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부동산 사가 (Saga) #2

갭투자

by 묘한

순진하게 부동산 사장님 말만 믿었던 나는 몇 달 지나지 않아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사장님 말을 너무 순진하게 들었던 내가 사태 파악을 했을 땐 이미 어마어마한 불장이 시작된 상태였다. 7억 4천 호가였던 물건은 이미 거래가 되었고 어느새 호가는 8억이었다. 전세가가 대략 5억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에게 7억 4천과 8억은 갭투자로 매수를 할 수 있고 없고의 차이였다.


결국 어쩔 수없이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분당은 남북으로 길쭉하게 생긴 모양이고, 이른바 '서수정'이라고 불리는 서현-수내-정자의 분당선 라인이 일반적으로 상급지로 인정받고 있었다. 모 부동산 카페에서 이런 류의 상급지, 하급지를 논하면 굉장한 공격을 받기도 한다. 서로 내가 상급지니 어쩌니 하며 싸우기도 하고. 나 역시 잘 모르는 상황에서는 그런 류의 정보를 믿고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굳이 상, 하급지로 지역을 구분하고 싶지는 않아 표현을 조금 바꾸자면,

결국 어쩔 수 없이 내가 가진 자금력으로 갭투자가 가능한 가장 비싼 지역을 찾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는, 부동산 시세라는 것이 실질적인 가치도 중요하지만 심리적이거나 대중의 트렌드도 굉장히 많이 작용한다고 본다. 그런 내 눈에는 사실 분당의 대부분의 지역들이 큰 차이가 없었다. 모두 같다는 의미는 아니고, 지역마다 장단점이 뚜렷해 보였다. 이런 말도 조심스럽긴 하지만, 분당구에서 내 눈에 확실히 좋아 보였던 건 판교역 부근이었다. 아마 내가 신분당선을 자주 타고, 고속도로도 자주 타고, 백화점을 좋아해서 그 부근이 참 좋아 보였다. 교육이 중요하고 광역버스를 타는 분들은 아마 서현이나 수내를 선호할 것이고, 잠실방향으로 진출해야 되는 분들은 또 야탑이나 그 위쪽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건 내 개인의 의견일 뿐 부동산 시세는 이런 것들을 포함하여 굉장히 복잡한 함수로 결정된다.


그렇게 이것저것 고려해서 다음 대안을 찾았고, 그 지역에서 가장 목 좋은 곳에 위치한 부동산에 무작정 들어갔다. 이 부동산은 몇년 동안 종종 연락와서 오만가지 못난이들만 소개해주었다. 내가 호구로 보였었단 의미겠지. 아무튼, 이미 새로운 지역에서도 이미 불장은 퍼저나가고 있었고, 어쩔 수 없이 나는 이리저리 돈을 더 구해서 그 지역의 대장주 국평 매물을 신고가 금액에 매수하기로 결정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겁도 없었다. 계좌도 받고 가계약금도 아마 넣었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결국 매수를 하지 못했다. 가격이 무섭게 올라가던 시기였고, 매도인은 결국 거둬들여버렸다.


다시 매물을 찾던 나는 "당시에는" 괜찮아 보였던 매물을 발견하였다. 바로 옆 단지 중층 동향 물건. 동향의 발코니에서는 산의 경치가 멋졌다. 그리고 그 단지는 분당 내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낮은 용적률로 유명한 단지였다. 동향이 조금 마음에 걸리긴 했으나, 애당초 내가 입주할 생각도 없었기 때문에 사실 큰 문제가 되진 않았다. 물론 남향 판상형이 선호되기는 하지만 동향이라고 못난이는 아니었고 일반적으로 남/남동/남서 다음으로는 동향을 선호하기도 했고.


어렵게 갭투자금액을 마련한 나는 그 물건을 매수하여 인생 첫 등기를 마쳤다. 그렇게 내 첫 매수가 끝이 났고, 첫 '갭투자' 역시 시작되었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사실상 매수에 내 돈은 거의 쓰지 않았다고 봐도 된다는 점이다.

물론 내 돈 일부에 신용대출을 더해서 아파트를 매수를 했지만, 거주할 집을 전세대출로 구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어떻게 보면 신용대출과 전세대출을 일으켜서 집산 것과 다름이 없었다. 만약 매수를 하지 않았다면, 난 그냥 내 돈으로 전세를 구했을 테니까.


이때 깨달았다. 아 이렇게 하는 거였구나. 이렇게 빚을 내는 게 이게 오히려 공식과 같은 방법이구나. 왜 나한테 이런 방법을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가. 혹자는 그러다 집값 떨어지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묻기도 한다. 그런데 정말 '끝장'나려면 집값도 폭락하고 나도 회사에서 잘려서 주담대 이자도 감당 못하는 상황일 텐데, 그 지경이 된다면 과연 나 하나만의 문제로 끝날까 싶다.


아무튼 그렇게 내 첫 매수는 끝이 났고 부동산 시장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몸과 돈으로 때워 배울 수 있었다.


후일담을 몇 가지 이야기하면,

그 첫 갭투자는 "너무" 늦지 않은 타이밍이었을 뿐 성공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매수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세입자로부터 누수로 연락이 왔다. 아마 누수가 두 군데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한 군데는 외벽을 타고 들어오는 거라 관리사무소 책임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다른 한 군데는 진짜 누수였다. 아랫집에서 누수가 된다고 연락이 온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계약서 상에 6개월 내의 중대하자는 매도자 책임으로 표기되어 있어 그 부분으로 연락하였으나, 당연히 팔고 간 사람은 쉽사리 내줄리가 만무하고, 결국 부동산에서 비용을 부담하고 넘어갔다. 이런 문제가 많아서 요즘엔 그냥 6개월 같은 기간을 두지 않는 듯하다.


한 가지 더 이야기할 게 있다면 부모님의 반응이었다.

"아빠 내 드디어 집 샀다"

"얼마"

"X억"

"X억? 미쳤나? 니가 X억을 어디서 만들어서 들어가노"

뭐 틀린 말은 아니었고 이제는 인정해 주시지만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서운한 감정은 남아있다.

축하한다는 한마디가 그렇게 어려웠을까.

물론 이해는 한다. 현금이 없거나 거액의 대출을 내기 힘든 사람들은 이런 방식을 꿈도 꾸기 어려웠을 거다. 집은 착실히 벌어서 일부 모자라는 정도만 대출로 충당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였을 거다. 그 와중에도 착실하게 모으고 자식교육까지 잘 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의 이전글나의 부동산 사가 (Saga)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