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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Jun 12. 2019

아들의 첫 요리, 달걀말이

남편의 요리


  결혼하고 얼마 안 됐을 때의 일이다. 식사는 내가 준비하고 설거지는 남편 담당인 게 우리의 룰이었다. 하루는 내가 야근이라 늦고, 남편이 빨리 퇴근해 식사를 준비했다. 그때, 남편이 준비한 메뉴는 된장찌개였다. 모양도 냄새도 그럴듯했다. “육수 내서 끓인 거지?” “응.” “우와~ 맛있겠다!” 하며 얼른 찌개를 한 술 떠먹었다.


  앗. 이런.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는 이 맛. 내가 좀 여우 같은 아내라면, “우와, 정말 맛있다! 당신은 요리에 소질이 있나 봐. 다음에도 부탁해~ ”라고 했을 텐데, 나는 너무나 정직하고, 담백한, 있는 그대로의 마누라다. “아우, 이건 정말 못 먹겠다. 다음부터 늦게 와도 요리는 그냥 내가 할게. 당신은 설거지만 하는 게 좋겠어.” 이 말을 뱉은 걸, 오랫동안 후회했다.


  아이가 생기고, 내가 정신없이 바쁜 날들이 이어지자, 보다 못한 남편이 요리를 시작했다. 다행히 그동안 세상이 좋아져 인터넷의 레시피로 요리를 해도, 맛이 났다. 남편의 메뉴는 감자를 썰어 볶는 수준에서 점점 진화해, 오징어와 돼지고기 목살을 고추장에 주물러 둘둘 볶고, 버터를 녹여 로즈메리 향을 내 스테이크를 튀기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남편의 솜씨도 일취월장했다. 지금은 나보다 더 잘하는 요리가 몇 개 생겼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더 많다. 그중 최고는 떡국인데, 우연히 함께 드신 엄마와 아빠께서도 솜씨를 인정해 주셨다. 나는 아무리 해도, 그 맛이 안 나는 걸 보면, 아무래도 몰래 MSG를 한 꼬집 넣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긴 하다.


아들의 요리


  나에겐 간단한 레시피 북이 있다. 몇 개 안 되지만, 그야말로 자주 해 먹는 요리이다. 달걀말이, 장조림, 콩자반, 콩나물 해장국, 배추김치, 치아바타 반죽, 방학 때 필수인 피자 반죽, 호두가 많을 때 굽는 브라우니, 바나나가 세 개 남아 있을 때 굽는 바나나 케이크 등이 있는데, 아들은 그 레시피 북에 관심이 많다. 볼 때마다 나중에 꼭 달라고 한다.


  아들이 달걀말이를 먹고 싶다고 한다. 가르쳐 준다고 하니 순순히 주방으로 온다.

“달걀 다섯 개를 먼저 깨 봐.”

“이렇게?”

“응.”

“그다음엔?”

“가쓰오부시 쯔유를 넣어.”

“어디 있어?”

“냉장고 문 포켓에.”

“어디?”

“내가 찾아 줄게. 이게 쯔유야.”

“아. 응 알았어.”

“얼마큼?”

“엄마 달걀말이의 색깔이 기억나? 그만큼."

“그리고 설탕 한 스푼을 넣어. 그리고 생강가루를 조금 넣는 거야. 그냥 통째로 넣으면 쏟아지니까, 뚜껑에 살짝 덜어서 넣는 방법도 있지. 아. 제일 먼저 프라이팬에 기름을 둘러 데우는 게 좋아. 달걀물을 젓가락으로 한 번 살짝 흘려서 칙 소리가 나면 달걀물을 부어 돌돌 말아 주면 돼.”


  아들은 그래도 제법 잘 따라 하고 있다. 둘이 같이 하니, 덜 힘들다. 많이 컸다. 달걀말이를 접시에 얹어 식탁으로 옮긴 아들이, 한 조각 집어 먹으며 맛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은근슬쩍 내 눈치를 본다. 나는 이미 비슷한 경험이 있다. “우와! 정말 맛있는데? 아주 잘 구웠어. 너무 맛있다!” 아들 얼굴에 흐르는 흐뭇한 미소를, 나는 봤다.


  아들 요리에 관심이 많다. 식객과 초밥왕, 방랑의 미식가를 보고 또 본다. 평상시에는 그렇게 허둥지둥하는 아들이 불을 앞에 두고서는 검을 든 무사처럼 집중한다. 또, 달걀말이를 먹고 싶다는 아들에게 이번에도 네가 구워보라고 부추겼다. 이번엔 프라이팬을 먼저 올린다. 재료 준비의 속도가 반으로 줄었다. 달걀을 돌돌 말은 모습도 그럴듯하다. 아들은 무슨 요리를 잘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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