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의 꿈처럼 사라져 있었다
나는 만났던 사람의 얼굴과 그 사람과의 했던 일들을 잘 기억하는 편이었는데 장사를 하면서 그 점이 장점이 되었다.
가게에 두 번 이상 방문한 손님들의 얼굴은 거의 다 기억했고 지난번에 와서 어떤 회를 주문했었는지, 즐겨먹는 술은 어떤 것이었는지 기억을 하고 알아봐 주니 찾아오는 손님들이 너무 좋아했다.
손님들의 눈에 안사장은 활발하고 쾌활한 편이였지만 횟감을 가지러 수족관에 나갔다 들어갈 때만 볼 수 있는 남자 사장님은 언제나 궁금증의 대상이었다.
테이블을 지나치며 간단히 목례를 하고 서둘러 주방으로 들어가는 성실한 젊은 사장과 술 한잔하며 대화를 나눠보고 싶다는 손님들이 많아졌다.
가게 맞은편 정식 일식집 동갑 사장님은 회를 정식 코스로 주문받았고 주문한 회를 내오면 손님들이 건네는 술잔을 한 잔씩 마시며 간단히 술친구도 해드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우리 가게는 저렴하게 판매하는 포장마차 횟집이어서 주문량이 많았고 밀려드는 주문에 횟감을 썰어내는 남자 사장의 얼굴을 보기가 쉽지 않았다.
간혹 단골손님들과 친해져서 술 한잔 같이 하자는 얘기가 나오면 주문을 받지 않는 새벽 12시 30분 이후에는 가능하고 말씀드리곤 했는데 정말 그 시간에 다시 찾아와서 함께 먹고 가신 분들도 계셨다.
작은 가게에서 장사를 하다 보니 생각지 못한 당황스러운 일들도 많았다.
가끔은 계산을 하지 않고 나가시는 분들도 계셨고 살아있는 대게를 반 마리만 달라고 억지를 부리는 분도 있었고 다른 곳에서 많이 드시고 영업종료시간을 30분 남겨놓고 오셔서 막무가내로 주문을 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운 여름날 아이스크림 한 봉지를 사가지고 오셔서 건네셨던 분들, 단지 젊은 부부들이 음식장사를 하는 게 보기 좋아서 자주 가게를 찾게 된다고 하셨던 분들, 가게 근처 종합병원에 뜻하지 않는 사고로 가족이 입원한 뒤 우리 가게의 따뜻한 식사가 위로가 된다고 말씀하셨던 분들, 특히 가게에서 남편의 중학교 은사님도 손님으로 만나게 되었고 자주 찾아오셔서 열심히 사는 우리 부부를 응원해 주셨다.
힘든 하루를 마치고 아직 영업 중인 다른 가게에 들러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피로를 풀기도 했고 쉬는 날이면 가끔씩 막창집 사장님을 쫓아 출퇴근할 때 타고 다니던 스쿠터를 끌고 오토바이 동호회 대열에 섞여 나들이를 다녀오기도 했다.
그렇게 결혼 후 3년이 넘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고 임신과 출산이 더 이상 늦어지면 안 된다는 시부모님의 말씀의 따라 임신을 하게 되면서 우리의 첫 가게는 같은 업종을 하시겠다는 분께 넘기게 됐다.
장사를 그만두고 몇 년 뒤에 시장 길목을 일부러 찾아갔는데 우리가 장사했던 그 가게는 이불가게로 바뀌어 있었고 시장 길목 젊은 사장들의 가게도 젊은 날의 꿈처럼 사라져 있었다.
처음 경험했던 장사라 힘들고 어려운 일들도 많았지만 지나고 보니 행복한 기억들, 따뜻한 기억들만 남아있다. 비록 2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장사를 하면서 만났던 따뜻한 사람들과 수많은 사연들이 있었기에 내가 모르던 세상을 알게 됐고 그 시기가 있었기에 사람들을 이해하는 힘이 한 뼘 더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가게에서 술을 마시던 손님 중에는 상대방의 생각이 틀리다며 화를 내며 싸우기도 했다.
상대방의 생각이 틀린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다른 것이다.
상대방의 생각과 가치관이 다름을 인정하고 그 사람 자체를 존중해 준다면 누구나 만나고 싶어 하는 따뜻한 사람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