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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하사색 Aug 09. 2022

할 수 있지만 안 하는 것과 하고 싶지만 못하는 것

할 수 있지만 안 하는 일들이 더 많아지길 바래본다


  결혼 후 1년이 지난 서른한 살의 어느 날, 우리 부부는 시장 길목의 작은 가게를 얻어 횟집을 시작했다.(시장 길목의 젊은 사장들 1, 시장 길목의 젊은 사장들 2)

  둘 다 장사를 해본 적도 없고 장사가 잘 되리라는 확신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대출은 받지 않고 그동안 모아놓은 돈으로 시작해 보기로 했다.

  4인용 테이블 5개가 간신히 들어가는 작은 만두 가게를 인수받아 간단히 셀프 인테리어를 하고 작은 주방에는 횟집에 꼭 필요한 주방기기들을 테트리스 쌓듯 꼼꼼히 들여놓았다.

  작은 주방에 필요한 기기들을 들여놓기 위해 여러 군데의 업소용 주방기기 매장을 돌아다니며 최대한 크기가 작은 걸 구해야 했다.





  횟집 주방에서 사용하던 뚜껑식 김치냉장고는 장사를 접고 난 뒤 우리 집 주방에서 사용하고 있다.

  시어머님은 매년 김장철이 다가오면 돈을 줄 테니 김치냉장고를 큰 것으로 장만하라고 하신다.

  아직 쓸만한데 용량이 적다는 이유만으로 김치냉장고를 교체한다는 게 내가 생각하기에는 낭비라는 생각도 들고 용량이 커지면 당장 필요 없는 식재료를 많이 사서 냉장고를 채울 테고 결국은 버리는 식재료가 더 많아질 거라는 생각에 작은 김치냉장고를 고수하고 있었다.

  결혼하고 장사를 시작할 때는 돈이 없어서 작은 가게를 얻어 작은 김치냉장고를 구입했지만 지금은 내가 모아놓은 돈으로도 충분히 구입할 여력이 되지만 굳이 사야  이유가 어서 사지 않는 것이기에 조금도 아쉽지 않았다.





  그렇게 주방 한구석을 차지하던 김치냉장고에서 몇 달 전부터 알림 소리를 내기 시작하더니 며칠 전부터는 연주하듯 알림이 울린다.

  아이들은 엄마가 곧 신형 김치냉장고를 살 거라는 기대를 했고 나는 남편이 고쳐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했다.

  맥가이버인 남편의 손길이 닿은 김치냉장고의 알림 소리는 이제 멈췄지만 연식이 오래된 김치냉장고를 교체하는  안전할  같다는 생각에 구매하기로 했다.

  지난 주일, 캄보디아와 미얀마에 보내는 선교헌금을 헌금함에 넣는건 수월했는데 막상 내가  김치냉장고를 결제하기까지 얼마나 많이 망설였는지 모른다.

  꼭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려고 하는지, 충동구매가 아닌지 몇 번을 고민하고 결제를 하고 나니 홀가분해졌다.  




  나이가 들면서 할 수 있지만 안 하는 것과 하고 싶지만 못하는 것이 분명해지고 할 수 있지만 안 할 때는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으니 자유로울 수 있다.

  반면 아직도 하고 싶지만 못하는 것이 있기에 나는 오늘도 낯선 것에 도전하고 좋은 결과를 얻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런 시간들을 보내다보면 나도 할 수 있지만 안하는 일들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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