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지점프

정말 뛰어내려야 해요?

by 모다

청평 리버랜드에서 번지점프를 한 적이 있다.

부모님은 일이 바쁘고

동생은 기숙사에

집에 돌아온 이는 중국 입시를 하느라 타지에서 1년간 묵혀진 채로 귀국한 나밖에 없었다.

보상심리가 작동한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는데, 대학에 붙었는데,

집에 돌아오니 사람이 없다.

들리는 건 돌아가는 냉장고 소리.

눅눅한 바닥에 불 끄고 엎드려

현관문을 바라본다.

현관문의 유리창으로 옅은 빛이 들어왔다.

그것도 테이프를 잔뜩 붙여놔서 드문드문 들어오는 빛이었다.

여기는 집이 아니다. 건물이다.

이제는 집이 없다. 우리는 다 뿔뿔이 흩어졌다.

한국엔 왜 온 걸까.

괴롭다.

생각을 하다

이렇게 나락으로 빠지진 말자

보상받고 싶으면 내가 나에게 주면 된다 생각하며

종이를 한 장 꺼내서 숫자를 썼다.

맨 위에는 ‘버킷리스트’를 쓰고

숫자 뒤로는 하고 싶었던 일들을 적어보았다.


그중에서 상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은 모두 빼고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골랐다.

1. 번지점프

2. 마라톤

3. 일주일 동안 한국 여행

4. …

일곱 종류였던 것 같다.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이라곤 번지점프와 마라톤 달리기였다.

마라톤은 단거리로 참가해 뛰었다. 단거리인데도 죽는 줄 알았다. 번지점프는 돈이 좀 든다던데…

집 어딘가에 사둔 금반지를 찾아 종로로 갔다. 오래전 금을 사두면 돈이 오른다기에 사둔 내 금반지...

26만 원 주고 사서 18만 원에 되팔았다. 아... 내 돈...


“자. 사인하세요.”

아저씨가 거친 목소리로 종이를 내민다.

“네… 네… 네?”

신체포기? 사망 가능?

스카이 다이빙은 사망해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종이에 서명을 한다던데… 그런 건가?

“위에 가서 저희 말 안 듣고 일어난 사고를 저희는 책임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아저씨가 새파랗게 질린 내 얼굴을 보고 설명했다.

“아.”


노란 철 감옥 문이 열린다.

바닥과 천장, 벽이 죄다 뚫려있다.

덜컹 덜컹 덜컹

나는 아주 당당한 얼굴을 하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속으로 '제길'을 천 번 정도 되뇌니 어느새 50m 고층 꼭대기가 코앞이다.

커다란 덜컹 소리가 나고

꼭대기에 도착하자

아저씨는 내 키로수를 묻고

선을 연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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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란 사망대 같은 절벽 위로

바람이 나를 친다.

“저 앞에 서세요.”

나는 개미 걸음으로 한걸음 나아간다.

아저씨가 설렁설렁 말한다.

“괜찮아요. 저기 서세요.”

끝으로 가 난간을 잡았다.

‘와.’라는 나직한 소리를 내며.


절경이다.

푸른 하늘이 넓게 펼쳐지고,

얇게 자란 산이 넓게 뒤덮였다.

바로 앞 강가에는

하늘과 산이 비추어져 모든 풍경이 뒤엉켜 가슴에 쏟아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저씨는 안전사항을 설명한다.

가슴이 벅차오르며 곧바로 주저앉는다.

“못하겠어요.”

내가 다리를 덜덜 떨며 얼굴을 감싼다. 물을 안 마셨다 뿐이지 오줌마저 지릴 요량이다.

대체 여기서 어떻게 뛰어내린단 말인가.

그때 아저씨가 해줬던 말이 아직도 가슴에 비석처럼 남아있다.

“괜찮아요. 원래 무서운 거예요. 자 따라 하세요. 무섭다. 무섭다. 무섭다.”

“응?”

“따라 하세요. 무섭다. 무섭다. 무섭다.”

머리가 이미 백지상태라 아저씨가 하는 말을 무아지경으로 따라 했다.

"무섭다. 무섭다. 무섭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무섭다. 무섭다. 무섭다.”

"무섭다. 무섭다. 무섭다."


“뛴다. 뛴다. 뛴다. 뛴다.”

“뛴다. 뛴다. 뛴다. 뛴다.”


“뛸 수 있다는 말을 무섭다는 말보다 한 번만 더 해도 할 수 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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뛸 수 있다는 말을 무섭다는 말보다 한 번만 더 해도 뛸 수 있어요.


그 높은 위치에서

그 말이

뛰는 내 심장을

진정시켜주진 못했지만

나는 아저씨가 말한 대로 했다.

그리고 한 순간,

소리도 지르지 않고

아래로,

아래로,

공중에 뜬 채로


1초

2초

3초


놀이기구라면 보통 3초면 끝나는데…

나는 계속해서 아래로 떨어졌다.


4초

5초

6초


아. 이제 난 죽는구나.


7초

그리고

8초

하는 찰나 ‘텅’하며 뒤에 달린 끈이 느껴졌다.

아. 맞다. 선이 달렸지.

아. 나... 나 살았구나.

떨어지는 순간 끈이 달렸다는 걸 잊어버렸었다. 머리가 새하얗게 비고 아름다운 풍경도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죽는구나 했다. 온몸을 감싼 안전기구가 느껴지는 순간 하늘에 감사했다. 나를 감싼 안전기구가 온전히 느껴졌다.


‘텅’하고 튕기고 나서야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마음이 놓여 즐길 수 있었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크게 소리쳤다.


“나 뛰었다!”



"내가 해냈어!"


날 잡아준 그 끈이 어찌나 고맙던지.

그 때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나는 두려울 때면 생각한다.

무섭다 무섭다 무섭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마음이 울적할 때면 행복한 일이 다섯 개 있어도 불행한 일 그 두 개 때문에 비위가 상했었는데 순수한 날, 떨어지는 낙엽에도 웃었던 마음은 어쩌면 날 지탱하던 그 한가닥의 끈처럼

따듯하게 먹을 수 있고

포근하게 잘 수 있고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작지만 소중한 행복이 아니었을까.

돌아와 누운 눅눅한 바닥에서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내 마음의 공간은 결국 나 자신이 만드는 것이었다.



내 마음의 공간은 결국 나 자신이 만드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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