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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what of a Prologue

강경애 작가의 <꽃송이 같은 첫눈>을 접하고

by 모다니

글을 쓴 지 한참이 되었다. 벼르기만 하다 1년의 허송세월 후 결국 취직을 했다. 글로는 도저히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는 걸 알아서인지 아니면 잠깐이라도 글을 써보니 그닥 재능이 없다고 깨달아서인지는 모르겠다. 어떤 이들에게 악상이나 시상이 떠오르듯 나에겐 다양한 글 소재들이 스쳐 지나가듯 떠오르곤 한다. 그 순간이 지나면 바로 잊을 걸 알면서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조립을 하고 만족을 한다. 작은 찰나 머릿속에서만 완성된 짧은 산문들은 내 기억에서조차 남지 못하고 금세 사라져 버린다. 인생의 역작에 도전한다기보다 짧게 떠오르는 생각들을 기록하고 싶었다. 40대가 되니 인생의 시작과 중간 그리고 끝을 생각하게 된다. 기록의 욕심이 생기고 나에게조차 생경해진 과거를 되새겨보게 된다. 기록하지 않으면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져 버릴 생각들. 기록을 통해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싶은 것일까? 나 스스로는 꽤나 특별했다 생각하는 나의 삶을 다른 이에게 인정받고 싶은 걸까? 호랑이는 가죽을, 인간은 이름을 남긴다는데 나는 기억을 남기고 싶나 보다. 남들과 달리 내 가족을 만들지 못한 데서 오는 보상심리 같기도 하다. 자식이 있다 해도 엄청난 위인이 아닌 이상 내 인생에 관심이 가질 리 만무한데... 타인의 관심의 갈구보다 내 기준의 ‘정리‘가 필요한 것 같다. 그런데 머릿속 섬광 같은 아이디어들을 글로 옮기다 보면 내가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글이 나를 쓰는 것처럼 느껴졌다. 생각들이 피부, 뼈가 생기며 단단해지는 것이 아니라 (필력이 부족한 탓에) 어디선가 본 관용적 표현으로 점철되어 완성되는 글에 내가 끌려가는 것 같았다. 자유롭게 쓰기 어려웠고 자기 검열과 더불어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지 스스로 혼란스러웠다. 쉽고 단단하고 여운이 남는 글을 쓰고 싶은데 내 글은 아이디어일 때는 반짝반짝하다가도 형체를 갖추고 나면 식상했다. 우연히 만난 강경애 작가의 <꽃송이 같은 첫눈>. 시라 해도 될 만한 A4 한 장이 체 안 되는 길이. 초딩에게도 무난한 쉬운 문체의 이 글을 읽고 내 안의 무언가가 요동쳤다.

‘너는 언제까지나 바늘과만 싸우려느냐?’

강경애 작가가 1932년 12월 <신동아>에 게재한 이 수필은 이 한마디로 요약될 수 있다. 나에게 ‘바늘‘은 가장 현실적이고 나를 괴롭히는 문제로 다가왔다. 치열하게 몰두할 수밖에 없지만 결코 인생의 큰 가치를 둘 수는 없는. 끊임없이 바늘과 싸우는 하루하루가 인생 그 자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1932년 강경애 작가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바늘과만 싸우기보다 방 밖의 눈송이도 보고 싶었다. 그런데 쉽지 않다. 바늘과 싸우지 않고 눈송이를 보다간 내 일상이 깨질 수 있다. 넘어질 수도 있고, 남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 한참 전 ‘이상’의 글을 직접 읽어보고 싶어 산 <모단에쎄이>란 책에 수록된 첫 에세이이다. 거의 1년 만에 첫 장을 넘겨 보니 ‘이상‘뿐 아니라 다양한 동시대 작가들의 산문집이었다. 90여 년 전 사람의 감정과 경험이 묘사된 글을 읽는 것은 매우 특별하다. 번역체가 아닌 작가의 생생한 언어로 전혀 다른 시대의 순간을 접하는 것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 여행을 하는 느낌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인생의 본질적 고민은 크게 다르지 않고, 시대를 관통한다는 것이 위로가 되면서도 어느 시대에나 인생이란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 같아 무섭기도 하다. 검색을 해보니 강경애 작가는 36세 나이에 세상을 떠났는데 무려 231건의 도서를 남겼다. 재출간된 작품도 있을 테니 231이란 숫자가 전부는 아니겠지만 자신의 이름을 건 무언가를 남긴 사람들을 나는 동경한다. 예술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당대의 인정을 받고 싶은 생각도 용기도 없다. 내가 만족할 수 있는 무언가를 남기는 것. 바늘이 아닌, 내가 싸우려는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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