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

내가 사랑하는 나의 구두

by 모다

나에게는 목 높은 검정 인조가죽으로 덮인 통굽힐이 하나 있다. 이 신발은 장화 느낌의 신발로 신었을 때 편하고 빗속에서 안전하게 나를 지켜줬으며, 내 스타일과도 맞아 아주 애용하는 신발이었다.

그러나 일을 하며 정장을 입어야 할 땐 어울리지 않아 밀어 놨다가, 비 오는 날에만 꺼내 신었다. 얼마나 신었는지 가죽이 벗겨져서 조금씩 볼품을 잃어가는 신발을 보며, 더는 신을 수 없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도 어김없이 비가 왔고, 신을 신발이 마땅치 않았다. 신발장에서 목 높은 구두가 휑하게 벗겨진 얼굴로 내게 웃어 보였다. 별생각 없이 버스에서 내렸는데, ‘쩍’ 하고 통굽의 반이나 되는 면적이 멋쩍게 벌어졌다.


오 마이 갓.


나는 덜렁거리는 신발을 끌고 사무실로 향했다.

그냥 오늘만 신고 버릴 생각이었는데, 내 신발을 본 선배는 구두 고치러 빨리 가보라며 구두 고치는 아저씨의 존재를 상기시켰다. 매번 회사 빌딩 앞에서 사람들의 구두를 고치는 아저씨의 작은 가게를 나는 그제야 기억해냈다.

애써 내려가 봤는데 가게는 닫혀 있고, 구두 고치는 사람은 없고, 적힌 번호도 없길래 머리를 저으며 사무실에 돌아왔다. ‘그냥 순간접착제면 되겠지’ 하고 붙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점심이 되자 또다시 ‘쩍’하고 떨어졌다.


어휴 지겨워.


점심시간에 밥을 먹으려고 내려갔는데, 가게만 열려 있고 아저씨는 없었다.

‘이 아저씨는 대체 가게를 열어놓고 어딜 가신 거야?’

다행히 밥을 먹고 돌아오는데 아저씨가 있길래 재빨리 “임시방편으로 이것 좀 붙여주세요. 시간은 얼마나 걸려요?” 하니까 “3분”이란다.

아저씨는 떨어진 부위에 노오란 풀을 서걱서걱 바르고 사이에 플라스틱을 끼워 넣어 창밖에 말렸다.


아저씨가 내게 손짓했다.

“응?”

“거 반대쪽 신발도 줘봐요.”

“반대편은 괜찮은데..”

“거 어서요.”

나는 남은 신발을 건네고 아저씨가 던져 주신 슬리퍼를 신었다.

“어휴. 뭐가 이렇게 더러워? 사고 나서 한 번도 안 닦았죠?”

나는 짐짓 고개를 끄덕이고 멋쩍게 웃었다.

아저씨는 검은 왁스 뚜껑을 열었다. 아버지가 구두에 바를 때 봐왔던 거다. 이름이 뭐더라.

“근데 이거 인조가죽인데.. 발라도 되나요..”

이미 바르기 시작하셔서 기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저씨는 구두를 닦으며 말했다.

“그럼 인조가죽은 세수 안 해요?”


아저씨 말이 너무 맞아서 가만히 있었다.

아저씨는 솔로 쓸고, 천으로 쓸고, 가스레인지 불로 겉면을 지졌다가 손에 검은 약을 묻히고 닦았다. 벗겨진 겉면 위에 번떡 번떡 광이 났다. 말리시던 반대편도 금방 붙이시더니 아까 했던 대로 신발을 쓸고 닦았다.

“어때요. 말끔허니, 기분 좋죠? 이거 내가 서비스해준 거예요. 원래 이런 신발 보면 못 참아. 닦아줘야 돼.”

“네. 세수하러 종종 올게요”

대답하니 아저씨가 허허 웃으신다. 신발에 광이 나니 의외로 기분이 굉장히 좋았다. 떨어진 왼쪽 신발도 단단히 붙었다. 순간접착제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이거 한참 더 신어도 돼겠는데?'


어쩌면 나는 내가 가진 것들을 너무 얕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은 이 신발도 나는 좋아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까 봐 걱정이 되어서 덜 신었던 신발이었는데, 아저씨 손을 한번 거치고 나니 알게 되었다. 소중하게 대하는 일이 이토록 중요하다는 걸.


자신이 가진 장점을 발견하고 소중하게 대하는 일. 남들이 형편없다고 생각하는 부분까지 사랑해주는 일. 시간이 오래 지나 익숙해진 장점이 빛을 잃었다고 착각하지 않게 그 장점에 쌓인 먼지를 털어 나의 멋진 구석구석을 곱게 닦고 사랑해주어야겠다.


내가 사랑하는 나의 구석구석을 곱게 닦고 사랑해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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