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DA Jan 17. 2024

이미지 메이킹의 여왕

; Madame de Pompadour



대부분의 초상화가 그렇듯, 퐁파두르 부인의 초상화 또한 고도로 계산된 이미지였다. 궁정 생활의 정점에 그려진 이 초상화를 통해, 부인은 측근들과 적들에게 ‘왕의 오른팔이자 가장 영향력 있는 조언자’로서의 자신의 확고한 위치를 인지시켜 주는 메시지를 던졌다.



그림 1. Madame de Pompadour, François Boucher, Alte Pinakothek München, 1756

          

그녀는 루이 15세의 유명한 정부로, 프랑스 궁정의 실세이자 로코코 문화의 아이콘이지만, 동시에 프랑스 왕가의 몰락을 이끌었다는 평을 듣는 ‘퐁파두르 부인: Madame de Pompadour’이다.






이미지 메이킹의 여왕



그녀에게서는 장미향이 난다.



화가의 표현처럼 그림에서도 장미향이 날 것만 같은 이 초상화는, 로코코 시대의 천재적인 화가 '프랑수아 부셰: François Boucher'가 그린 퐁파두르 부인의 초상화이다. 수많은 장미 모티브와 리본이 과도하게 장식된 로코코의 전형적인 드레스를 입고, 우아한 자태로 소파에 기대어 앉은 그녀의 모습에선 성적인 매력을 과시하는 정부가 아닌, 고상하고 자신감 넘치는 여인의 여유로움이 물씬 풍긴다. 화가 부셰가 그린 단 몇 점의 퐁파두르 부인의 초상화는 로코코의 전설이 되어 시대를 대표하는 그림이 되었다.



거울에 비친 책장 & 책, 서랍장, 깃펜


일반적인 정부의 이미지와 자신을 떨어트려 놓고 싶었던 퐁파두르 부인은 책과 악기, 악보, 화판 등을 초상화의 배경으로 선택하고, 손에는 여러 번 본 듯 해져 있는 책을 들어 지적인 면모와 독서에 대한 열정을 넌지시 드러냈다. 의뢰인의 의도를 매우 잘 파악한 화가는, 배경에 큰 거울을 배치해 반대편에 위치한 -책으로 가득한- 책장이 비치게 했다.

그녀의 모습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꾸며진 것과는 반대로, 배경이 되는 방은 정리되지 않은 어수선함이 물씬 풍긴다. 흐트러져 있는 종이들, 열려 있는 편지봉투가 놓인 탁자와 정리되지 않은 책들이 쌓여 있는 모습은, 마치 그녀가 일에 몰두하고 있던 중 방해를 받은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열려 있는 서랍에는 디드로, 볼테르와 같은 프랑스 계몽주의 철학자들의 상징이었던 깃펜이 자리하고 있다. 퐁파두르 부인은 계몽주의 철학가들과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지식인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고, 지적 엘리트들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초상화 속 이러한 장치들은 왕의 정부인 그녀를 교양 있고 지적인 여성으로 인식하게 만들어주었다. 성적 매력을 어필하는 ‘팜므 파탈’이어야 할 왕의 정부가, 지적이고 학식 있는 여인‘팜므 사반트: Femme Savante’의 모습으로 묘사되는 흥미로운 현상이 연출된 것이다.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여인상

18세기의 프랑스는 로코코의 시대였다. 사람들은 새롭게 부흥한 자유주의 사상에 입각하여 감각적인 쾌락을 추구했다. ‘방탕 문학’이라 불리는 연애소설이 성행하였고, 자유주의는 쾌락을 즐기고자 하는 상류층들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사랑이 넘치는 프랑스였다. 이전 시대의 장엄하고 무거운 바로크 양식과 매우 엄격하고 형식적이었던 루이 14세의 스타일에 대한 반발로 1730년경 프랑스에서 탄생한 로코코는, 과장되고 화려하지만 밝고 따뜻한 파스텔 톤의 가벼운 우아함이 특징으로, 바로크의 웅장했던 모티브들은 매우 장식적이고 극단적인 정교함으로 진화했다.



로코코를 가장 잘 표현한 그림으로 꼽히는 프라고나르의 '그네' , 1767



나는 당신을 매우 사랑하지만,
당신보다 내 자유를 더 사랑합니다.


