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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묘한 Jul 05. 2022

이혼의 상처 극복하기

이혼 5년차. 극복은 현재 진행형.

다녀온 후로, 동성이든 이성이든 참 많은 "다녀온" 분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이혼율이 그렇게 높다고 하는데도, 미혼일 때나 결혼생활 중에는 보이지 않던 돌싱들이, 내가 이혼하고 나니 갑자기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마도 다들 숨겨주고 스스로도 드러내지 않다가 같은 부류의 사람들에게만 오픈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리라.


나 역시 꽤 긴 시간을 힘들게 보내다가 이제서야 겨우 정상의 범주에 들어왔다고 생각하기에, 다른 분들은 어떻게 극복했는지가 늘 궁금했다. 아마 다른 분들도 궁금하실 듯해서 내가 지나온 길과 그 과정에서 알게 된 분들의 이야기를 조금 꺼내볼까 한다.


대단한 이야기도, 자랑거리를 늘어놓는 것도 아니고, 아직도 다 극복하지도 못했다. 그냥 이렇게들 살아가고 있다 정도 말하고 싶다.

어쩌면 최고의 위로는, 나만 이렇지 않구나...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닐까.



#1. 빠져나오기

정말 '심연'이다.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보여도 보기 싫고 들려도 듣기 싫고. 가끔은 뒤틀린 사람들이 잔잔한 심연에 돌을 던지기도 한다. 더 무서운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더 깊게 들어가 버린다.


내가 뭘 그렇게 잘 못 했을까.

그 사람은 왜 그랬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 것일까.


끝없는 원망과 자책을 반복했다. 한동안은 그렇게 지냈다. 어느 순간부터는 모든 것을 부정하듯 당시에 입소문이 퍼지던 드라마 "나의 아저씨" 속 대사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을 되뇌며 조용히 심연 밑에서 지냈다.


그렇게 몇 달을 보내던 중, 갓 태어난 조카와 부동산 열풍이 나를 조금씩 그 심연에서 꺼내 주었다.

'전'배우자의 이름이 뒷면에 적힌 여권을 분실 처리한 후에 재발급받고 홀로 떠난 여행에서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조카에게 줄 명품 원피스를 사는 것을 시작으로, 주말마다 조카를 보러 편도 30km씩 자전거를 타고 다녀왔고, 엄마 아빠도 못하는 조카가 삼촌이라는 단어를 먼저 말하면 에XXX 백을 사준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진심 가득 담아 말하곤 했다. (알고 보니 삼촌은 꽤 어려운 단어였다. 거의 2년이 걸렸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렇게 조건 없이 사랑을 줄 수 있고 나한테 웃어줄 대상이 있다는 것은 참 행운이었다.


결혼 생활 동안 수입을 모두 전 와이프에게 일임하였기 때문에, 소장을 보내고 재산조회를 하고, 최종적으로 도장을 찍기 전까지 난 무일푼이었다. 그 상황에서 한 집에서 지낼 수는 없었기에 부득이하게 은행에서 신용대출로 큰 금액을 대출하여 작은 오피스텔을 구하게 되었다. (전세대출도 이미 신혼집에 잡힌 상태였다.) 몇 개월에 걸쳐 가정법원을 들락거린 후에야 내 몫에 해당되는 금액을 받을 수 있었고, 그 길로 대출을 상환하러 갔다. 그런데 상환하러 간 자리에서 은행 직원이, 다시는 이런 금액의 대출을 못 받을 수 있다고, 투자할 곳이 있으면 투자하라고 상환을 만류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부동산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고, 평일 퇴근 후나 주말 저녁에는 자전거를 타고 관심 있는 아파트 수십 단지를 돌아다니며 전문가인 마냥 엑셀을 작성해서 비교 분석하는데 모든 시간을 쏟아부었다.


