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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순 Aug 22. 2019

Q1. 누가 때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장수왕 처럼 하자!

남편 : 누가 때리면 너도 맞고만 있지 말고 차라리 같이 때려라.


나 : 같이 때리면 너도 똑같은 사람 되는 거다. 폭력에 폭력으로 대응하면 싸움이 끝나지 않는다.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던가 상황에 따라 지혜롭게 대처해라.


남편 : 너무 이상적인 논리다. 현실은 이상과 다르다. 남자들의 세계에서 맞고 바로 저항하지 않거나 선생님에게 이르면 찌질이라고 더 괴롭힌다. 이게 현실이다.


나 : 그건 좀 더 큰 남자들의 세계에서 필요한 요령이지 여섯 살 아이에게 그렇게 가르 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큰 아이 유치원에서 크고 작은 충돌이 생길 때마다 남편과 나는 이런 논쟁을 반복했다. 그때마다 뭔가 찝찝한 기분으로 대화를 마무리했던 나는 조금 더 괜찮은 답과 조금 더 탄탄한 논리에 목말라 있었다. 그러던 중 나는 최태성 선생님의 책 '역사의 쓸모'에서 장수왕에 대한 글을 읽고 무릎을 쳤다.


이거다...


 장수왕에게 조공은 하나의 외교 전략이었어요. 당시 중국은 위진남북조 시대였습니다. 고구려 옆에는 북위와 북연, 두 나라가 있었고, 그 아래에는 송이 있었습니다. 고구려는 조공을 이용해 모든 나라와 친선 관계를 도모했습니다. 당시 중국 대륙에 난립해 있는 여러 국가 사이에서 어느 한쪽에 서지 않고 각 나라와 실리 외교를 했던 겁니다. 말이 쉽지,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북위와 송은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나라인데 그 사이에서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게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한 번은 문제가 터졌습니다. 북위가 북연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던 거예요. 북연이 망하기 일보 직전이었던 435년, 북연의 왕이었던 풍홍이 고구려에 망명을 요청합니다. 장수왕은 선택의 기로에 놓이지요. 정말 곤란한 노릇이었을 겁니다. 풍홍의 망명을 받아들이면 분명 이득이 있어요. 고대국가는 사람의 숫자, 그러니까 인구를 늘리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농경 사회니까 노동력을 최대한 확보해야 유리해요 풍홍이 망명하면 어마어마한 인적, 물적 자원이 생기는 거잖아요. 왕이었던 사람이니 따르던 백성도 함께 데려오고 재물도 가지고 올 테니까요. 고구려로서는 국력을 키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하지만 풍홍을 받아들이면 북위와 등을 돌리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이죠.

 고심하던 장수왕은 결단을 내립니다. 북위가 북연을 함락하려는 순간, 산등성이에서 커다란 나팔소리가 들려요. 바로 고구려 군대의 나팔소리였습니다. 얼마나 대규모의 군대를 보냈냐면, 군사들의 행렬이 무려 32킬로미터나 이어졌다고 해요. 고구려 군대가 풍홍의 무리를 호위해서 떠나는데도 북위의 군대는 그냥 멀뚱멀뚱 보고만 있었습니다.

 … 북위는 고구려 군대가 풍홍을 데리고 간 뒤에야 항의합니다. 풍홍을 보내지 않으면 전쟁을 하겠다고 선포하죠. 그때 장수왕은 어떻게 했을까요? 큰소리를 치며 전쟁을 선포했을까요? 아니면 풍홍을 데려온 것을 후회하며 돌려보냈을까요? 전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조공을 바치면서 납작 엎드려요. 그러고는 북위를 살살 달랩니다. "풍홍이 다시 세력을 얻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내가 막을 테니 나를 믿어라." 이렇게 답하지요. 북연의 왕은 여기 살아 있지만 아무런 힘이 없으니 걱정 말라고 한 거예요.

 만일 이런 일이 지금 일어난다면 언론은 어떻게 반응할까요? 댓글은 또 어떨까요? '장수왕의 굴욕 외교', '국격 없는 나라 망신'이라는 기사가 나오고, 싸우면 이길 수 있는데 왜 그렇게 낮은 자세를 취하느냐고 비난 일색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장수왕은 풍홍을 받아들임으로써 많은 자원을 얻었고, 북위에 몸을 숙임으로써 전쟁도 피했습니다. 이득을 취하고 손실은 피했어요. 체면을 잠시 내려놓은 대신 실속을 챙긴 겁니다. 이게 장수왕의 선택이었어요.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고구려에 온 풍홍이 자신도 대국의 왕이었다면서 무리한 요구를 하기 시작한 거예요... 하지만 고구려 입장에서는 북위에 약속한 것도 있으니 풍홍에게 후한 대접을 할 수는 없습니다. 풍홍이 세력을 휘두르게 해서는 안 됐어요. 풍홍은 '너희들 이런 식으로 하면 후회할 거야!' 하면서 북위의 경쟁자인 송나라로 망명하기 위해 몰래 준비를 합니다. 송나라도 얼씨구나 했겠지요. 풍홍이 오면 가뜩이나 싸우고 싶었던 북위를 공격할 명분이 생기거든요. 하지만 풍홍의 계획은 발각되고 맙니다.

