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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하사색 Jul 15. 2023

내 것이라고 믿고 있는 모든 것



  넷째 언니가 마흔이 되던 해, 내게 말했다. 이제 더 이상 주어진 것을 바꾸려고 애쓰지 않고 인정할 수 있는 나이가 돼서 편하다고 했다. 편하다는 언니의 말이 체념처럼 들렸다. 내 눈에는 부럽기만 한 언니가 왜 그렇게 말하는 걸까?

  마흔이라는 나이, 불혹이라는 뜻이 꽤 매력 있게 느껴졌고(불혹 : 세상 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나이) 나에게 마흔은 어떻게 다가올까 기대했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순식간에 마흔이 됐고 체념하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십이 넘은 둘째 언니는 자녀가 있는 여성은 마흔부터 서서히 꽃을 피우고 오십은 성과를 이루기 시작하는 나이라고 했다.

  언니 말대로 내 주위에 있는 오십 대 선배들은 왕성한 활동을 하며 각자의 분야에서 자신의 확고한 위치를 만들고 있었다.

  그즈음 오십에 시작해서 짠테크로, 투자로 부를 이룬 여성의 이야기가 화제가 됐다.

  수명이 길어진 백세 시대에 오십이 채 되지 않은 사십 대의 나에게도 충분히 많은 기회가 있을 터였다.

  나도 할 수 있다고, 나도 해낼 거라고 하루하루 바쁘게 살다가 언젠가 내게 너무 애쓰며 살다 몸이 축난다던 넷째 언니의 말이 맴돈다.




  며칠 전 부고를 들었다. 한 번도 뵌 적은 없었지만 그분과 관련된 이야기를 자주 들었기에 부고 소식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회사에서 갑자기 쓰러져서 입원한 지 10일 만에 의식을 못 찾고 돌아가셨다고 한다.

  최근 사업을 확장한 사모님의 일을 발 벗고 도와주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오십 중반의 나이에 그렇게 황망히 떠나시다니...

  준비 없이 떠난 이별이라 마음의 준비도 안 되어 있겠지만 부군을 많이 믿고 의지했던 사모님은 또 다른 환경에 적응해야 할 것이다.

  지금껏 내 것이라고 믿고 있는 모든 것들이 단지 빌려 쓰고 있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건강도, 재산도, 권력도...

  애쓰며 이룩해 온 그것들을 어느 순간 준비도 없이 되돌려 줘야 할 때가 오겠지.

  숨 쉬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는 이 순간이 소중하다는 것을 매 순간 되새기며 살고 싶다.

  이뤄낸 것에 대해 교만하지 않고,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해 낙담하지 않고 빌려 쓰는 이 시간들을 충실히 채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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