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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Oct 16. 2019

집 고치기에 대하여

취향으로 맺어지는 인연

인테리어, 부탁드려도 될까요?   


  인스타그램으로 메시지를 한 통 받았다. '응, 누구지?' 메시지를 읽자마자 내 마음은 '어머, 반갑다!'라고 반응하고 있었다.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5년 전, 전체 리모델링했던 우리 집에 세입자로 들어오셨던 분이다. 이름도, 생활방식도 모두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 집은 처음으로 우리의 취향을 담아 리모델링했던 집이다. 아직 사용연한이 남아 있던 방문은 페인트 칠을 하고,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것들만 리모델링을 했다. 전실에는 밝은 그레이와 베이지색, 짙은 그레이의 타일을 잘라 붙여 아트월을 만들었다. 현관문을 열 때마다 보이는, 제멋대로 커팅된 타일 벽은 닫힌 머리를 깨 주는 듯 자유로웠다.


  주방과 거실엔 아들이 장난감을 갖고 놀아도 바닥이 상하지 않도록 회색 타일을 깔았다. 베란다는 확장하지 않고 폴딩도어를 설치했지만, 바닥을 높여 여름엔 폴딩을 열면 거실이 베란다까지 확장된 느낌이 들도록 해 실용성과 기능성을 둘 다 잡았다. 벽은 흰색 페인트와 똑같은 벽지를 찾아 도배를 하고, 천정에는 등을 매입해 깨끗하게 마무리했다.


  싱크대는 정말로 혼신의 힘을 다해 디자인했다. 상부장의 세로 라인과 하부장의 세로 라인을 칼처럼 맞췄다. 상부는 지중해의 바다를 닮은 푸른색 우레탄 도장을 하고, 싱크대 하부에는 오크 무늬목으로 도어를 달았다. 하부장은 전부 브룸 철물을 써, 서랍으로 설치했다. 가로로 긴 흰색 손잡이를 달아 시선을 수평선처럼 길게 연결하고, 수건이나 행주를 걸어 말릴 수 있도록 실용성을 더했다.


  안방에는 가벽을 세워 침대 쪽에는 아늑하게 침대를 놓고, 그 벽 너머에는 붙박이장 대신 옷을 수납했다. 안방 욕실과 드레스룸 사이에는 문 하나로 양쪽을 닫을 수 있도록 머리를 굴렸다. 그 공간 안에서 하고 싶은 것을 실컷 했다. 사정 상 이 집을 매매 후 이사하고 싶었지만, 우리의 취향이 너무 깊게 반영된 그 집은 임자를 찾기 어려웠다. 할 수 없이 전세를 놓았었는데, 바로 그 집의 세입자셨다.

조각조각 잘라붙인 타일을 보면 생각이 풍선처럼 떠다닌다.
회색 바닥 타일, 혼신의 힘을 들인 주방, 베란다와 거실의 폴딩 도어.
침대만 딱 들어가는 가벽과 손잡이와 색을 다르게 리듬감을 준 방문.


인테리어 서비스


  이번에 생애 첫 집을 마련하셨다고, 올 수리된 우리 집에 살면서 너무나 행복했기 때문에 꼭 인테리어를 부탁하고 싶다는 메시지였다. 고민 되었다. 그동안 인테리어 비즈니스는 계속 고사했었다. 마침 세 번째 책을 집필하는 중이었고, 곧 네 번째 책의 계약서가 오기로 되어 있었다. 취향이 비슷한 분이라, 함께 작업하면 재미있을 것 같았지만, 도저히 무리였다. 고사했다. 또 메시지가 왔지만, 자칫하면 세 가지 일을 망칠 것 같아 고사했다.


  하지만, 세 번째 책이 생각보다 진도가 쭉쭉 나갔고, 바로 보내주시기로 한 네 번째 책의 계약서가 오지 않았다. 세 번째를 쓰는 동안 네 번째 책은 쓰고 싶은 마음이 사그라들었다. 한 마디로, 시간이 조금 있었다. 그때 또 문자가 도착했다. 그동안 아이가 태어나 이제 겨우 오 개월 되었고, 곧 복직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옛날, 아이가 어릴 때 내 모습이 거울 속에 보이는 것 같았다. 이건, 재능을 나누라는 하늘의 뜻인가... 하기로 했다.


  삼 년 만의 현장이다. 다행히 우리 팀 작업자 분들은 삼 년 만의 전화에 반색하시며 일정을 맞춰 주셨다. 오랜만에 뵙는 사장님들이 건강하신 걸 보니,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온천수가 솟아 나오는 것 같다. 웃는 얼굴로 만나니 이렇게 반가울 수가! 고향에 온 것처럼 편안하다.


  아무래도 현장감이 떨어져 어리바리하니, 사장님들께서 다음 과정을 챙겨주신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특히 인테리어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전문 작업자의 손을 빌려 하나하나 해결한다. 숙련된 기술자들이 땀을 흘린 만큼, 하루 일하면 하루 일만큼 진도가 나아간다. 현장은 정직하다. 나의 디자인을 반영해 주시려는 물심양면의 노력.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이 이미 따스하다. 여러 사람이 함께 하는 작업이라, 창작물 중에서는 결과물이 빠르게 나오니 또 재미있다.


  독일 바우하우스가 100주년을 맞았다. 기능은 형태에 우선한다는 실용주의가 나의 디자인과 닮았다. 예산 안에서 니즈에 충실하며, 살릴 것은 살리고, 더할 것은 최소한으로 하는 의사 결정을 한다. 여러 가지 한계 속에서 가장 쓰기 좋고, 아름다운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다. 이 경험을 클라이언트와 공유하며, 함께 성장하고, 평생 마음이 따뜻한 추억으로 기억될 수 있다면 디자이너로서 나는 밥을 먹지 않아도 배부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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