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도 필요한 구력(球歷)

실패와 성공의 경험이 모여서 강력한 구력을 만들어 줄 것을 믿는다

by 목하사색

나는 주일 아침 교회 본당에서 예배 안내를 맡고 있다.

코로나 이전에는 자모실(교회에서 어머니나 누이가 유아인 동생이나 자녀를 돌보며 함께 예배를 볼 수 있도록 마련한 방)에서 안내를 했는데 금세 잡힐 거라고 생각했던 코로나가 생각보다 오래가고 상황이 더 안 좋아지면서 어느새 예배 인원도 제한됐고 결국 교회는 출입을 금하고 전면 온라인 예배로 전향했다.

정부에서 제시한 인원보다 더 적은 인원으로 현장예배를 시작하면서 코로나로 인해 아이들이 사라져버린 자모실에서 내려와서 본당 예배 안내를 맡게 됐다.




내가 예배 안내를 맡고 있는 구역에는 유독 어르신들이 많이 앉으신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학원을 몇 번 가다 보면 은연중에 자기 자리를 정하듯이 교회 어르신들도 매주 오셔서 앉는 자리가 거의 정해져 있다.

간혹 젊은 성도나 새로 오신 분이 당신이 앉던 자리에 앉아있으면 당혹함을 감추지 못하신다.

그런 일이 생기는 걸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젊은 성도들을 미리 다른 자리로 안내하기도 하고 뒤늦게 오시는 분들의 편의를 위해 먼저 오시는 분들께 앞 줄에 먼저 앉으시라고 권면한다.

어르신들은 당신들이 정해놓은 자리를 고수하리라는 걸 알기 때문에 그분들께는 따로 자리를 안내하지는 않는다.




우리 교회는 매년 5월이 되면 창립기념일과 가정의 달을 기념해서 [3대가 함께 드리는 예배]를 드린다.

코로나로 인해 2년간 하지 못했다가 올해는 6월로 날짜를 미뤄 어제 [3대가 함께 드리는 예배]를 드렸다.

3대가 함께 드리는 예배는 한 공간에서 한 번의 예배밖에 없기 때문에 예배 시간에 앉을 자리가 부족해서 다소 불편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조부모, 부모, 자녀 3대가 함께 드리는 예배라는 큰 의미가 있기 때문에 이날은 다른 교회에 다니는 자녀들도 함께 참석하기도 한다.




이날은 많은 인원이 한 예배를 드리기 때문에 미리 오신 분들께 앞자리 안쪽을 최대한 권했다.

그러나 역시 30분이나 일찍 오신 어르신들은 언제나 앉으시는 자리, 뒷자리 중간에 앉아 계신다.

"오늘은 사람들로 붐벼서 설교자가 잘 보이지 않으실 텐데 앞자리에 앉으시면 어떨까요?"

넌지시 권해도 요지부동이시다.

어느 정도 앞에서부터 앉아야 늦게 오시는 분들이 앉기도 수월할 텐데...

이런 생각을 하며 듬성듬성 채워져가는 의자를 물끄러미 보고 있는데 20년 동안 예배 안내를 하신 권사님이 어르신들께 몇 마디 나누니 일어나서 중간 자리 안쪽으로 앉으신다.

왠지 내가 해야 하는 일을 못한 것 같아 난처해 하고 있는데 권사님이 내게 한마디 하신다.

"구력이 필요해. 아직 구력이 안돼서 그래."




문득 최근 둘째 아이가 첫 국제주니어 테니스 대회를 출전한 뒤 아쉬워하는 내게 테니스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오버랩된다.

"아직 구력이 부족해요. 열심히 연습하다 보면 구력이 쌓일 거예요."

선생님께서 구력을 말씀하실 때는 단순히 구력(球歷 : 공을 다룬 경력. 구기 운동을 한 경력을 이른다.)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구기종목이 아닌 어떤 일의 경력을 물어볼 때도 구력이라는 단어와 짬밥(군대, 직장, 학교 등에서 사용되는 은어로, ‘연륜’을 이르는 말)이라는 은어로도 표현되기도 한다.




그렇다. 모든 일에는 구력(어떤 일을 꾸준히 해내는 것, 어떤 일에 들어간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모래시계 안에 모래가 서서히 쌓여서 그동안의 노력을 증명하듯이 우리가 조금씩 쌓아가는 실패와 성공의 경험이 모여서 강력한 구력을 만들어 줄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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