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묘한 Jul 02. 2022

이혼=수능?

잘 볼 수도, 잘 살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회사 후배들과의 점심 식사자리였다. 

그렇게 친하지도 않고, 내가 돌싱이라는 사실도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식사자리였다.

아이스 브레이킹을 위해 이것저것 소일거리를 이야기하였고, 그러다 돌싱글즈2를 시청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그 프로를 보지는 않았으나, 거기 나오는 윤남기씨 이야기는 이미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적이 있어서 대충이나마 그 분이 얼마나 스윗한지 정도는 알고 있었고, 아니나 다를까 여자 후배 한 분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너무 스윗하다고 칭찬을 하고 있었다.


그 순간 옆에 있던 다른 남자 후배가 대뜸, 

"그렇게 스윗한 사람이 왜 이혼을 하냐?"


예전에도 비슷한 포스팅을 한 적이 있지만, 이번에도 적지않게 당황했다.

대학시절 스쿠터를 타다가 빙판에 미끌어질 때 20년 남짓 짧은 인생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걸 겪은 적이 있는데, 그 때 만큼이나 짧은 시간동안 온갖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스윗하면 이혼을 하지 않을 수 있나?" 

"난 스윗하지 않았나?"

"이혼을 하면 스윗하지 않은 사람인가"


그 와중에 이과 아니랄까봐 역/이/대우의 대우까지 떠올려가며.

식사자리는 조용하게 마무리되었지만, 한동안 그 친구에게 어떻게 하면 이혼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라는 것을 설명해줄지 꽤 긴 시간을 고민하게 되었다.

쉽게 이해시켜주고 싶었고, 확실하게 이해시켜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겪거나 겪을 법한, 혹은 가까운 사람들이 겪는 이벤트에 빗댈만한 것이 필요했다.




수능이 떠올랐다.

그 후배의 말을 수능에 적용해본다면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수능은 왜 그 모양으로 보고 대학은 겨우 거기 갔대?"

이렇게 되지 않을까. 이 말은 과연 쉽게 내뱉을 수 있는 말일까.


모든 학생들이 그러하지는 않지만, 많은 학생들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최대한) 좋은 대학에 가고싶어한다. 그러나 모두가 원하는 바를 이루지는 못한다. 더 슬픈 것은 줄곧 1등을 하던 친구도 수능을 망치면 대학에 실패할 수도.

(단,  내신을 통한 수시전형을 논외로 한다는 가정하에.)


열심히 해도 본인이 공부가 적성이 아니라면 수능은 못 볼 수도 있고, 그렇다고 인생이 그자리에서 끝나지도 않는다. 

수능을 못 봐도 자기 길을 찾아 잘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될만큼 흔하고, 재수해서 더 좋은 대학으로 진학하는 사람들도 수두룩하며, 삼수를 해서라도 (많이들 선호하는) 의대를 갔다는 이야기는 그다지 놀랍지도 않은 수준의 이야기다.

열심히 하지 않았더라도 한꺼풀 뒤집어보면 집안상황이나 건강 등 학업 외적인 요인들이 좋지 않을 수도 있고, 모든 것을 갖추었다고 한들 철이 덜들어 학업의 타이밍을 놓치기도 한다.


즉, 모두가 노력한 만큼 수능을 잘 볼 수도 없고, 본인의 잘못도 있을 수 있지만, 불가항력적인 요인들도 생각보다 많다.

 

이혼도 마찬가지 아닐까.

돌싱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과연 노력하지 않았을까, 스윗하지 않았을까.


적성과 반대로 문과/이과를 선택해서 고생하듯 나와 맞는 사람을 잘못 선택했을 수도, 

본인도 모르게 나쁜친구를 만나 학창시절을 잘못 보내듯, 나쁜 사람을 만나고 뒤늦게 깨닫을 수도,

열심히 가정을 지키려했지만, 상대의 외도나 외부적인 환경에 의해 지칠수도, 

물론 내가 철이 덜들어 제대로 된 판단을 못하거나 잘못을 했을수도,


과연 이렇게 다양한 원인들이 이혼을 결정한 사람들이 비난받을 이유가 될 수 있을까? 

공부를 하지 않았으면 비난받을 수 있겠지만, 왜 수능을 못 쳤는지에 대한 이유도 모른채 수능을 못 쳤다고 비난하지는 말아야 하듯, 

귀책사유가 있거나 아무 노력을 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이혼을 했다고 그 사람을 비난하거나 전체를 깎아내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기회가 된다면 그 남자 후배에게 딱 이정도만 이야기해 주고 싶다.

이혼이라는 건 

본인이 더 좋은 수능결과와 입시결과를 낼 수 있다고 믿고 도전하는 재수와 마찬가지로, 
본인은 더 잘 살 수 있다는 사람이라는 걸 믿고 다시 시작하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혼을 고민하는 부부들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