그 두 가지만 바라보며 2년 하고 몇 개월을 조금 더 보낸 후에야,

다시 가족과 주변 친구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이성들이 돌이나 나무가 아닌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지인들에 대한 이야기도 짧게나마 소개하자면, 꽤 많은 분들이 나와 같이 어떤 것에 몰입하는 식으로 힘든 시기를 헤쳐나가며, 또 어떤 분들은 '나'를 찾는 것에 집중하기도 한다.


몰입의 대상은 하고 있는 직장 업무가 될 수도 있고, 헬스, 등산, 골프와 같은 운동이 되기도 하고, 어떤 분들은 다소 비생산적이긴 하나 술에 의존하기도 한다. 생각보다 꽤 많은 분들이 전문가 상담과 함께 약물 치료를 받기도 한다. 혹은 우리나라 사회 특성상 대놓고 말하기 힘든 처지를 서로 공유할 수 있는 돌싱 모임을 통해 심리적인 안정을 되찾기도 한다. 어린 자녀가 있으면 모임 참석도 힘들 수 있지만, 가끔이나마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얻을 수 있다.


자녀가 없거나 양육을 하지 않는 경우, 가정과 육아라는 힘든 과정을 잠시 미뤄둔 상태이기 때문에 젊었을 때 하고 싶었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해보지 못했던 일들을 도전하는 기회로 삼기도 한다. 여행, 글쓰기, (평소에 자주 접하기 힘든) 서핑/다이빙, 이직이나 커리어 변경 등 다양한 시도를 그동안 보아왔고, 나 역시 이혼이 아니었으면 브런치 작가 도전을 하지도 않았다.




#2. 새 사람 만나기

누군가를 다시 만난다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사람 만나는 일이 그냥도 쉽지 않은데 돌싱이 된 후로는 더욱 쉽지 않았다. 다가가는 것도 쉽지 않고, 다가오는 사람을 허락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이미 내 눈은 한번 크게 실패한 눈이기에.


지금은 다시 남이 되었지만, 그 벽을 넘게 해 준 것이 그때 만난 대학 동기였다. 연락을 하지 않을지는 오래되었지만, 꽤 오래 알고 지냈기에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후에 자연스레 가까워지고 연애라는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사람을 믿을 수 없었기에 오래 알고 지낸 사람과 연애를 시작한 것도 역시 행운이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걱정이 앞서는데 연애가 제대로 될 리가 없지 않은가.


결혼정보업체도 특히나 코로나 시국에서는 좋은 경험이었다. 사람을 만나기가 역대급으로 힘든 상황에서 꽤 많은 이성분들을 만날 기회가 주어졌으며, 결혼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거래와 같이 생각되고 남녀가 결혼 시장에서 어필하기 위해서는 각각 어떤 조건들이 필요한지도 매우 생생하게 배울 수 있었다. 절대 그 시장을 옹호하지도 않고 여전히 나의 롤모델은 대학시절에 만나서 졸업하고 같이 으쌰 으쌰 가정을 열심히 꾸리고, 적당한 나이에 애를 갖는 몇몇 친구들이기는 하지만, 그런 복을 타고나지 못한 나는 결혼'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 알 필요가 있었다.


새 사람을 만나 다시 시작하는 것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여전히 내 눈을 믿지 못하며, 이 사람은 나와 뭐가 맞지 않을까 항상 신경이 곤두서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과정은 대동소이하다. 지인의 소개를 받고, 모임에 나가고, 결정사의 문을 두드린다. 개개인의 성격차와 의지, 양육의 유무에 따라 쉽고 어려움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대부분 비슷한 과정을 통해 새로운 사람을 찾게 된다.



끝으로, 많은 돌싱분들을 만나면서 느낀 점을 하나만 꼽자면, 나를 포함한 모두가 같았다 라는 점이다.

돌싱이어도, 자녀가 있든 없든, 사랑하고 사랑받길 바라며,
또다시 그 지옥을 겪을까 두려워함에도 불구하고 다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잘 살아보려고 각자의 방법으로 부단한 노력을 하며 살아간다.


다들 행복하시길.

아니지. 적어도 그 시절보다는 덜 불행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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