랑한 캐릭터가 둘 있었다. 그 인물을 정말 잘 살아내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대본을 썼고 개작까지 해낼 수 있었다. 캐릭터에 대한 사랑으로 할 수 있었던 작업이었다. 지금의 내 이야기가 나아지기 위해선 이 캐릭터가 내가 진정 사랑할 수 있는 인물인가를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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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보게 만드는 드라마를 쓰기 위해 다시 근본적인 것들에서부터 질문을 던지고 처음부터 내 이야기를 점검해 보려한다.


사실 대본을 안 쓰고 야구보며 생각만 한 것에 대한 반성의 글이기도 하다.

훌륭한 대본을 읽고, 재미난 드라마를 보고.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내 글을 쓰는 건데.

나태해지는 나 자신을 다시 다잡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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