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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하사색 Jul 28. 2022

나만의 확실한 소확행

시원한 얼음 음료만으로도 온전히 내 것 같은 일상

  친한 언니 중에 책과 영상을 번역하는 일을 하는 일본인 언니가 있다.

  둘째 아이가 1학년이던 학부모 참관 날 같은 반 학부모로 만났는데 둘 다 운동을 좋아하는 아이들이라 자연스레 가족 간의 모임이 잦아지면서 친해졌다.

  처음 만났을 때는 몰랐지만 만나는 횟수를 거듭할수록 남편보다 더 강인한 면모를 발견한다.

  언니는 남편과 아이에게 부드럽게 이야기하지만 언니의 말속에는 단호함이 있다.

   넷플릭스에 소속되어 있는 언니는 드라마나 영화를 번역하고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책들을 번역하고 있다.

  언니는 모두 잠든 밤, 맥주를 마시면서 번역을 하는 걸 좋아한다. 맥주와 함께 마른오징어를 씹어 먹으며 일을 하는 걸 좋아했는데 어느 날인가 치아가 안 좋아져서 결국 임플란트를 해야 한다고 했다.

  힘들게 임플란트를 한 후로도 마른오징어를 씹는 걸 포기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맥주와 마른오징어, 언니가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소확행이 아닐까?




  그런가 하면 나는 특별히 좋아하는 게 없는 무덤덤한 사람이다.

  먹는 걸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고 소유하는 걸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여행을 좋아하냐고? 체력이 되지 않아 여행도 귀찮다.

  나는 도대체  좋아하지? 나의 소확행은 뭐지?

  그런데 오늘 병원을 다녀오는 길에 아이스커피를 마시면서 깨달았다.

  나는 얼음을 깨물어 먹는 걸 좋아한다. 남편은 아이스커피를 마셔도 얼음을 고스란히 남기는데 나는 얼음을 한 개도 남기지 않는다.

  사실 내가 여름에 음료수를 마시는 이유는 음료수보다 더 많이 담겨있는 얼음을 먹기 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얼음을 깨물어 먹다가 어금니가 금이 갈 수도 있는 나이인데도. 그렇기에 얼음을 깨물어 먹지 않겠다고 다짐하는데도 음료수를 다 마시고 얼음을 아주 익숙하게 씹어먹는다.

  얼음을 씹어 먹을 때 와그작 와그작 씹히는 소리가 듣기 좋다.

  더운 여름날, 내 손에 든 아이스커피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고 뜨거운 아스팔트에서 걷는 것조차 즐거워진다.

  하루에 먹는 물의 양은 많지 않지만 얼음을 먹는 양만으로도 1L는 넘을 것 같다.




  남들이 말하는 소확행(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란 게 뭐 남들이 보기에 대단한 것이어야 할까?

  내 손에 들려있는 시원한 얼음 음료만으로도 온전히 내 것 같은 일상, 그래서 행복한 지금 이 순간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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