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병렬형 독서 생활
여름용 물병
물을 끓여 차로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여름엔 보리차를 끓여 냉장고에 보관해 시원하게 마시면 메마른 세포 끝까지 해갈 되는 느낌이 든다. 보리는 물 속 유해 성분을 흡착하는 성질이 있다고 하니, 일거 양득이다. 5리터 주전자에 4.5리터 정도를 끓이면 2~3일 정도 마실 수 있는 분량이 된다.
냉장고에 넣을 물병이 필요했다. 뜨거운 차를 담아야 하니 소재는 유리 소재이고, 물병의 지름은 한 손으로 잡을 수 있으면 좋겠다. 역시 한 손으로 물병을 들어 올릴 수 있는 무게가 되도록 1리터 정도의 용량에, 냉장고 앞 포켓에 들어가는 높이여야 했다. 조금 더 욕심을 부리자면, 물병 안에 손을 넣어 안쪽을 세척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이 물병을 찾아 마트와 백화점, 인터넷 서핑에 시간을 꽤 들였다.
일주일 정도의 서칭을 통해, 일본 브랜드 무인양품에서 내 소용에 딱 맞는 유리 물병을 찾았다. 그때의 기분은 엉킨 목걸이를 기어이 풀어냈을 때나, 나올 듯 나오지 않는 여드름을 뽑아냈을 때의 기분과 아주 유사하다. 내 요구를 모두 만족시키는 제품이었다. 게다가 한 걸음 더 나아가 뚜껑과 물병 사이를 막는 압착 고무 링도 분리 세척할 수 있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만큼’의 미학이다.
그 브랜드의 디자인 자문위원인 하라 켄야의 『디자인의 디자인』을 읽게 되었다. 도서관에서 두 번 빌려 읽은 후 결국 구입해, 세 번째 읽던 중이었다. 그 책 추천사를 쓴 후카사와 나오토(제품 디자이너)와 하라다 무네노리(작가)가 『음예예찬』이라는 책을 다시 읽어보라 추천했다는 단락이 있었다. 그 두 분이 공통적으로 ‘양갱’이 등장하는 부분을 언급했다고 한다. 그 문장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나의 병렬형 책 읽기
좋아하는 책에 언급되는 도서들은 모두 읽으려고 한다. 세 번이나 읽은 책에 언급된 『음예예찬』이니 필수적으로 읽어야 하는 책이다. 가장 최신 버전의 책을 주문했다. 일본 최고의 사진작가의 작업으로 완성했다는 그 책은 미학적으로 완성도 높은 사진이 가득해 산문의 이해를 도왔다. 그런데, 나는 원본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다른 책들을 더 읽고 싶었다.
도서관에서 검색하니, 1996년에 초판이 발행된 『음예공간예찬』과 2005년에 발간된 『그늘에 대하여』 두 권이 나온다. 1996년의 『음예공간예찬』에서는 ‘타니자끼 준이찌로’로 표기되어 있으며 한 편의 수필이 있고, 2005년 책에서는 ‘다니자키 준이치로’로 쓰여 있으며, 여러 편을 엮은 산문집이다.
『음예예찬』은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1933년에 쓴 글이다. 그는 1949년에 문화훈장을 받았고, 1958년부터 1965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매해 노벨문학상 후보로 오른, 일본 문학의 대가이다. 짧은 수필이지만, 대단한 필력으로 일본의 아름다움에 예찬을 하는 글이다. 이 글이 미국와 유럽에 소개되며, 지식인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내가 궁금했던 양갱에 대한 단락을 드디어 찾았다. 양갱의 색을 ‘명상적’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양갱의 반투명한 색이 빛을 흡수하면 더 깊은 색을 표현하게 된다는 묘사에서 한 번 더 상상하게 되었다. ‘칠기 과자그릇에 담아 어둠에 잠기게 하면 더욱 명상적이 된다’고 표현하고 있었다. 거무스름한 양갱에서 색과 빛과 깊이와 명상을 떠올리다니.
60페이지 정도의 짧은 산문이다. 일본의 아름다움에 대한 예찬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서양 문물이 빠르게 흡수되며 잃어가는 일본다움에 대한 성찰이기도 하다. 풍토에서 발전한 일본의 문화, 본질과 철학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 수필을 덮으며, 내 가슴 속엔 ‘그런데, 우리는?’ 이라는 질문이 크게 떠오른다. 본질과 철학. 나의 목마름은 그곳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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