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의 그림동화 4편

제2막 - 언제든 돌아오고 싶으면 내가 여기 있을게

by 모다



나는 나무속을 돌아다니며 힘들어하는 나무들에게 꽃을 피워주었다. 편안한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 내 왼쪽 팔이 아파왔다.


"이게 뭐지?"


왼쪽 팔에서 작은 뾰루지가 자랐다. 자세히 보니 끝이 뾰족한 뿔 같았다. 뾰루지는 멈추지 않고 계속 자랐다. 나무 벽 사이로 얼굴이 나타났다. 내 중얼거림을 들은 나무는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얼굴을 들이밀어 자라나는 뾰루지를 살폈다. 나무가 소리쳤다.




순식간에 얼굴이 나무 벽 사이로 사라졌다.


"어?"


나무속이 빠르게 줄어들었다. 나는 재빨리 나무를 빠져나왔다. 놀라서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뿌리로 내려 달리자 늘 열려 있었던 나무 구멍들이 내가 지나가는 족족 닫혔다. 내 팔에서 가시가 자랐다는 소리를 들은 걸까? 나는 정처 없이 뿌리를 달리다 유일하게 닫히지 않는 통로를 발견해 올라갔다. 그 나무는 처음 이 숲에 왔을 때 만났던 호두나무였다.


“호… 호두나무야…"


나는 손이 덜덜 떨렸다.

"내 팔에서… 가시가 자랐어…"


심장이 고장 나 버려서 정상적으로 작동하질 않았다.

호두나무는 가시를 살펴보며 말했다.





"정말?"

나는 두려웠다. 영영 가시 때문에 고통받게 될까 봐 가슴이 떨렸다.

"정말 쉬고 나면 괜찮아질까? 쉬고 나도 사라지지 않으면 어떻게 해? 영영 이 가시 때문에 고통받게 되면 어떻게 해?"


호두나무는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가 자는 동안에도 그 가시는 여러 번 나고 자랐어. 그 가시는 네가 편안해지고서야 하나씩 사라졌어. 그러니 걱정할 것 없어. 마음 놓고 쉬도록 해. 쉬고 나면 다 괜찮아질 테니까."


"정말? 정말이야?"

나무는 끄덕였다.


나는 나무에게 물었다.

"설마 이게 그 가시인 거야? 사랑과 생명을 빨아먹다는 그 가시 말이야. 그래서 나무들이 나를 피한 거지? 내가 자신을 아프게 할까 봐?"


"나무들은 자신이 들은 말을 믿는 거야. 너의 영혼을 이해하지 못하고 들여다보지 않으려는 이들의 말에 흔들리지 마. 나무에게 가시가 자라는 이유도 너 때문이 아니야. 넌 아무도 해지지 않았어. 오히려 꽃을 피워주다 왔잖아.

누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보다 네가 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더 중요해. 누가 널 미워하고 오해할지라도 너만은 스스로를 믿어줘야 해. 너에게 그 누가 뭐라 하던 너 자신만은 스스로를 믿어줘야 해."






"호두나무야... 난 두려워.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존재이면 어쩌지? 기억을 되찾았는데 내가 나조차 싫어지면 어쩌지? 내가 사랑받지 못할 존재일까 봐. 사랑받지 못하는 운명일까 봐. 난 너무 두려워. 넌 혹시 아니? 내가 누군지?"

"그 질문의 답은 오직 너만이 할 수 있어. 걱정하거나 조급해하지 않아도 괜찮아. 앞으로 너는 여러 경험을 통해 자신 대해 알아가게 될 거야.

네가 누군지 알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몰라. 그 일은 보석을 캐는 일만큼이나 힘들지도 몰라. 하지만 매 순간 네가 너 자신에게 진심이길 택한다면 너는 언젠가 너의 아름다운 모습을 마주하게 될 거야. 매 순간 네가 상대에게 진심이길 택한다면 너는 언젠가 너와 닮은 영혼을 지닌 이들과 서로를 알아보게 될 거야. 그러니 너의 시간을 가져.