 이 상황에서 장수왕은 두 번째 선택을 합니다. 가차 없이 풍홍을 처형합니다. 풍홍뿐만 아니라 그 일가를, 아들 손자까지 다 죽여버려요. 북위는 만족했겠지만 이번에는 송나라가 화를 냈어요. 송나라로 망명을 시도하는 정치 인사를 고구려에서 죽인 거잖아요. 열 받은 송나라는 풍홍 일가를 데리러 고구려로 떠났던 군사들에게 고구려 장수들을 죽일 것을 명합니다. 까딱하면 전쟁이 날 판국이에요. 장수왕은 또다시 고민에 빠집니다...

 여기서 장수왕이 세 번째 선택을 합니다. 고민을 거듭하던 장수왕은 고구려 장수들을 죽인 송나라 군사들을 송나라에 그대로 돌려보냅니다. "너희 군사들이 먼저 싸움을 걸었으니 너희 나라에서 알아서 처리해라" 그러면서 800 필이나 되는 말까지 함께 보내요. 송나라 조정에서 보낸 군사임을 알면서도 일부러 그렇게 이야기한 거죠. 북위에 그랬듯이 한 번 더 물러난 것입니다.

 이처럼 장수왕은 가능한 한 전쟁을 피합니다. 고구려는 힘이 있었어요. 여차하면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었고, 이길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일어나면 승자도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니까요. 장수왕은 약간의 손해로 큰 피해를 막으려고 했습니다. 고구려는 단지 무력이 아니라 실속을 챙기는 유연한 자세로 전성기를 유지했던 거예요. 우리는 그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는 거의 모든 문제는 체면과 실속 사이의 갈등으로 정리되는 것 같습니다. 체면을 지키자니 왠지 손해를 보는 것 같고, 실속을 챙기자니 자존심을 구기는 것 같죠. 그럴 때 저는 장수왕의 세 가지 선택을 떠올립니다. 장수왕에게 가장 중요한 목표는 고구려의 안정이었을 겁니다. 이를 위해 잘 나가는 나라의 왕으로서 체면을 차리기보다 고구려의 안정에 도움이 되는 선택을 했어요. 그렇다고 매번 자존심을 내팽개친 것은 아닙니다. 풍홍 일가를 척결한 두 번째 선택을 보면 자존심을 세워야 할 때는 세울 줄 아는 인물이었어요. 그 누구보다 현명하게 명분과 실리를 택한 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이런 인물이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에요. 역사를 돌아보면 우리나라는 명분과 자존심에 너무 많은 점수를 주곤 했습니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에 병자호란이 일어나는 과정을 보면요,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예요. 임진왜란이 끝나고 조선 북쪽에는 여진족이 엄청나게 성장해 있었거든요...

 그만큼 후금의 세력이 컸음에도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를 앞세워 권력을 잡은 서인 정권에는 명나라와 친하게 지내고 후금은 멀리한다는 '친명배금'의 명확한 외교 정책이 있었습니다. 실리도 실용도 필요 없고 오로지 명분에 입각한 외교였어요. 주변 상황 자체를 인식하지 못했고, 그럴 생각조차 없었습니다. 후금에서 조선의 왕족을 보내라고 하면 보내기는 해요. 보내기는 하지만 가짜 왕족을 보냅니다. 그리고 후금 사신들이 오면 제대로 대접하지 않았습니다. 오랑캐라고 깔본 거죠. 조선의 이런 태도가 꼭 전쟁의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병자호란이 일어나는데 영향을 미쳤던 것은 사실입니다.

