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사가?"... 아내는 그걸 바라지 않습니다.
이혼에 이르기까지 참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 과정 속에서 상대도 많이 힘들었겠지만 나 역시도 꽤 많은 노력을 했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서로의 노력이 서로에게 잘 보이지 않았거나 원하던 노력이 아니었을 뿐.
누군가에게는 이 글이 결혼식의 서약을 지키지 못한 자의 자기변명으로 보일 테지만, 누군가에게는 이 글이 배우자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시작점이 되길 바란다.
(여기서부터는 스포가 있습니다.)
이제는 언급하기에도 시간이 꽤 흐른,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 속 동훈(남자 주인공)이 종종 퇴근길에 전화를 걸어 아내에게 묻는 말이다.
어떤 이유로 동훈의 통화를 도청 중인 지안(여자 주인공)은, 너무나도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온 어린 그녀는, 그 말을 가장 따뜻한 말로 느낀다. 정작 그 말을 듣는 아내는 시큰둥할 뿐인데.
아내는 그 말의 소중함을 극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깨닫는다.
드라마에서는 동훈의 따뜻함과 아내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사용된 대사였지만, 나에게는 또 다른 시선을 깨닫게 해 준 고마운 대사였다.
만약 이 드라마의 프리퀄을 아내의 시점에서 쓴다면 어떻게 될까.
학교 선배와 결혼을 하여 가정을 꾸렸고,
뒤늦게 사법시험까지 합격하여 변호사가 되었고,
남편은 성실한 직장인이다.
그러나 남편에게는 제 앞가림 못하는 형과 동생이 있고,
어머니 역시 그리 넉넉하지 못하여 남편이 대출로 구해준 전셋집에서 생활을 하신다.
도통 불평불만 없고 성실한 남편은 집에서도 크게 말이 없고 세상 모든 무게를 혼자 짊어진 듯 보인다. 겨우 퇴근한 남편은 평일 저녁에는 형제들과 술을 마시는 것이 일과이며, 주말에는 조기축구를 즐겨한다. 가끔 퇴근길에 전화와서는 뭐 사갈까 묻지만 난 그다지 먹고 싶지도, 바라지도 않는다.
외롭다.
이렇듯 아내의 시점으로 다시 써 본 동훈은 성실한 사람일지는 몰라도 그리 좋은 남편이 아니다.
반대로 동훈의 시점에서 프리퀄을 쓴다면 어떻게 될까.
예쁘고 똑똑한 학교 후배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아내는 뒤늦게 변호사가 되었다.
아들은 어린 나이에 유학을 보냈고, 회사에서는 인정받는 부장이다.
그러나 형제들을 돌아보면, 형은 일찍이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백수로 지내면서 딸 결혼식 비용마저도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며, 동생 역시 백수로 지내고 있다. 어려서부터 그렇게 유복하지 않았던 탓에 어머니가 지내실 작은 집마저도 그나마 상황이 나은 내가 대출을 내서 구해드려야 했다. 대기업과 전문직의 맞벌이라 수입은 넉넉한 편이지만, 아들 유학 비용과 어머니의 기대를 생각하면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
고생 끝에 변호사가 된 아내에게는 이 상황이 미안할 뿐이고, 퇴근길에는 그런 아내가 생각나서 전화를 해보아도 시큰둥할 뿐이다.
그나마 마음이 편한 곳은 형제와 친구들이 있는 정희네 술집뿐.
아내가 외도라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기는 했지만, 원인을 따져보면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바라는 것이 달랐을 뿐.
나 역시 돌이켜보면 '워커홀릭'이라는 단어가 참 뼈아팠다. 신혼임에도 불구하고 새벽까지 야근을 하고 주말 출근도 밥 먹듯 했던 나였다. 외도를 저지르거나 나쁜 짓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 어떤 여자라도 외롭고 힘들지 않았을까.
내 입장을 변명하자면 딱히 부모님이 넉넉하시지도 않았고, 학교를 오래 다닌 탓에 서른 초반까지도 가진 것이 없었기에, 회사에서 성실하게 근무하고 인정받는 것은 꽤 중요한 문제였다. 회사에서의 성공만이 내가 꾸린 가정이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행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그러나,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 안정이 된 환경에서 자라온 사람에게는 내 삶의 태도는 아마 쉽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웠으리라. 대기업에, 아직 잘릴 나이도 아닌 상황에서, 자기 사업체도 아닌데 신혼생활을 포기하면서까지 열심히 일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게 당연한 법. 그런다고 어차피 임원이 되기도 어렵고 돈을 얼마 더 버는 것도 아닐 텐데.
이렇듯, 자라온 환경이 다르면 가치관 역시 다르기 마련이고, 이왕이면 같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끼리 결혼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했을 경우에는 당연히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
아내가 남편에게 가정과 아내의 우선순위가 높기를 바라고,
남편은 가정의 경제적인 안정을 위해 노력하고,
이런 것들이 절대 잘못되었을 리는 없지 않은가. 다만 두 가지를 모두 달성하기 쉽지 않을 뿐.
몇 년이 지난 지금, 그 당시를 돌이켜보고 가장 아쉬운 것은 서로가 이런 차이를 이해하고, 조금씩 양보하고 상대의 가치관을 존중해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다.
종종 불화나 이혼에 대한 고민 상담을 요청하시는 분들이 있다. 비록 전문가도 아니고 그다지 좋은 경험도 아니지만, 굳이 그분들께 드릴 부탁이 있다면,
내가 바라는 것을 강요하기보다는, 상대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이해해보라고
권해보고 싶다.
또 하나, 모든 것에 "때"가 있듯 대화와 이해에도 때가 있고 그때를 놓치면 돌이킬 수 없다는 점도 이야기하고 싶다.
상대가 대화하고 해결하려고 노력할 때 절대 외면하지 마시길. 그 순간이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으니.
갔다 오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꽤 많은 분들이, 상대가 대화를 회피했거나, 부부상담 등의 노력을 같이 해주지 않았었다는 말씀을 하신다. 물론 그들에게도 나름 이유가 있겠지만, 그 이유가 "꼭 이혼을 하기 위해서"일리는 없지 않을까.
굳이 추측하자면,
"내가 이런 거 피한다고 설마 이혼까지 가겠어"
라는 생각 아닐까...라고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그리고 그 끝이 이혼임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을 수밖에. 상대는 어려운 결정을 이미 고심 끝에 내렸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