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지만 안 하는 일들이 더 많아지길 바래본다
결혼 후 1년이 지난 서른한 살의 어느 날, 우리 부부는 시장 길목의 작은 가게를 얻어 횟집을 시작했다.(시장 길목의 젊은 사장들 1, 시장 길목의 젊은 사장들 2)
둘 다 장사를 해본 적도 없고 장사가 잘 되리라는 확신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대출은 받지 않고 그동안 모아놓은 돈으로 시작해 보기로 했다.
4인용 테이블 5개가 간신히 들어가는 작은 만두 가게를 인수받아 간단히 셀프 인테리어를 하고 작은 주방에는 횟집에 꼭 필요한 주방기기들을 테트리스 쌓듯 꼼꼼히 들여놓았다.
작은 주방에 필요한 기기들을 들여놓기 위해 여러 군데의 업소용 주방기기 매장을 돌아다니며 최대한 크기가 작은 걸 구해야 했다.
횟집 주방에서 사용하던 뚜껑식 김치냉장고는 장사를 접고 난 뒤 우리 집 주방에서 사용하고 있다.
시어머님은 매년 김장철이 다가오면 돈을 줄 테니 김치냉장고를 큰 것으로 장만하라고 하신다.
아직 쓸만한데 용량이 적다는 이유만으로 김치냉장고를 교체한다는 게 내가 생각하기에는 낭비라는 생각도 들고 용량이 커지면 당장 필요 없는 식재료를 많이 사서 냉장고를 채울 테고 결국은 버리는 식재료가 더 많아질 거라는 생각에 작은 김치냉장고를 고수하고 있었다.
결혼하고 장사를 시작할 때는 돈이 없어서 작은 가게를 얻어 작은 김치냉장고를 구입했지만 지금은 내가 모아놓은 돈으로도 충분히 구입할 여력이 되지만 굳이 사야 할 이유가 없어서 사지 않는 것이기에 조금도 아쉽지 않았다.
그렇게 주방 한구석을 차지하던 김치냉장고에서 몇 달 전부터 알림 소리를 내기 시작하더니 며칠 전부터는 연주하듯 알림이 울린다.
아이들은 엄마가 곧 신형 김치냉장고를 살 거라는 기대를 했고 나는 남편이 고쳐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했다.
맥가이버인 남편의 손길이 닿은 김치냉장고의 알림 소리는 이제 멈췄지만 연식이 오래된 김치냉장고를 교체하는 게 안전할 것 같다는 생각에 구매하기로 했다.
지난 주일, 캄보디아와 미얀마에 보내는 선교헌금을 헌금함에 넣는건 수월했는데 막상 내가 쓸 김치냉장고를 결제하기까지 얼마나 많이 망설였는지 모른다.
꼭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려고 하는지, 충동구매가 아닌지 몇 번을 고민하고 결제를 하고 나니 홀가분해졌다.
나이가 들면서 할 수 있지만 안 하는 것과 하고 싶지만 못하는 것이 분명해지고 할 수 있지만 안 할 때는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으니 자유로울 수 있다.
반면 아직도 하고 싶지만 못하는 것이 있기에 나는 오늘도 낯선 것에 도전하고 좋은 결과를 얻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런 시간들을 보내다보면 나도 할 수 있지만 안하는 일들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