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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Jun 05. 2019

음예예찬

나의 병렬형 독서 생활

여름용 물병

  물을 끓여 차로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여름엔 보리차를 끓여 냉장고에 보관해 시원하게 마시면 메마른 세포 끝까지 해갈 되는 느낌이 든다. 보리는 물 속 유해 성분을 흡착하는 성질이 있다고 하니, 일거 양득이다. 5리터 주전자에 4.5리터 정도를 끓이면 2~3일 정도 마실 수 있는 분량이 된다.


  냉장고에 넣을 물병이 필요했다. 뜨거운 차를 담아야 하니 소재는 유리 소재이고, 물병의 지름은 한 손으로 잡을 수 있으면 좋겠다. 역시 한 손으로 물병을 들어 올릴 수 있는 무게가 되도록 1리터 정도의 용량에, 냉장고 앞 포켓에 들어가는 높이여야 했다. 조금 더 욕심을 부리자면, 물병 안에 손을 넣어 안쪽을 세척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이 물병을 찾아 마트와 백화점, 인터넷 서핑에 시간을 꽤 들였다.


  일주일 정도의 서칭을 통해, 일본 브랜드 무인양품에서 내 소용에 딱 맞는 유리 물병을 찾았다. 그때의 기분은 엉킨 목걸이를 기어이 풀어냈을 때나, 나올 듯 나오지 않는 여드름을 뽑아냈을 때의 기분과 아주 유사하다. 내 요구를 모두 만족시키는 제품이었다. 게다가 한 걸음 더 나아가 뚜껑과 물병 사이를 막는 압착 고무 링도 분리 세척할 수 있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만큼’의 미학이다.


  그 브랜드의 디자인 자문위원인 하라 켄야의 『디자인의 디자인』을 읽게 되었다. 도서관에서 두 번 빌려 읽은 후 결국 구입해, 세 번째 읽던 중이었다. 그 책 추천사를 쓴 후카사와 나오토(제품 디자이너)와 하라다 무네노리(작가)가 『음예예찬』이라는 책을 다시 읽어보라 추천했다는 단락이 있었다. 그 두 분이 공통적으로 ‘양갱’이 등장하는 부분을 언급했다고 한다. 그 문장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나의 병렬형 책 읽기

  좋아하는 책에 언급되는 도서들은 모두 읽으려고 한다. 세 번이나 읽은 책에 언급된 『음예예찬』이니 필수적으로 읽어야 하는 책이다. 가장 최신 버전의 책을 주문했다. 일본 최고의 사진작가의 작업으로 완성했다는 그 책은 미학적으로 완성도 높은 사진이 가득해 산문의 이해를 도왔다.  그런데, 나는 원본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다른 책들을 더 읽고 싶었다.


  도서관에서 검색하니, 1996년에 초판이 발행된 『음예공간예찬』과 2005년에 발간된 『그늘에 대하여』 두 권이 나온다. 1996년의 『음예공간예찬』에서는 ‘타니자끼 준이찌로’로 표기되어 있으며 한 편의 수필이 있고, 2005년 책에서는 ‘다니자키 준이치로’로 쓰여 있으며, 여러 편을 엮은 산문집이다.


  『음예예찬』은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1933년에 쓴 글이다. 그는 1949년에 문화훈장을 받았고, 1958년부터 1965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매해 노벨문학상 후보로 오른, 일본 문학의 대가이다. 짧은 수필이지만, 대단한 필력으로 일본의 아름다움에 예찬을 하는 글이다. 이 글이 미국와 유럽에 소개되며, 지식인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내가 궁금했던 양갱에 대한 단락을 드디어 찾았다. 양갱의 색을 ‘명상적’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양갱의 반투명한 색이 빛을 흡수하면 더 깊은 색을 표현하게 된다는 묘사에서 한 번 더 상상하게 되었다. ‘칠기 과자그릇에 담아 어둠에 잠기게 하면 더욱 명상적이 된다’고 표현하고 있었다. 거무스름한 양갱에서 색과 빛과 깊이와 명상을  떠올리다니.


  60페이지 정도의 짧은 산문이다. 일본의 아름다움에 대한 예찬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서양 문물이 빠르게 흡수되며 잃어가는 일본다움에 대한 성찰이기도 하다. 풍토에서 발전한 일본의 문화, 본질과 철학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 수필을 덮으며, 내 가슴 속엔 ‘그런데, 우리는?’ 이라는 질문이 크게 떠오른다. 본질과 철학. 나의 목마름은 그곳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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