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긍디 Jul 12. 2024

시간 여행자의 정류장

 로또 1등 당첨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가끔 '저분은 미래의 로또번호를 기억한 채로 타임머신을 타고 현재로 되돌아온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삼전, 엔비디아 등 주식으로 대박 난 사람들도,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같은 코인 열풍이 불었을 때도 말이다. 타임머신은 이미 존재하고 어떤 이유로 선택된 사람들은 타임머신을 탈 수 있는 건 아닐까?


 나는 타임머신이 있다고 믿고 있다. 어딘가에 시간 정류장(내가 지은 타임머신을 타고 내리는 곳)이 있고 누군가는 그 장소를 알고 있다고. 한때는 나에게도 그런 기회가 오지 않을까 설레기도 했었다. 누가 알려주는지도 전혀 모르면서 막연하게 말이다. 


 타임머신을 가마솥이 엎어진 모양으로 표현한 만화나 웹툰을 봤지만, 내게 있어 타임머신은 버스의 모양이었다. 두런두런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 여행을 떠나는 여행자들을 상상하기도 했다. 같이 좌석에 앉아 서로 과거와 미래를 이야기하며 놀라기도 하고 안쓰러워하기도 하는 그런 버스.  


 타임머신(아니, 타임버스라고 해야 하나?)을 탈 수 있다면 어디로 가야 할지 미리 생각해보곤 했다. 생각보다 굴곡이 있는 인생을 살아왔기에 아직까지도 제대로 정하지 못했다. 어느 시간 정류장을 이용할지 생각해 두더라도 또 다른 시간 정류장들이 생겨나기 때문이었다. 


 나의 첫 번째 시간 정류장은 초등학교 6학년 때이다. 우리 집은 마을에서도 꽤 높은 곳에 있었는데 절벽 같이 깎아진 언덕을 내려다보면 아랫마을이 한눈에 다 보이곤 했다. 쾌활한 성격이었던 나는 그날도 역시 친구들을 잔뜩 데리고 집으로 왔다. 갑자기 찾아온 친구들에도 당황하지 않던 그는 나를 이끌고 아랫마을에 있던 시장으로 향했다. 그와 함께하는 시장 나들이는 항상 즐거웠는데 그날의 그는 뭔가 좀 달랐었다. 어느 가게에 들어갔을 때 그는 아직도 잊지 못할 말을 내게 전했다.


"만약, 엄마가 옆에 없고 멀리 떠난다면 어떨 것 같아?"라고.


 그 뒤로는 펑펑 울었던 기억만 난다. 무슨 소리냐고, 어딜 간다는 거냐고. 그는 우는 나를 달래며 장난이라며 웃었다. 그때의 그의 표정을 봤어야 했는데. 나의 감정에 휩쓸려 그의 표정은 볼 수 없었다. 아마 봤어도 이해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는 며칠 뒤에 떠났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나는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불안함에 하루를 보냈다. 가끔 늦게 들어오기도 하던 그였기에 애써 불안함을 감추고 오지 않는 잠을 자려고 누웠다. 그는 더 이상 오지 않았다.


 이 날의 여파는 꽤나 컸었다. 해보지도 않았던 집안일, 설상가상으로 아빠의 건강 악화로 덩그러니 어린애들끼리만 살아야 했으니까. 동생들은 너무 어렸다. 밝았던 성격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둡게 변했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모조리 다 망가졌다. 세상에 나 혼자 남은 기분이었다.


 아직 생각한다. 그때 좀 더 붙잡아 볼 걸. 좀 더 잘할걸. 너무 힘들게 살았던 그의 과거는 전혀 몰랐던 그 어린 날의 내가 밉다고.


 타임머신이 있다면 엄마가 떠난다고 말했던 그날로 돌아가, 어린 자식들을 놔두고 떠날 생각을 했던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이곳이 나의 첫 번째 시간 정류장이다.


 또 다른 시간 정류장은 다시 만나게 되었던 그의 마지막 날이다. 최근이라고 하기엔 벌써 6년 이상 지나버렸지만. 떠났던 그와 어떻게 연락이 닿아 대학교를 다닐 때 연락을 하며 지내게 되었다. 하지만 그에겐 이미 암이라는 병이 생겨 있었고 삶의 의지를 잃어 항암치료는 전혀 하지 않고 썩어가는 피부만 관리하고 있었다.  


 어린 자식들과 연락을 하면서 그는 늦게나마 살아보고자 노력했는데 병원에서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던 시기도 지나 2년 이상을 더 평소와 다름없이 살았다. 정말 대단한 사람이지. 그러다 언제부턴가 잠을 자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러면서 우린 지쳐갔다. 간병이 이렇게나 힘든 건지 전혀 몰랐다. 조금씩 힘듦이, 귀찮음이 더 커졌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결국 병원에서는 더 이상 잠에서 깨지 않는 그를 다른 병원으로 옮기길 권유했고 우린 조심히 요양병원으로 그를 옮겼다. 너무 지쳐 다음 날엔 알람을 끄고 늦잠 한 번만 자자고 했던 우리. 다음 날 이상한 기분에 번뜩 눈을 떴는데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문자와 수없이 찍혀있던 부재중 전화를 보았다.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요양병원으로 가는데 그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아직도 말이다. 병원에 도착해 만난 그는 어제와 다르게 너무 차가웠다. 사람이 이렇게 차가울 수가 있을 정도로. 그냥 평소같이 자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왜 어제와 오늘은 이렇게 다른 걸까 싶었다. 그는 그렇게 떠나버렸고 남겨진 건 임종을 지키지 못했던, 아픈 엄마를 두고 몹쓸 생각을 하던 딸만 남았다. 딸은 이후로 우울증을 앓기 시작했고 단기 기억에 문제가 생겼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있다.


 그 하루가, 그 아침이, 나를 지금까지도 옥죄고 있다. 


 이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이른 나이에 떠나버린, 고생만 많이 하던 작은 엄마에게 잘 가라고 고생했다고 이야기해 줄 수 있을 텐데. 언젠가 엄마가 나온 꿈을 꾸었는데 그 꿈에서조차도 엄마는 이 세상에 없음을 알았고 현실에서 전달하지 못했던 말을 쏟아내었다. 미안하다고. 너무 고생했다고.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 하고 싶다고.


 참 우스운 이야기다. 시간 정류장이라는 건 후회로 점철된 장소라는 걸 이렇게 글을 써 내려가며 알았다. 나의 타임머신의 동력은 죄책감과 후회일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더욱 간절히 타임머신을 기다린다. 


 당신은 어떤 시간 정류장으로 돌아가고 싶은가? 

작가의 이전글 먼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