프랑스 궁정의 한 아름다운 부인은, 부인의 또 다른 애인의 존재를 알고 자신을 질책하는 애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것이 로코코의 정신이었다. 여인들이 남성들에게 무조건적으로 복종하고, 행복한 가정에서 충실한 부인의 역할로 자부심을 가지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었다. 사회적 분위기는 개방적이고 자유로웠으며, 여성의 의식이나 지위는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여인들은 지식을 쌓고 자신만의 매력을 개발하는데 시간을 할애했다. 살롱의 문화 활동에 참여해 지식인들과의 교류와 토론을 통해 사회를 보는 시각을 키웠고,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여성상의 등장이었다.


퐁파두르 부인은 이러한 시대를 대표하는 여성 중 한 명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구축한 진취적인 여성이었다. 사실 그녀가 왕의 정부로 지낸 세월은 고작 5년 남짓이었다. 모두들 왕의 여인으로서 역할을 다한 퐁파두르가 비참하게 궁을 나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과는 그 반대였다. 그녀는 왕의 곁에 남을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냈다.

루이 15세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국정을 논의했는데, 그 중심에 그녀가 있었다. ‘왕의 여인’에서 ‘왕에게 필요한 여인’으로 탈바꿈한 퐁파두르 부인은 승승장구하며 1752년 공작부인으로 승격되었고, 그로부터 4년 뒤에는 궁정 여인 중 가장 권위 있는 지위인 여왕의 시녀 -13번째- 가 되어 자신의 영향력을 키워 나갔다. 바로 이 시녀가 된 기념으로 화가 부셰에게 의뢰해 그린 그림(그림 1)은 로코코의 표본이 되었다.




로코코의 드레스: Robe à la française

로코코 시대의 남녀들은 화려하고 아름답게 차려입고 나무의 풍성한 푸른 잎사귀와 파스텔 톤 꽃들이 펼쳐진 평화로운 자연환경 속에서, 복잡한 세상일에는 관심 없다는 듯 낭만을 즐기거나 사랑을 속삭였고, 예술가들은 그런 사랑의 즐거움을 표현했다.



꼬르 아 발렌 & 파니에, 파리, 18세기


모든 것이 아름답게 꾸며졌다. 드레스는 달콤한 파스텔 톤이 주를 이루었고, 레이스와 리본, 꽃들로 장식되었다. 허리를 조이고 치마를 부풀리는 패션이 유행하면서 의도적으로 과장된 몸의 라인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코르셋의 전신인 ‘꼬르 아 발렌: Corps à baleines’과 새로운 유형의 치마 지지대가 등장했다.

몸을 압박하여 인체의 자연스러운 굴곡을 없애기 위해 코르셋을 착용했던 이전 시대와는 달리, 18세기에는 여성의 풍만한 가슴과 작은 허리, 큰 엉덩이가 이상적인 여인의 아름다움이 되어 인위적인 라인을 만들기 위해 코르셋을 착용했다. 꼬르 아 발렌으로 최대한 높게 밀어 올려 풍만해진 가슴은, 넓고 낮아진 네크라인으로 더욱 강조되었으며, 여성의 허리는 남자의 한 손에 쥘 수 있을 정도로 작아야 했다. 가느다란 허리 아래로는 크게 부풀린 치마가 펼쳐졌는데, 치마를 부풀리기 위한 보조 도구로 새로운 형태인 ‘파니에: Panier’가 등장했다. 그 모양이 거꾸로 된 빵 바구니 -짐을 싣는 동물의 양옆으로 달아 놓았던 바구니- 같다 하여 고대 프랑스어로 ‘고리버들로 만든 바구니’를 뜻하는 ‘파니에: Panier’라 이름 붙여졌다.



가장 위에 걸치는 가운 형식의 망토는 앞이 벌어져 있어 그 사이로 한 뼘 정도 상체 부분의 꼬르 아 발렌이 보였는데, 역삼각형 모양의 앞가슴 덮개인 ‘피에스 데스토막: Pièce d'estomac’ -영어로는 스토마커: Stomacher- 을 덧대어 가렸다. 보통 드레스와 같은 직물 위에 화려한 자수를 놓아 제작했지만, 퐁파두르 부인은 리본이 층층이 배열된 ‘에셸: échelles’ 스타일을 선호했다. 취향이 확고했던 퐁파두르는 특히 리본장식을 매우 사랑해 드레스에 수많은 리본과 러플을 달아 유행시켰다.

