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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Oct 09. 2019

디자인과 요리의 공통점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과 집밥은 같은 재료를 쓴다

엄마의 재봉틀

  

  점점 밤이 길어진다. 어릴 적, 이렇게 밤이 길어질 무렵, 엄마는 저녁 상을 정리하고 재봉틀과 원단 더미를 꺼내셨다.  엄마가 원하는 디자인의 옷이 없었기 때문에 종종 우리 옷을 만들어 주셨다. 그 원단에는 시침핀이 군데군데 꽂혀 있어 아무리 조심해도 손을 찔리기 일수였다. 여린 조막손이 찔리면, 새빨간 핏방울이 동그랗게 맺혔다. 아프지만 예뻤다. 그 핏방울에 천 조각을 갖다 대면 순식간에 사라졌다.

 

  지퍼를 가져오라던지, 실을 가져오라는 잔심부름은 거의 내 몫이었다. 엄마가 나를 부르지 않을 때는 옆에 앉아 바느질 놀이에 빠졌다. 실에 바늘을 끼워 조각 천을 잇기도 하고, 단추를 달아보기도 했다. 까만 체크무늬 천에는 보라 천을 덧대고 괜히 꿰매고, 빨간 꽃무늬가 있는 조각 천에는 노랑 단추를 달아보기도 했다. 쪽가위로 실을 자르기도 하고, 잠 자리표 가위로 조각 천을 잘랐다.  


  엄마는 일본 패턴 책을 보고 달력 뒤에 본을 그려 옷을 만들어 주셨다. 책 앞쪽의 몇 장은 어린이들이 옷을 입고 있는 컬러 프린트였고, 뒤쪽엔 패턴이 흑백으로 그려진 페이지들이 있었다. 예쁜 원피스를 보고 뒤쪽 패턴을 보면 상의 앞판, 뒤판, 지퍼 자리, 다트 자리가 표시되어 있었다. 일본어로 쓰여 있었지만, 엄마는 그림만 보고도 옷을 만들어 주셨다. 나도 옆에서 엄마가 보는 책을 들춰 보다 푹 빠져 들어 이 옷 저 옷 고르곤 했다.


  엄마는 회색에 가까운 베이지색의 면 원단에 빨간 체크무늬 소매를 덧대고, 더블 버튼 바바리를 만들어 주셨었다. 가슴팍에 프랑스 레이스가 들어간 분홍색 모직 원피스도 만들어 주셨다. 엄마가 만들어 주신 드레스를 입고 나갔던 피아노 대회도 잊을 수 없다. 금색 줄이 들어간 하늘하늘한 흰색 천에 분홍색 공단 띠를 두르고, 내 손은 건반 위에서 춤췄다. 상도 받았다. 엄마는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 보면서 우리 옷을 만들어 주셨다. 나도 엄마처럼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 보면서 디자인을 한다.


디자인이란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프랑스 복식사를 단추로 풀어낸 전시를 본 적이 있다. 어릴 적 옷 만들던 엄마 옆에 앉아 단추를 만지작 거리며 놀던 기억이 떠올랐다. 단추는 동글동글 귀여운 형태를 가졌으면서도 색과 질감이 아름답다. 이 전시엔 산업 혁명 이전에 상아로, 보석으로 만든 단추들이 가득했다. 공장에서 찍어내기 이전의 단추는 공예품이었다.


  마름모 꼴의 흰색 패턴이 그려진 남색 원피스에 흰색과 빨간색 짧은 스카프가 매져 있다. 가슴팍을 따라서는 빨간 단추와 흰색 단추, 다시 빨간 단추가 달려 있었다. 빨간색과 하얀색의 단추를 보며, 내 머릿속에는 퍼즐이 돌아다닌다. 나는 빨강 빨강 하양이 나을까, 하양 하양 빨강, 빨강 빨강 빨강? 하양 하양 하양? 나는 하양 하양 빨강이 좋을 것 같다. 리듬감보다는 라인의 느낌을 조금 더 강조하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별 것 아닌 일들이 디자이너들에게는 중요한 사실이 되기도 한다. 계산대에 늘어선 사람들을 보며 동선에 대한 아이디어를 정리하기도 하고, 새로 오픈한 카페의 높은 카운터를 보며 일하는 분들의 허리를 걱정하게 된다. 좋은 디자인은 사용하는 사람의 노동력과 시간을 아끼고, 심미적인 만족감을 더한다. 그래서 명함이 10 폰트냐 11 폰트냐가 중요해지고, 어떤 흰색이냐가 중요해진다. 심지어 영국엔 흰색 페인트만 255색이 있는 온라인 쇼핑몰이 있을 정도이다.


현업에서 일하다 보면, 종종 듣게 되는 말이 있다.

"디자인이 뭐 별 거예요? 그냥 해 주세요."

"똑같은데 가격이 싸면 좋은 거 아닌가?"

"다 똑같은데 그게 뭐가 달라요?"


좋은 디자인이란


  똑같은 재료를 갖고 요리를 만들지만, 미슐랭 3 스타 레스토랑의 요리와 내가 하는 가정식 백반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 디자인 역시 그렇다. 같은 재료와 같은 시간을 들여 만들어도 어떤 디자이너가 풀어내느냐에 따라 하늘과 땅 같이 다른 결과물이 나온다. 나는 디자인이란, 얻을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취합하고, 예산, 기간, 투입 자원의 한계 속에서 가장 좋은 솔루션을 찾아, 결과물을 '아름답게' 뽑아내는 작업으로 이해하고 있다.


  세계 3대 패션 스쿨인 파슨스의 전 학장, 사이먼 콜린스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디자이너는 아름다운 해결책을 만드는 사람(Creating beautifulsolution)”이라고. “흔히 정보기술(IT)이 미래에 가장 중요하다고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입고 만지고 여행하는 모든 것이 디자인이란 걸 한국도 이해해야 한다”라고도 말했다.


  좋은 디자인은 쓰면서, 혹은 살면서 오래도록 그 디자이너가 생각난다. 쓸 때마다 '아.. 그래서 이렇게 디자인을 했구나', '아... 그래서 더 편하고 좋구나.' 공간 디자이너로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낄 때는 몇 년 지난 집도 처음 상태 그대로 잘 관리하고 계시며, 살면서도 계속 편안하고 좋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제품 디자이너로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낄 때 역시 십 년이 넘도록 우리 제품을 잘 사용하고 계신 고객님을 만날 때이다.


  디자이너로서 꿈 꾸던, 나의 취향을 그대로 갖고 싶다는 클라이언트를 만났다. 우리가 함께 하는 작업의 과정이 행복한 기억으로 남고, 결과물 역시 볼 때마다 만족스럽길 기도한다. 사실 생존에는 디자인이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삶에서 디자인과 음악과 그림과 글 같은 아름다움을 모두 걷어낸다면 어떤 세상이 될까? 디자인은 모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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