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함의 끝판왕이 겪어내고 있는 고통 총량의 법칙
두 달 전 집안 경제에 비상이 걸렸다.
올 한해가 두달 남았는데 비상이 되어버린 시국이다.
가족들이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데
결론은 아직 미지수이다.
그래서였을까?
원래 잘 아프지 않고
아프더라도 티를 내지 않는 사람인 내가
이주전부터 등 뒤쪽이 욱신욱신 거리고, 재채기가 나더니
이틀전부터는 인후염 증상이 있어서 병원에 갔더니 코.로.나. 확진이었다.
그 동안 코로나 잘 이겨냈었는데....ㅜㅠ
설상가상으로 아이의 시험 기간 시작.
시험 기간 동안
아이와 나는 한 집에 있으면서도
이산 가족처럼 만나지 않았는데
그렇게 지냈는데
이틀도 되지 않아 아이도 역시 확진....ㅜㅠ
아이의 시험은 이틀이 남은 상태.
학교 담임선생님에게 연락을 하고 상황을 알려드린 후
아이는 임시교실에서 무사히 시험을 치를 수 있게 되었다.
코로나 영토에서
음성을 굳건히 지킨 남편이 있었기에 이번 사태가 잘 지나갔다.
비록 4일이지만 회사일과 집안일, 아이까지 챙기느라 남편이 수고를 해주어 고마웠다.
그런데 문제는 내면에 생겼다.
문제가 생기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태도 때문에 나는 남몰래 힘들어 하고 있었다.
4일의 시험 중 2일 시험을 치고 난 후 증상이 생긴 아이가 병원에 가게 되었다.
내가 확진자라 아이 아빠가 병원에 동행한다.
아이가 아프면 걱정이 되는 나는 계속 질문을 하면서 내가 도울것들을 찾는다.
심지어 아이가 먼저 요청하기 전에 말이다.
그러면 아픈 아이는 말한다.
" 내가 괜찮다고 하면 괜찮은 건데 왜 2~3번 계속 말하게 해? "
" 내가 얘기했는데 왜 또 물어 ? "
" 괜히 아빠한테 물어서 아빠까지 나한테 짜증내게 하지마 "
아이의 상태가 걱정되어 불안함을 느끼면 나는 남편에게 상황을 묻는다.
" 시험마치고 가면 점심시간인데 정신이 없어서 체크를 못했네. 시간 괜찮아? "
" 안 되지 "
" 오후에 조금 바쁘더라도 2시에 검사하고 진료도 보고, 내일 학교 가야하니 진료확인서나 코로나 확진서
챙겨서 가져다 주면 좋겠어 "
" 내가 알아서 할께 "
.....
그렇게 아이는 확진이 되었고,
나는 집에서 코로나에 제일 먼저 걸린데다, 격리를 잘못한 사람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사실은 나도 아픈데
아플 수가 없었다.
하소연을 하기 위해 친정 엄마에게 전화를 한다.
" 그냥 상대방이 하자면 네 알겠습니다 하고, 나중에 다른 상황이 생기면 상대가 스스로 처리하도록 하고,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잘잘못을 따지지 말고,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현재와 관련시켜 일을 크게 만들지 말고 "
라고 얘기해주신다.
댕댕댕~~~
엄마 보살의 종소리가 들린다.
뭔가 물길이 살길이 보인다.
내 스스로 격리를 잘 했어야 했고,
가정 경제에 비상이 안 걸리게 했었야 했다
라는 죄책감과 불안이
나의 예민함을 자극하여,
고통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미 일어난 일을 어찌하냐 싶어
그저 숨 한번 크게 쉬며 자판을 두드린다.
이럴 때 글쓰기지.
자판이 최고의 친구가 되지.
나만의 친구.
이렇게 코로나와 함께 예민함의 불꽃이 꺼져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