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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Sep 19. 2018

쓰레기

디자이너의 비애


저희는 다른 이들의 삶을 편리하고 아름답게 만든다는 확신을 가지고,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더 해 어떤 제품을 디자인하고 만들어 냅니다. 분명히 시장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어떤 제품은 예상대로 뜨거운 호응을 받기도 하지만, 어떤 제품은 반응이 냉담합니다. 일부 제품은 출시하고 한참 시간이 지나 단종하려던 시점에 인기를 끌기도 해요.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는 15년 차인 지금도 여전히 알 수 없습니다.


종이도, 앨범도, 플라스틱도, 비닐도 최소 단위가 있어요. 그걸 맞춰 생산해야 최저의 단가가 나오는데, 도박이나 다름없습니다. 부끄럽지만, 저희가 만든 제품 중 10년이 지난 지금도 창고에 남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제품도 있어요. 그런 제품을 폐기 처분할 때는 생살을 뜯어내는 것 같이 아픕니다. 나는 지구에 쓰레기만을 양산하는 디자이너구나. 하는 자괴감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요. 멘탈이 뿌리째 휘청거리지요.


많은 재고를 안고 있으려면 불필요한 물류비용이 계속 발생합니다. 그냥 버려야 하나. 버릴 때에도 처리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데. 어떻게 보면 가장 빠른 방법이지만, 지구에게 대단히 미안합니다. 그래서 저는, 내 새끼들은 내가 책임져야지. 하는 엄마의 마음으로, 2년 동안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는 몽당 마켓에 참가해 말 그대로 처분한 적도 있어요. 그게 지구에게 덜 미안했거든요. 새로운 주인을 찾아 주면 저도 마음이 편했습니다. 시간과 효율을 생각하지 않는 정서적인 해결책이었어요.


때로는 버리는 것보다 살려 쓰는 게 더 어려운 경험을 종종하게 됩니다. 인테리어를 리모델링할 때에도 쓸만한 자재는 살려내고, 정말로 고쳐야 하는 곳만 고치느라 애를 썼어요. 시간이 비용이라, 기존의 자재를 싹 뜯어 내고 새 자재로 바르는 게 더 빠르고, 더 저렴하거든요. 오늘도 현미 4킬로를 버릴까 말까 망설이다 다 씻어서 밥을 지었어요. 부피가 더 커져서 1리터 봉지 7개에 밥을 나눠 담았습니다. 사서 고생이지... 그래도 쓸만한 건 어떻게든 살려 쓰고 싶어요.

오늘 저녁의 선물입니다. ^^
두 번째 책의 작가


2년 전 겨울 즈음, 브런치를 통해 글을 올렸고 덕분에 첫 책을 쓰게 되었어요. 준비하며 하루에 200여 권의 신간이 출간되는 도서 시장에 놀랐습니다. 비록 초보지만, 또 쓰레기를 만들고 싶지 않아 첫 책의 작가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MD 님들께서 잘 봐주신 덕분에 YES24에서는 '오늘의 책'에 선정되어 취미/실용/스포츠 부분 6위(최고 기록)에 오르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고, 인터파크에서는 '이대로 묻히기 아까운 책'에도 선정해 주셨습니다. 먼지가 많아지는 계절이 오니, 내려갔던 순위가 다시 오르고 있어요. 제게도 좋은 경험을 선물해 주는 책.


저는 두 번째 책을 내는 작가가 되고 싶었어요. 한 권 쓰고 보니, 지속적으로 책을 내고 계신 작가님들이 위대해 보입니다. 성실한 하루하루를 장작 삼아 지피는 불로 한 권씩 책을 구워 내는 거였어요. 정말로 몸과 마음과 생각을 건강하게 갈고닦으며 매일매일 정진해야 가능한, 쉴 틈 없는 길입니다. 박완서 선생님께서는 글쓰기가 쉬워지거나 익숙해지지 않는다며 참으로 모진 길이라고 말씀하시기도 했어요.


두 번째 책은 첫 번째 책 보다 조금 더 성장한 책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두 번째 책을 준비하는 지금 생각해 보니, 나 혼자 성장했다. 하는 건 의미가 없을 거 같아요. 소중한 시간을 내어 책을 읽어 주시는 분들이 알아봐 주셔야지요. 그래야 두 번째 책도, 세 번째 책도 쓸 수 있지 않을까요. 무라카미 하루키는 책과 독자가 직거래하는 셈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셨어요. 지금은 세 번째 책이 나올 만큼 이 소진되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두 번째 책 계약을 해 놓고 보니 또 걱정이 됩니다. 제 마음속 스승님 줄리아 카메론은 '글의 양은 내가 책임질 테니, 창조주 당신께서 글의 품질을 결정하시라'라고 생각하면 훨씬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다고 하셨어요. 글은 쓰면 쓸수록 더 어려워진다 하셨는데, 어이쿠. 길을 잘 못 들었나 싶으면서도 계속 쓰고 싶습니다. 독자로서 저는 도서관에서 빌려 본 후 구입하는 책을 최고로 칩니다. 부디 제가 쓰는 책들도 곁에 두고 계속 뒤적이고픈 책이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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