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재경 Oct 23. 2019

어른의 생활

날마다 자란다

학생의 생활

  

  내가 국민학교를 다닐 때는 국어, 산수, 사회, 자연으로 분류되는 과목을 배웠다. 단순 명료했다. 시험을 볼 때엔 1,2,3,4번 보기를 보고 맞는 답을 골라, 괄호 안에 숫자를 써넣으면 됐다. 1, 2, 3, 4번 동그라미에 표시를 잘했더라도 괄호에 써넣지 않으면 가차 없이 빨간 브이가 붙었다. 괄호 안에 선명한 글씨로 답을 써넣어야만 정답으로 인정해 주었다. 정답과 오답의 경계가 분명했던 시절.


  동생들의 교과서는 '슬기로운 생활', '아름다운 생활' 같은 형용사가 붙어 있는 과목이었다. 뭘 배우는지 궁금해 표지를 열어 보면, 책 속 내용은 내가 배운 국어, 산수,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흑백 그림이 올 컬러로 채색된 정도, 지우개로 지우면 다 일어나던 종이가 매끄러운 종이로 달라진 정도. 그것만으로도 세상은 더 아름다워진 듯했다.

  

  나도, 동생들도 한 학기 동안 학업의 결과는 수, 우, 미, 양, 가 같은 글자로 표시되었다. 평균 90점 이상이 넘으면 '수'였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더 해 둘로 나눈 숫자가 90점이면 되었기 때문에, 중간고사에서 79점을 맞았다면, 기말고사에서는 반드시 100점을 맞아야 했다. 그러면 179점으로, 평균값은 89.5점이다. 반올림해 90점이 되어 가까스로 '수'를 획득할 수 있었다.


  '수'는 곧 일 등급과 상관이 있었고, 일 등급은 대학 입시와 연결이 되어 있었다. 하고 싶은 것을 배우는 게 아니라, 달달달달 외우는 시합을 했던 20세기. 그때 외웠던 지식은 떡고물 같이 겨우 달라붙어 있다 학력고사가 끝나면서 다 떨어져 나갔다. 입시를 위해 달달 외운 단편 지식들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공부'는 재미없고 지겨운 것이었다.


  아들이 다니고 있는 혁신초등학교의 생활은 나의 학창 시절과 많은 것이 다르다. 아들의 단원 평가 답안지를 보면, 괄호 안에 쓰지 않아도 동그라미를 쳐 주신다. 서술형 시험은 짧으나, 길으나 대체적으로 후한 평가를 내려주시는 느낌이다. 공개수업에 가보면, 아이들은 대체적으로 당당하고 자유롭게 자기 의견을 피력한다. 등수로 줄을 세우기보다는, 성취 수준에 기준을 둔다. 좋게 말하면 유연하다.


어른의 생활


  입시를 위해 달달 외웠던 지식들이 별로 생각나지 않는 걸 보면, 어쩌면 그 지식들은 현재의 나에겐 쓸모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과정과 노력까지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어떤 목표를 설정하고, 스스로의 한계에 도전하며, 참고 견디는 힘을 기르고, 최선을 다하는 태도를 기르는 도구로서 역할이 있었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잘하게 되기까지는 재미가 없다. 참고 견디는 힘이 있어야 잘하게 된다.  


  물론 그 태도는, 꼭 공부가 아니라 다른 분야로도 훈련할 수 있다. 일찌감치 자기 재능을 찾아 도전하는 피겨 스케이트 선수, 야구 선수, 바이올리니스트, 배우, 가수, 요리사, 사업가의 예가 종종 눈에 띄지 않나. 재능을 어릴 때 찾아, 평생토록 자기 좋아하는 분야에서 성장하며 살 수 있으면 정말로 행복할 것 같다. 하지만, 나처럼 특별한 재능이 없는 평범한 사람에겐 '공부'가 그 도구였다.


  인생을 살아보니, 자기 한계에 도전하며 스스로 성장하고자 하는 의지가 만들어 내는 차이가 무섭게 느껴진다. 100세이신데도 강연 스케줄을 소화하시며, 대중교통으로 이동하시고, 글과 책을 펴내시는 김형석 박사님. 요즘에도 일주일에 한 번 수영을 하신다고 한다. 그 정신력이 존경스럽다. 박사님께서 '정신에 가치를 두고 살라'고 해 주신  말씀은 공부의 순수한 재미를 찾는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과목은 '매일매일 꾸준히'라고 생각한다. 세 번째 책을 쓰는 동안 매일 2000자가량의 글을 쓰면서, 스스로 느끼기에 글의 매무새가 조금 나아졌나 했다. 하지만, 동시에 달거리가 세 달 가까이 사라졌다. 한계에 나를 밀어 넣으며 세 권의 책을 썼어도, 매일매일 쓰지 않으면, 글의 속도가 느려지고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문득 어른의 생활에는 책임, 컨디션 조절, 성과, 체력 관리, 일상생활, 대인 관계, 경제 활동 같은 과목이 있나 싶다. 성적표로 나타나진 않지만, 어느 하나도 매일매일 챙기지 않으면 생활 전반이 뒤틀린다.  어른인 내가 제일 잘하고 싶은 과목은 '매일매일 꾸준히'이다. 지금도 누워 안마기를 돌리고 싶은 마음을 붙들고 책상 앞에 앉아, 기어이 이 글을 마무리했다. 오늘도 썼다.


http://m.yes24.com/Goods/Detail/85121544?pid=157529


http://modernmother.kr

http://modernmother.co.kr

http://band.us/@modernmother

https://www.youtube.com/channel/UCellnKG29-2GNZp0MoQ8r4Q?view_as=subscriber

http://instagram.com/jaekyung.jeong


작가의 이전글 집 고치기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