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술을 전파한 백제인 인번, 그는 국악인이었다

국악인 출신 전통주 소믈리에가 보는 백제인 인번 - 수수코리

by 조인선

국악인 출신 전통주 소믈리에. 내 명함을 받은 사람들은 종종 고개를 갸웃한다. 아쟁을 켜는 손으로 누룩을 딛고, 우리 소리를 듣던 귀로 술이 익어가는 소리를 듣는다. “음악과 술, 전혀 다른 두 분야를 왜 함께하시나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먼 옛날,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간 한 사람을 떠올린다.


바로 일본에 술을 전파했다고 알려진 백제인, ‘인번(仁番)’이다. 일본어로는 ‘수수코리’, 우리 한자음으로는 ‘수수허리(須須許里)’로 불리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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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술 역사를 연 찬가(讚歌), 그는 백제인 인번

일본의 가장 오래된 역사서인 《고사기(古事記)》에는 응신천황(應神天皇) 시대에 백제 사람 인번이 건너와 곡식을 발효시켜 빚은 술을 왕에게 진상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당시 그가 빚은 술맛이 얼마나 뛰어났던지, 응신천황은 술을 마시고 기쁨에 취해 그 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須須許里賀 加美斯美紀爾 吾酔爾家里 許止那具志 恵具志爾 吾酔爾家里 (수수코리(인번)가 빚은 신성한 술에 나는 취했네. 마음을 달래주고 웃음을 주는 술에 나는 취했네.)


이 기록 덕분에 수수보리는 오늘날까지도 일본에서 ‘술주조의 신(神)’으로 추앙받고 있다. 하지만 내가 주목하는 것은 그가 단순히 '술 빚는 기술자'에 머물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팡이로 돌을 치다, 음악과 춤의 시작

《고사기》의 기록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장면이 이어진다. 응신천황은 수수코리의 술에 기분 좋게 취해 노래를 부른 뒤, 길을 가다 자신의 지팡이로 길가의 큰 돌을 쳤는데 그 돌이 피하여 달아났다는 설화가 나온다.

於是、御杖打大坂之道中大石者、其石避而騰。故、諺曰『堅石毛避騰』也。 (이에 지팡이로 오사카 길 위의 큰 돌을 치니, 그 돌이 피하여 달아났다. 그래서 '단단한 돌도 피한다'는 속담이 생겼다.)


단순한 취중 행동처럼 보이는 이 장면은 고대 예술의 관점에서 보면 ‘가무(歌舞)’의 전형적인 구조다. 먼저 수수허리를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고(歌), 그 리듬에 맞춰 지팡이로 돌을 치며(舞)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행위. 즉, 수수보리는 단순히 마시는 액체(Alcohol)만을 전한 것이 아니라, 술을 즐기는 예법과 흥, 즉 풍류(風流)라는 문화를 함께 전파한 것이다.


AKR20191214006100081_01_i_P4.jpg 북을 치는 모습. 출처 연합뉴스
‘신소리고’에 담긴 백제의 소리

수수보리가 음악 전파자였다는 가장 결정적인 근거는 일본 궁중 음악인 아악(雅樂)에 남아 있다. 에도 시대에 편찬된 역사서 《대일본사(大日本史)》의 ‘악지(樂志)’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실려 있다.


"《고사기》에 응신 천황 시절 백제인 인번(수수코리)가 술을 빚었다고 하는데, 아악의 곡명인 ‘신소리고(進蘇利古, しんそりこ)’라는 이름은 아마도 수수코리(須須許里)의 이름이 변하여 생긴 것일 것이다."


즉, 에도 시대의 학자들은 이미 인번이 전한 음악과 춤이 그의 이름을 딴 곡명으로 굳어져 전승되고 있다고 본 것이다.


‘신소리고’는 또 다른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바로 우리말의 '신명 나는 소리'와 북을 뜻하는 '고(鼓)'의 결합이다. 즉, ‘신소리고’는 ‘신(神) + 소리 + 고(鼓)’가 합쳐져, 술자리에서 흥을 돋우는 ‘신명 나는 북소리’라는 의미가 일본에 건너가 고유명사처럼 굳어진 것은 아닐까?


21세기의 수수코리, 조'인번'을 꿈꾸며

교토의 사가 신사(佐牙神社)에는 지금도 수수코리, 즉 인번을 모시는 사당이 있다. 흥미롭게도 그곳에는 남녀 한 쌍의 신이 모셔져 있어, 인번이 여성이었거나 혹은 남매가 함께 건너갔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성별이 무엇이든 중요한 것은 그가 일본 땅에 ‘술’과 ‘소리’를 하나로 묶어 문화를 전파했다는 점이다.


나는 아쟁을 전공했고, 지금은 전통주 소믈리에 자격증을 따서 우리 술을 알리고 있다. 가끔은 ‘내가 왜 이 두 가지를 다 하고 있을까’ 의문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우연히 마주친 백제인 인번의 이야기에서 나는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어쩌면 나는 수백 년 전 그가 걸었던 길을, 지금 이 시대에 다시 걷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활동명을 한번 바꿔볼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조인선’이 아닌 ‘조'인번'

’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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