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냥 지워버릴까...." 김칫국의 향연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리는 건 너무 가볍게 느껴지고, 블로그에 올리자니 아무도 안 봐서 재미가 없고. 보라고 홍보까지 할 건 아닌데. 뭐 이런 마음을 얘기하니 "브런치가 답이네~"라는 대답에 가벼운 마음으로 신청해 본 브런치 작가. 어, 이게 되네?
다음날 바로 브런치북 두 개를 만들어 첫 글을 발행했다. 작가라는 호칭. SNS에 그림 계정을 만들어 활동할 때에는 종종 들어봤지만 글로 나름의 '작가'가 되어 본 건 처음이었다. 왠지 책임감도 들고, 제목만 붙였는데 짜잔! 브런치북 연재 중! 하며 있어 보이게 만들어주는 UI에 탄력을 받아 이것저것 써 봤다. 글을 쓰는 건 언제나 어렵진 않았다. 나는 꺼내놓고 싶은 말들이 많으니깐.
다음 날 브런치를 열어보니 하트 20개가 찍혀 있었다. 무섭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내 글을 보고 2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좋아요를 눌렀고, 그냥 지나쳐 간 사람은 더 많겠지 생각하니 왠지 무서운 마음이 들었다. 이거이거....괜찮은 걸까?
막연한 두려움. 글은 늘 쓰고 싶었는데, 남아있는 게 없다. 지금까지 그래도 참 자주 써 왔다. 일기는 물론이고 블로그에는 짧은 단상들. 일상글을 쓰기도 하고, 학교에서 과제로 내주는 글도 쓰고. 지금은 싹 다 지웠다. 일기장도 다 없다. 어디로 갔나, 내 손으로 지우고 버렸다. 이것도 또 내가 다 지워버릴까 봐 무서웠다.
글의 주제 때문일까, 비교적 내밀한 이야기를 다루는 내 글들은 늘 다시 보면 민망했다. 새벽 감성이 이런 걸까. 뭐 이런 얘기까지 썼지, 쪽팔려하는 마음으로 정말 실눈 뜨고 삭제버튼만 찾아서 영구삭제해버리곤 했다. 일기장은 누가 볼 수 없게 물에 적셔서 버린 적도 있다. 내가 쓴 글을 부끄러워도 다시 읽어봐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그냥 '이건 제대로 된 글이 아니걸랑' 하며 지워버렸다. 근데 또 혼자 쓰는 건 재미가 없다. 소설은 적성이 아닌 것 같고, 내가 아닌 척 글을 쓰는 것도 재미가 없다. 난 그냥 내 얘기를 하는 게 재밌나 보다. 왜 지우고 또 지우면서도 나는 글을 쓰는 걸까.
내가 글을 잘 쓰고 있을까? 이럴 때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나는 대학에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지원했는데, 자기소개서는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으며 혼자 썼다. 여러 분께 찾아갔는데 갈 때마다 지적할 부분은 계속 생겼다. 열심히 하고는 있지만 자신감은 바닥까지 떨어져 있었다. 결국 마감 하루 전 날이 찾아왔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너무 바빠 보이셔서 차마 찾아가지 못했던 국어 선생님께 갔다. 흔쾌히 내 자기소개서를 받아주신 선생님은 몇 시간 후에 다시 오라고 하셨다. 떨렸다.
"먼저 하고 싶은 말은, 너 글을 참 잘 쓴다."
이 말을 떠올릴 때마다 조금 울컥한다. 그저 칭찬이라기보다는, 바닥까지 떨어져 있던 자신감이 한순간에 회복됐다. 너 진짜 잘한다! 라기보다는 이 정도로 충분하다, 열심히 했다.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 같았다. 시간이 없으니 몇 가지 부분만 수정하고 넘어가자고 하셨고, 나는 그 피드백을 끝으로 더 이상 수정하지 않고 자소서를 제출했다. 그렇게 학생부종합전형으로 대학에 합격해서 지금은 4학년 2학기를 앞두고 있다. 다시 보니 잘 쓴 자기소개서는 아니었지만, 뭐 그 정도로 되었다.
완벽한 글을 쓰는 방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완벽한 글이 되면 그때 세상에 내보내야지. 내가 글을 잘 쓴다는 말만 들을 수 있을 때가 되면 그때 세상과 마주하게 해야지. 택도 없는 소리. 완벽해질 수 없다. 나는 그냥 글을 쓰는 걸 포기하기를 반복해 왔던 거다.
나의 첫 브런치북,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글을 올려놓고 하루 동안 왠지 모를 불안감에 시달렸다. 이거 아는 사람이 읽으면 별로 안 좋지 않을까. 글을 못 쓴 건 아닐까. 내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이상하게 보이면 어떡하지. 근데 계속 쓰고는 싶었는데.
내가 뭘 좋아하는지, 리스크를 감수하면서도 나를 위해 해나가야 할 게 뭔지 몰랐던 게 아닐까 싶다. 내가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줄 모르고, 그냥 잘하는 게 하나 더 있다는 칭찬을 받고 싶어서 글을 쓰려고 하는 줄 알았던 게 아닐까. 나는 쭉 글쓰기를 좋아해 왔던 것 같다.
최근에는 시간을 딱 정해서 그만큼의 시간만 들이고 끝내는 연습을 하고 있다. 어제는 45분을 잡고 브런치에 글 하나를 썼고, 2시간을 잡아서 이모티콘 하나를 제출했다. 며칠 전에는 항상 올리고 싶었던 노래 영상도 인스타그램에 짧게 올렸다. 하고 싶었던 걸 몽땅 하고 있다. 언제나 '완벽할 때까지', 암묵적으로 마감기한을 저 멀리 안드로메다에 놓고 하고 싶은 일 - 아니, 해야 할 일들을 어물쩍 미뤄오던 나에게 내리는 특단의 조치.
나의 것들이 세상으로 당당히 나가려면, 내 손에 지워지지 않고 끝을 맺을 때까지 세상과 마주해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한 걸 다시 보면 부끄러워지는 건 내가 발전한 증거라고 했다. 그래서 지금 보기 힘드니깐 지워버려야지! 어어....? 끝이 있었다면 남겨둬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 언제나 '더 완벽해질 수 있는 미완성'의 상태로 둘 순 없다. 지금은 여기까지만 할 수 있어, 인정하고 적당한 때에 마감해 버린 후 쳐내야 한다. 그때의 나는 정해진 시간에 최선을 다 했다는 사실로 완성하기. 그럼 더 이상 '시간을 더 쓴다면 완벽해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터무니없는 희망고문에 발전하지 못하고 다시 백스텝을 밟는 그런 일은 없을 것 같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분명 나 하나는 아니겠지. 스스로 만들어낸 이 김칫국스러운 불안감에 잠겨 있는 이가 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글 때문에 불안한 마음을 글을 쓰며 풀어내었다. 나에 관한 많은 사실들을 인정하며 제법 편안해진 마음으로 글을 마무리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