로브 아 라 프랑세즈의 아름다운 특징으로 꼽히는 '아가장트: Engageantes'는 정교한 레이스의 발달로 팔꿈치부터 화려하게 장식해 주었다. 물고기를 잡기 위해 그물을 만들었던 원시시대부터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는 레이스는 르네상스 시절 이탈리아와 프랑스, 그리고 플랑드르에서 최고 수준의 레이스가 생산되면서 크게 발전했다. 레이스를 뜨거나 자수를 놓는 행위는 상류층 여성들의 전통적인 취미였기 때문에 생산적이거나 경제적인 의미가 없는 활동으로 여겨졌으나, 점차 고부가 가치 산업으로 발전했다. 레이스는 대물림되는 매우 비싼 사치품이었다.



아가장트


소매 끝 팔꿈치에서 마치 여러 겹의 레이스가 쏟아져 나오는 듯한 아름다운 형태의 아가장트는 바로크 시대에 생긴 소매 장식이었지만, 로코코 시대의 드레스에서 꽃을 피웠다. ‘부착하다’라는 프랑스어 ‘Enganeant’에서 파생된 용어인 아가장트는, 교체가 가능한 분리형 소매 장식으로, 핀이나 단추로 소매에 고정했다.

탈부착식 칼라나 소매는 그 화려한 모양새에 장식적인 요소로 보이지만, 사실 첫 번째 목적은 실생활의 편의를 위함이었다. 당시 빨래는 며칠 동안 행해지는 길고 고된 과정의 연속이었다. 겉에 입는 드레스는 거의 빨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 몸에서 나오는 기름이나 땀은 드레스 속에 입은 셔츠나 슈미즈가 담당했다. 특히 때가 잘 타는 목이나 팔 부위는 빨래가 용이한 탈부착식 칼라와 소매로 해결했다. 목과 팔에서 보이는 흰색의 깨끗한 리넨은 ‘위생적이고 단정하며 부유하다’는 표식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귀족들이 집착하는 포인트가 되어 사랑받았다.



18세기 프랑스 귀족사회를 배경으로 한 영화 '위험한 관계' 오프닝, 1988


피에스 데스토막을 꼬르 아 발렌에 핀으로 고정하고 나서, 마지막으로 망토를 걸치면 하녀들은 준비된 실과 바늘을 들고 망토의 가장자리를 피에스 데스토막의 양쪽 끝에 고정해 함께 꿰맸다. 상황에 따라 하루에도 몇 번씩 갈아입는 궁정여인들의 드레스는 매번 ‘고정하고-꿰매고-풀고’를 반복했다. 이렇게 완성된 드레스는 ‘로브 아 라 프랑세즈: Robe à la française‘ 즉, ‘프랑스(풍) 드레스’가 되었다. 18세기 유럽의 미적 기준은 특히 프랑스 궁정에 의해 결정되었는데, 퐁파두르는 이러한 로코코의 패션 스타일을 만들어낸 장본인이었다. 그녀는 무엇보다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매일, 나는 내가 찾은 것보다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들고 싶습니다.



그녀의 삶은 아름다운 것에 대한 탐구로 채워졌다. 궁정에서 굳이 그녀에게 어울리는 공식적인 직함을 찾는다면 그것은 ‘문화부 장관’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프랑스 문화를 발전시켜 준 공신으로, 문화 예술의 후원가이자 자신 또한 감각이 뛰어난 예술인이었다. 그녀의 지휘 아래 베르사유 궁은 로코코 스타일로 장식되었고, 로코코 예술은 번성했다. 그녀의 스타일이 곧 로코코였으며 그녀와 함께 사라졌다.

왕의 조언자뿐만이 아닌, 그녀는 예술문화 분야에서 권위 있는 위치에 올라 자신의 취향을 형성하고, 그것을 프랑스만의 스타일로 만들어 유럽 문화의 트렌드를 이끌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왕녀의 드레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