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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하사색 Feb 10. 2022

냉장고를 비워내면서

나는 비워내는 게 왜 이렇게 힘들까?


  작년 이맘때 시댁과 10분 거리인 이 집으로 이사를 오면서 기존에 쓰던 냉장고를 버리고 좀 더 큰 냉장고로 바꿨다. 

  새로 구입한 냉장고는 디자인도 세련됐고 기존에 쓰던 냉장고보다 폭도 넓고 깊이도 깊었다. 냉장고 안에 있던 음식들을 정리함을 이용해서 깨끗하게 옮겨 놓으니 냉동실과 냉장고에 빈자리가 많이 생겨서 새로운 출발을 하는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건강에 대한 염려가 많으신 시어머니는 먹는 음식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신다. 

  시어머니는 거리가 제법 멀었던 신혼 때부터 반찬거리를 만들어서 가져다주셨다.

  가져다주신 음식 중에는 내가 처음 먹어보는 음식도 있었고 입맛에 맞지 않아 손이 안 가는 음식도 있었지만 맞벌이를 하며 서툰 음식 솜씨로 고생할 초보 며느리를 배려해 주시는 시어머님의 마음을 알기에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그렇게 냉장실과 냉동실에 쌓여갔다.




  결혼하고 가족들을 위해 16년의 집 밥을 하며 살다 보니 가족들이 씹히는 식감이 있는 반찬들을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다. 내가 부드러운 나물들을 만들어 내오면 한 끼만 먹고 금세 찬밥 신세가 됐다. 몇 번 그런 경험을 하다 보니 가족들이 환영할 만한 음식들을 하게 된다. 

   어머님이 만들어 주시는 반찬들은 대체적으로 식감이 부드럽고 짭짤해서 금세 없어지지 않는다. 

  결혼 16년이 지났으니 음식을 못할 거라는 걱정은 하지 마시고 재료를 주시면 만들어 먹겠다고 말씀도 드려보지만 시어머님은 여전히 반찬을 가져다주신다. 

  지금도 여전히 먹지 못한 반찬들은 냉장고와 냉동실에 쌓여가고 있다. 




  음식을 하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어머님의 반찬을 냉장고에서 비워내기란 참 어렵다. 

  이제는 1년 전 빈자리가 많았던 냉장고의 빈자리를 찾기가 어려워졌다. 

  냉장고에 단지 머물러 있다가 결국 버려지게 되는 반찬들을 보면서 나는 비워내는 게 왜 이렇게 힘들까? 어머님은 알 수 없는 책임감을 덜어내는 게 왜 이렇게 힘드신 걸까?



  그러면서 생각해 본다. 

  지나간 것에 대한 미련을 비워내고,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욕심을 비워내고,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을 비워내고, 시작하기 전에 낯선 두려움을 비워낼 수 있다면, 그렇게 비워내는 연습을 하다 보면 내 삶에 주어진 것에 충분히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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