삶이 어떤 선물을 줄지 우린 알 수 없지만, 노력 끝에는 언제나 빛나는 시간이 되돌아오게 되어 있어."


나는 호두나무의 말에 안심했다.









마음이 편해지자 왼쪽 팔의 가시도 조금씩 작아졌다. 한참을 마음 놓고 편히 쉬자 정말 가시가 언제 자랐냐는 듯 사라져 버렸다. 나는 호두나무에게 부탁했다.


“내 몸에 가시가 자라는 걸 비밀로 해주면 안 될까?”

호두나무는 가지를 흔들었다.


나는 오해를 풀고자 아까 내 가시를 보았던 나무를 찾아갔다. 나는 벽을 두드려보았다.

“난 너희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

나에게 조금만 기회를 주면 안 될까?”


벽을 두드렸지만 끝끝내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몇몇 나무들은 나의 말에 다시 대답을 해주었지만 가시를 본 나무는 다신 나와 말도 섞지 않았다. 나는 매일 그 나무를 찾아갔다. 오해를 풀고 싶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가시를 직접 본 그 나무는 대답이 없었다.


나는 큰 상처를 받았다.





내가 또 그 숲에 가려는데 호두나무가 나를 붙잡았다.

“네가 건넨 건 너의 소중한 마음이야. 너를 알아가는 데 시간이 걸리듯이 상대를 알아가기까지도 시간이 걸리지만, 그 시간 끝에서도 결국 그들이 너를 외면한다면 그들은 자신의 몫을 선택한 거야. 네 소중한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그러니 너의 소중한 마음은 스스로 지켜줬으면 좋겠어. 너에게 상처를 주는 그 숲에서 거리를 두었으면 좋겠어."


“하지만 내가 꽃을 더 피워주면 나무는 결국 오해를 풀어줄 거야."


“넌 이미 그대로도 충분해.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돼. 너 스스로에게 상처 주지 마. 그대로만 있어도 괜찮아. 꽃을 피워주지 않아도, 숲에 가지 않아도 괜찮아."


그 말을 듣고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아무도 내게 충분하다고 말해준 적이 없었다는 걸.

"고마워 호두나무야. ”


호두나무는 말했다.











호두나무의 말대로 나는 그 숲에 더는 발을 들이지 않았다. 그 숲에 가지 않고, 오해를 풀려고 애쓰지 않으니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그동안 나무들의 반응에 내가 얼마나 괴로웠는지 나는 쉬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다.


하지만 쉬면서도 나는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자꾸만 무언가를 해야 할 것만 같은 조급함에 빠져들었다. 나는 호두나무에게 물었다.


"혹시 내가 너에게 꽃을 좀 피워주면 어떨까?”


고마운 마음을 보답하고 싶은 동시에 초조했다. 혹시 호두나무의 마음이 변할까 두려웠다.


호두나무는 거절했다.

"그냥 편하게 쉬어도 돼. 엘림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 나는 너에게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 그저 함께 시간을 보내서 기쁠 뿐이야."


"너는 왜 다른 나무들처럼 내게 꽃을 피워 달라고 하지 않아?"

“때가 되면 나에게도 꽃이 필 거야. 그저 그때가 조금씩 다를 뿐이야."


"정말? 다른 나무들도 그럴까? 때가 되면 꽃을 피게 될까?”

그럼. 모두가 자신의 때를 맞으면 아름다운 꽃이 활짝 피게 되지."


“하지만 숲에는 아픈 나무들이 많아. 그 나무들은 스스로 꽃을 피우긴 힘들어 보여.”

“꽃을 피우는 일을 네가 잠시 도울 수 있어도. 그 꽃은 사실은 나무 자신이 피우는 거야. 의지가 없다면 꽃은 피지 않아. 의지를 다지는 일도 성장하는 일도 결국 자신이 해내는 일이기에 더 의미가 있는 거지. 그러니 네가 냐무들에게 꽃을 피우는 일이 좋다면 상관없지만 꽃을 피우고 싶지 않다면 피우지 않아도 괜찮아. 그 몫을 너의 책임으로 떠안지 않아도 괜찮아.”


