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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Jan 09. 2017

프로는 말이 없다

일을 대하는 애티튜드

도장 사장님 명함. 일을 대하는 마음은 이런 디테일에서 묻어 나온다.

우주의 기운이 느껴질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좋아하는 물건들은 영혼이 느껴져서 버릴 수가 없다. 버리려고 몇 번을 결심해도 도대체 버릴 수가 없을 때가 종종 있다. 그날도, 너무 좋아하는 회색 에나멜 구두가 뒤축이 까지기도 하고, 굽이 닳기도 해서 버릴까 말까 몇 번을 망설이다 구두병원에 데리고 간 날이었는데, 구두가게 사장님, 새하얀 셔츠를 입고 계시는 거다.


묻으면 잘 지워지지도 않는 채도 낮은 구두약이 사방에 널려 있는 그런 어두운 공간에서, 잡티 하나 없는 새하얀 셔츠는 오로라처럼 비현실적으로 빛나 보이기까지 했다. 사장님은, 내가 구두에서는 최고 전문가라는 마음으로 아침마다 흰색 셔츠를 입으신다고 하셨다. 청춘을 이곳에서 다 보내 허무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자제분들이 모두 잘 자라줘서 보람 있다고 하셨다.


최근 3년 동안 오시는 이모님께서는 한 번도 약속을 어기신 적이 없다. 50대 후반에 항상 같은 컨디션을 유지하실 수 있는 자기 관리도 대단하게 느껴졌다. 3년 동안 몸살감기 한 번 안 하셨을까? 늘 호텔처럼 깨끗한 집 컨디션을 만들어 주시면서도, 항상 부족한 점이 있으면 이야기하라고 말씀하신다. 나도 서비스를 업으로 하는 사람이고, 이모님께 또 한 번 배운다. 본인이 만족할 만한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했을 때, 비로소 겸손해질 수 있다는 것을.  


박람회 가는 날. 그날 오셨던 기사님은 일찍 도착하셔서 차를 청소하고 계셨다. 그런 기사님은 뵌 적이 없어서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 날이 인연이 되어, 매번 도움을 주시는데, 이 분은 장소만 말씀드리면 더 물으시는 법이 없다. 언제 몇 시까지 오시라고만 안내드리면, 몇 번 출구로 오셔서 주차 몇 번이라고 안내드리는 긴 통화를 하지 않아도 되고, 나를 위해 화물 '서비스'를 해 주시는 걸 느낄 수 있다.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아껴 주시는 진짜 서비스. 나도 내 고객님께 그런 서비스를 하고 싶다.


'작지만 강력한 디테일의 힘'을 역설한 왕중추는 "자질은 일상생활의 미세한 부분이 쌓여 형성되는 것이며 그것을 쌓아가는 과정이 바로 노력이다."라고 했으며, "통찰력은 하루아침에 길러지지 않으며 오랜 경험을 통해 조금씩 쌓이는 것이라고 했다. 디테일한 부분을 세심하게 관찰하는 일이 반복되고 쌓여야 통찰력이 단련되고 향상될 수 있다."라고 했다. 그냥 지나치기 쉬운 1mm의 디테일은 사실 모든 것을 담고 있는 것이다.


도요타가 렉서스를 개발할 때, 기능 중심의 차에서 서비스 중심의 차로 전환하는 그때, 도요타는 개발팀을 꾸려 초특급 호텔에 머무르며 사고 체계 전환에 엄청난 비용과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디자인은 디테일이고 1mm를 바꾸기 위해서는 사고 체계를 전환하는 그런 노력이 필요하다. 상품 1mm를 바꾸기 위해서는 재료, 생산 프로세스, 제품, 패키지, 제품의 판매 방식과 소구점, 물류, 영업, 마케팅 등등 모든 게 달라진다. 그러나 현장에서 디자이너들은 1mm 그게 뭐 대단한 노력이냐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나는 1mm를 만들어 내는 진짜 프로들에게 지불하는 비용은 깎고 싶지 않다. 아니, 나는 나처럼 서비스를 직업으로 택한 프로들에겐 정말로 한 푼이라도 더 지불하고 싶다. 서비스 산업은 디테일이다. 선진국일수록 사람 값은 비싸고, 생필품 값은 저렴하다. 때로는, 카피이던 아니던 다 좋은 제품이라는 말, 소비자는 같은 품질이면 가격이 저렴한 게 최고라는 이야기를 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그런 기준으로는 우리 아이들이 먹고 살 미래가 없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에는 디테일이 먹거리를 결정할 거다. 1mm에 대한 무시와 멸시가 1mm에 대한 존경심으로 바뀌는 그 지점 즈음 국민소득 3만 불 시대가 오지 않을까.


삼성물산 패션부문(제일모직)에서 운영하는 삼청동에 있는 CSR플래그십 스토어 '하티스트' 매장에는 지난해 지지난 해 이월 상품들을 재편집해서 현재 트렌드에 맞는 패션 상품들을 보여준다. 그동안은 3년이 지난 상품은 모두 소각해 왔다고 했다. 디스플레이도, 콘셉트도 건강하지만 제일 기분 좋았던 건, 5점 21만 원입니다 하는 기계적인 멘트가 아니라, 5점이나 하셨는데, 21만 원입니다~라는 매니저의 칭찬 같은 멘트였다. 지구를 사랑하는 착한 소비에 뿌듯한 내 마음을 읽어 준 것 같은 디테일.

따뜻한 삼청동 하티스트.


고객님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데이터화 할 수 없고, 그동안의 경험과 내 가진 모든 것을 활용한 직관으로 소통해야 한다. 원하시는 바로 그것. 계속 변하는 나의 컨디션처럼 고객님의 컨디션도 그렇다.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건 사람 간의 디테일한 소통이다. 갑을이 아니라, 소통을 하는 대상으로 서로를 이해해야 진짜 서비스가 된다. 디자이너들은 감성적이라 마음이 닫히면 좋은 결과물이 나오기 힘들다. 딱 그만큼. +알파는 기분이 좋고 뭔가 더 하고 싶을 때 나온다.


나는 일을 대하는 마음 자세가 비슷한 프로들끼리 만나는 현장에서는 모두가 도리도리 고개를 내 젓는 불가능한 일들을 가능으로 만들었던 경험이 여러 번 있다. 그리고, 그때 진심으로 쳐 주는 박수보다 더 큰 행복을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 나는 일상 속에서 더 많은 프로들을 만나고 싶다. 잠 스치듯 지나간다 해도, 일을 대하는 마음의 자세와 애티튜드는 진한 여운을 준다. 나도 내게 주어진 일에서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그 모습을 알아보는 프로들과 감동을 주고받는 조용한 진짜이고 싶다.   

항상 그 자리에 걸어 놓으시는 목공 사장님 가방.

http://m.yes24.com/Goods/Detail/85121544?pid=157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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