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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Jun 19. 2019

그냥 많이 하면 돼요

자기만의 도구

실리콘 코킹


  아파트 리모델링 현장에서 우린 가장 마지막 순서로 실리콘 마감을 선택했다. 실리콘을 코킹하고 완벽하게 굳으려면 적어도 만 하루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먼지가 실리콘에 붙으면 지저분하기 때문에 그 시간 동안은 먼지가 없어야 한다.

  그 얘기는 현장에 나갔다 들어갔다 하는 사람도 없고, 바람에 먼지가 묻어오지 않도록 창문이 닫혀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우린, 입주 청소까지 깨끗하게 마무리하고, 창문을 닫은 후 가장 마지막 공정으로 실리콘 작업을 하곤 했다.

  각 마감재가 가구를 짜 맞춘 듯, 혹은 퍼즐을 끼워 맞춘 듯 딱 맞아 실리콘 마감이 필요 없는 편이 더 좋겠지만, 생각과 달리 벽과 바닥은 정확하게 수직과 수평을 이루지 않는다. 일반적인 새 아파트인데도 바닥면의 높이가 3cm까지 차이가 나는 걸 보았다. 이상과 현실은 늘 격차가 있는 법이다. 그럴 때 실리콘이 필요하다.

  실리콘을 어떻게 쏘는지에 따라 공사 품질이 달라 보이기도 한다. 2mm의 폭으로 직선으로 한 번에 쏘면 울퉁불퉁 거리는 것 하나 없이, 마치 원래 있었던 것처럼 시선에 걸리지 않는다. 선물 포장에 따라 내용물의 가치가 좌우되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다.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실리콘의 숙명이니, 마감재의 색상과 최대한 비슷한 색상을 고르는 편이 좋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시중에 나와 있는 색상은 8가지이다. 마루의 색상은 100여 가지는 훌쩍 넘어가기 때문에, 마루 색상과 실리콘 색상은 다를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도록 실눈으로 처리하는, 실리콘 작업자의 숙련된 솜씨에 의지하게 된다.

자기 만의 도구


  그날 현장에서 만나 뵌 실리콘 사장님은 처음 뵙는 분이다. 불안하다.
“어디 어디 쏘면 돼요?”
“마루는 다 둘러주시고, 욕실 벽면 사이사이, 바닥 타일과 벽 만나는 부분, 주방에는 여기 여기 다 쏴 주시면 되어요.”
“꽤 많네.”

하시며 실리콘 통에 노즐을 돌려 끼운다.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인다. 담배는 안 되는데... 생각하는 순간, 그 라이터로 노즐을 가열한다. 왜 그러지? 플라스틱이 열을 받아 말랑말랑해지니, 손으로 살살 휘며, 노즐의 각도와 폭을 조절하신다.

  이 작업에서 나는 이 분의 마감 품질은 걱정 안 해도 되겠다고 직감한다. 자기만의 도구를 갖고 있는 분들은 작업에 대한 숙련도와 해결법에 대한 고찰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실리콘 사장님은 벽과 바닥 사이의 공간을 스캔하신 후, 당신의 호흡 한 번에 팔이 움직이는 각도를 계산해 노즐을 휘고, 실리콘 짜는 양을 조절하셨을 거라고 추측해 본다.

  아니나 다를까. 정말 예술과 같은 실리콘 솜씨이다. 2mm 폭에 자로 대고 그은 것 같이. 기가 막힌다.
“아니, 어떻게 하면 이렇게 잘 쏠 수가 있어요? 좀 가르쳐 주세요!”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냥 많이 해 보면 돼요.”
“그래도 최고세요!”
“나는 실리콘이 재미가 있더라고.”

  이 분의 작업 솜씨는 실리콘 작업 현장을 확인하는 분마다 연락처를 받아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 오늘 하루 종일 실리콘 사장님의 그 말씀이 귀에 뱅글뱅글 돌아다녔다. 그냥 많이 해 보면 돼요.

  그래. 내가 재미있는 걸 그냥 많이 해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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