 훗날 청나라(옛 후금)에 방문한 박지원은 문화 충격을 받아요. 오랑캐 나라인 줄로만 알았는데 직접 가보니 굉장히 발전한 나라였기 때문이죠. 일례로, 박지원은 청나라의 수례를 보고 놀랍니다. 수레에다가 짐을 실어서 물자를 교류하는 모습을 고는 우리나라는 왜 저렇게 하지 않을까 의문을 가져요. 그런데 다른 사신들은 상업이 발달한 모습조차 우습게 봅니다. 오랑캐들이라서 돈만 탐낸다고 생각한 거예요. 조선의 양반은 상업을 천시했잖아요... 하지만 박지원의 관점은 달랐습니다... 배울 점이 있으면 배워야 한다는 게 의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조선 조정에는 명분과 자존심이라는 색안경을 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는 어떤 이익도 챙길 수가 었겠죠.

... 가성비를 삶의 문제에 대입시켜 보면 어떨까요? 자존심만 세우다가 손해만 보는 경우는 가성비가 낮은 선택입니다. 반면에 겉치레는 좀 덜하더라도 순이익이 발생하는 경우는 가성비가 높은 선택이죠. 우리나라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있기 때문에 가성비가 높은 선택을 하는 데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저 역시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 지를 걱정하다가 정작 제 삶에 도움이 되는 선택을 하지 못한 경우도 많았어요. 그래서 요즘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될 때 장수왕을 떠올리며 합리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주거든요.

                                                         [source : 최태성의 '역사의 쓸모' 발췌 + KBS 역사저널 '그날' 사진 자료]


장수왕은 그에게 가장 중요한 목표인 '고구려의 안정'을 중심에 두고 주변 국가의 정세를 살펴 물러 설 때와 자존심을 세울 때를 구분했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당시 고구려가 전쟁을 해서 이길 수 있는 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전쟁을 피하려 노력했다는 점이다. 전쟁이 시작되면 승자가 되어도 큰 피해가 발생하는 것을 알고 되도록이면 약간의 손해를 보더라도 큰 피해를 막으려 했던 그의 지혜가 놀랍다.


장수왕의 외교술이 나에게는 더없이 멋진 육아 지침서로 읽히니 나도 어쩔 수 없는 엄마인가 보다. 그것도 아들 셋 엄마...



A Letter from mom


아들아,
살다 보면 뜻하지 않게 공격의 대상이 되거나 괴롭힘의 대상이 될 때도 있단다. 그런 일이 있어선 안 되겠지만 혹시라도 나중에 학교생활을 하다 그런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면 엄마는 네가 장수왕을 떠올렸으면 좋겠어.

장수왕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할까 하고 말이야.

장수왕이라면 자신을 때린 상대를 두들겨 패줄 만한 힘이 있다 해도 바로 주먹부터 휘두르지 않았을 거야. 일단 싸움을 시작하면 이기더라도 많이 다치고 나중에 보복을 당할 수도 있으니 말이야.

먼저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목표가 뭔지 생각했을거야. '즐거운 학교생활과 자기 성장', '멋진 사람이 되기 위한 내공 쌓기' '원만한 교우관계'... 뭐 이런 거 말이야.

장수왕이라면 이렇게 자기 목표에 집중하면서 몸을 숙일 때와 자존심을 세울 때를 판단했을 거야.

그러면서도 자신과 상대 편의 전투력도 영민하게 파악했겠지. 나보다 전투력이 막강한 상대라면 두 말할 것 없이 피해 가겠지만 해 볼 만한 싸움이더라도 내가 많이 다칠 것 같으면 큰 마찰을 일으키지 않고 넘어가도록 순간의 기지를 발휘했을 거야.

물론 제대로 제압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강력한 저항도 하겠지. 하지만 장수왕이라면 이런 판단을 할 때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서 소위 말하는 '사나이 다움'이라는 이상한 명분을 위해 하지는 않을 거야. 왜냐면 그는 남들이 어떻게 보든 국가를 위해 피해를 최소화하고 실리를 챙길 줄 아는 진짜 사나이였거든. 누가 뭐라든 내 길을 가는 진짜 스웩을 아는 왕이랄까?ㅎㅎ

남들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려면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해. 특히 아직 성인이 아닌 너희들은 또래 문화라던지 친구들의 평판, 뭐 이런 게 중요할 테니 훨씬 더 어려울 거야.

그래도 엄마는 네가 주변의 판단이나 시선에 움직이기보다는 중심을 잘 잡고 묵묵히 너의 길을 갈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겉으로 보이는 것, 또는 보여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고, 진짜 사나이답고 멋있는 사람은 힘자랑, 돈 자랑, 권력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란 거... 너도 알고 있잖아?ㅎㅎ

어쨌든...
장수왕처럼 웬만하면 적을 두지 말고 두루 두루 원만하게 지내렴.
엄마 속상하니까 몸도 마음도 다치지 말고...
사랑해!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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