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은 가장 큰 동기 부여
잡지사 기자
어릴 때부터 위인전을 좋아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하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하니 직업으로 기자는 어떨까 생각했다. 매월 잡지사에 독자 엽서 보내던 나는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자유기고가로 일할 기회를 만났다, 운도 따라, 한 잡지사에서 일하게 되었다. 막내니까 배당받는 꼭지대로 뭐든 다 했다. 글쓰기가 밥벌이가 되니, 감성이 동결 건조된 야채처럼 말라붙었다.
그래도 내가 쓴 기사들을 포트폴리오 삼아 대학 파일에 모아두었는데, 그 양이 두꺼운 파일로 두 개 되었다. 국문과에 다니는 친구가 있어 빌려 주었었는데, 얼마 전 돌려받았다. 20년 전 일인데, 계속 보관하고 있었던 친구도 참 대단하다. 다시 보니, 패션이나 뷰티 화보는 그저 그렇더라. 인터뷰 기사도 딱히 좋은지 모르겠더라.
그때 글을 망치나 끌처럼 도구로 다루는 법을 배웠지만, 내 얘기를 표현하긴 더 멀어졌다. 나는 촉촉한 카스텔라나 밀크 티 같은 이야기를 쓰고 싶었지만, 내가 쓰는 글은 건조한 무나 파 같은 글이 나왔다. 좋은 글을 쓰고 싶었다.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결핍은 사람을 바꾸는 가장 강한 동기가 된다.
잘 쓰고 싶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어떤 분들의 글이 나를 움직이는지를 관찰했다. 삶을 단정하게 토박 토박 걸어가며 빚어내듯 글을 쓰는 작가님들의 글을 읽을 때 마음이 울리고, 행동에 변화가 왔다. 철학박사 김형석 선생님, 패션 디자이너 노라노 선생님, 박완서 작가님, 임경선 작가님처럼 일상을 높은 온도에서 구워 투명하도록 솔직해진 글이 좋았다.
무작정 도서관에서 나를 치유하는 글쓰기, 유혹하는 글쓰기를 빌렸다. 우울증에 빠진 사람들을 부추겨 비싼 글짓기 수업을 하는 강사로 폄하하며, ‘나를 치유하는 글쓰기’를 펼쳤다. 그런데 읽을수록 자세를 고쳐 앉으며 따라 할까 말까 망설이는 내가 느껴졌다. 그녀는 ‘매일매일 쓰면 작가’라고 용기를 주었다. 손으로 매일 아침 글을 쓰라는 그녀의 말은 믿기 힘들었다. 컴퓨터나 노트북이 있는데 왜 굳이...?
바로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를 읽었는데, 그 책에서도 손으로 매일 쓰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면 90일 동안 매일 손으로 글을 쓰라는 말을 의심하지 말고 그냥 따라 해 봐야지. 90일까지는 변화를 전혀 못 느꼈다. 그래도 90일은 채워보자, 채워보자 하며 매일매일 썼다. 손으로 쓸 때 머릿속 다른 부분이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나의 일대기도 정리하고, 중간 과정 프로젝트가 나오는 대로 다 따라 해 본다. 신기하게도 90일이 지나니 변화가 느껴졌다. 일상의 별 것 아닌 일들이 금박처럼 얇게 한 겹 떨어져 나왔다. ‘쓰고 싶다.’. 그 느낌은 코끝에 살짝 닿았다가 사라지는 라벤더 향기 같기도 했다. 매일매일 일어나는 별것 아닌 일상에서 별들이 한 개 두 개 낚아지기 시작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줄리아 카메론의 ‘아티스트 웨이’는 세 번 읽고, 워크숍은 한 번 했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작가수업’, '헤밍웨이의 작가 수업' 등등 잘 쓰는 법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읽었다, 세계 최고들이 매일 실천하는 것들을 기록한 책 '타이탄의 도구들'에서 팀 패리스는 대부분의 타이탄들이 '아티스트 웨이'에 영감을 받아 모닝 페이지를 쓴다고 했다.
글을 쓰는 훈련을 한다고 해도, 사실은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라는 데미안의 문장처럼 내가 나를 깨고 나와야 하는 훈련이기도 했다. 숨기는 게 있던지, 숨기고 싶은 게 있는지 자꾸 가리고 싶었다. 중심부를 뚫고 직진해야 하는데 쓰다 보면 산으로 갔다. 군더더기가 많아졌다. 그런 글은 마음으로 가지 않고 허공으로 간다.
김형경 작가님의 모든 책, 김혜남 박사님의 모든 책, 이무석 박사님의 모든 책들을 읽으며, 어떤 책들은 두 번 세 번 읽으며 동시에 내면의 나에 대해 탐색하기 시작했다. 자아가 저 구석에서 등을 돌리고 쭈그려 앉아 있었다. 미안해라. 나는 마음은 없는 것처럼 살아왔는데. 스스로 마음을 꺼내 약을 치고, 고치고, 씻고, 닦는 그 과정이 힘들었고, 지금도 어렵다.
박완서 선생님께서는 작가마다 다 다른 감수성을 갖고 있어 똑같은 걸 보고도 모두 다르게 표현할 수 있다 하셨다. 감수성은 자기만의 도구이니, 꺼내서 닦고 광을 내고 섬세하게 유지해야 한다. 이때쯤 되니 일상의 군더더기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다 버렸다. 요가를 통해 조금씩 더 유연해지는 내 근육처럼 일상도 조금씩 더 자유로워졌다.
마늘 같은 향신료도 싫어지고, 커피나 설탕같이 중독성을 띄는 먹거리도 꺼려진다. 내가 원할 때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는 내 머리와 내 근육들이 더 행복하기 때문에. 오늘 당장 박완서 선생님처럼 좋은 글을 쓰는 건 어렵더라도, 어제보다 오늘 티끌만큼이라도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면 조금 더 노력할 힘이 생긴다. 여전히 군더더기를 물리치려 푸닥거리고 있지만,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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