그제야 알았다. 지금까지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 꽃을 피워주고 있었던 거다. 꽃을 피우면 나무들이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니까 나무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나를 위해서 꽃을 피워주었던 거였다. 행복해지고 싶어서 나무들에게 꽃을 피워주었다는 사실을 나는 그제야 알게 되었다.




호두나무는 나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를 않았다. 나무속에서는 그저 편안히 있는 그대로 존재해도 되었다. 나는 호두나무 속에서 쉬면서 생각해보았다.


'이제까지 이렇게 마음이 편안했던 적이 있었던가?'

'아니. 없었다. 단 한 번도.'


처음 느껴보는 편안함이었다. 여태껏 이토록 편안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걸 몰랐다. 언제나 무언갈 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 잡혔다. 나는 호두나무가 부러웠다. 호두나무처럼 편안하고 지혜로운 마음을 가지고 싶었다.


그즈음 나는 내 몸에 가시가 자랐는지 모르는 나무들에게 꽃을 피워주며 지냈다. 나는 나무들에게 꽃을 피워주며 생각했다.


'나는 나무가 되고 싶어. 다른 나무들과도 뿌리로 얽히고 싶어. 그러면 나무들도 나를 소중히 대해주겠지. 그렇게 이 숲의 일부가 되는 거야.'



나는 어느 날, 호두나무에게 말했다.

“나도 너처럼 나무가 될 거야. 나무가 된다면 온 몸으로 바람을 느낄 수도 있고, 따스한 태양을 쬘 수도 있어. 너와 뿌리로 단단히 서로를 지탱하고 사랑과 삶을 나눌 수 있어. 나무가 되면 내 속의 알 수 없는 슬픔과 외로움도 잠잠해지겠지. 그렇게 이 숲의 일원이 되는 거야.”


“어쩌면 네가 바라는 건 나무가 되는 게 아닌지도 몰라. 실제로 나무가 되면 불편하게 느껴질지도 몰라. 밖으로 나가보는 건 어때? 좀 더 밖을 경험해보는 거야. 나무속을 돌아다닐 수 있다면 밖으로도 나갈 수 있을 거야. 경험해 보는 거야. 밖에는 더 많은 가능성이 있어. 네가 좋아하는 일들을 더 많이 찾게 될지도 모르지. 바람을 느끼고 싶다면 밖으로 나가서 맞을 수 있어. 숲을 걷거나 햇빛을 쬐는 거야.”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무 밖으로는 나갈 수 없어."


사실은 나무 밖에서 살아나갈 자신이 없었다. 여기가 어딘지도 몰랐고, 떠돌아다니는 고통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난 여기가 좋아. 남들과 다르고 싶지 않아. 상처 받고 싶지 않아. 받아들여지고 싶어. 넌 내가 나무가 되길 바라지 않는 거야?”


난 그저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그저 네가 있는 그대로의 너를 지지해주고 사랑해줬으면 좋겠어. 모습을 바꾸어도 네가 너 자신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중요한 건 있는 그대로의 너 자신을 지지해줄지 아닐지의 문제이지 않을까? 바깥으로 나가 세상을 경험하면 네가 원하는 걸 생각보다 간단히 얻을지도 몰라. 나무가 되지 않고도 말이야.”


나는 대답했다.

아니. 나의 답은 나무가 되는 거야. 나는 나무가 되야지만 행복해질 수 있어. 나무가 되면 비로소 온 마음 가득 채워진 사랑과 편안함을 느낄 거야. 그러니 날 말리지 마. 난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알아."







언젠가 저는

무언가가 되고 싶을 때,

무언가를 하고 싶을 때,

그 무언가를 통해 내가 궁극적으로 얻고 싶은 게 무엇인가 생각해보니.

결국은 사랑이었고, 마음이었음을 먼 훗날 알게 되었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무언가가 되고 싶을 때,

무언가를 하고 싶을 때,

궁극적으로 어떤 걸 얻고 싶으신가요?



어른이의 그림동화

<사랑하는 그대에게>


제2막 - 언제든 돌아오고 싶다면 내가 여기에 있을게.

- 끝 -


다음 시간에 다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