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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Nov 13. 2019

빨간 의자

  아침 일찍 스케줄이 있어 서둘러 집을 나섰다. 오늘 일정은 필름 공사라, 시끄러운 소음이 발생할 일이 없다. 필름 공사란 제품 수명이 남아 있는 마감재, 주로 문과 몰딩, 창호에 접착제가 붙어 있는 큰 테이프 같은 인테리어 필름을 붙여 내구성을 더하고, 전체적인 톤 앤 매너를 정돈하는 작업이다. 민원이 거의 없는 작업이라, 비교적 편하게 임할 수 있다.


  새 공정이 시작하는 첫날엔 확인할 것들이 많아 바쁘다. 급해지는 마음을, 침착하게를 되 뇌이며 차를 몰아 무사히 지하주차장까지 도착했다. 주차 자리가 없어 약이 올랐다. 천천히, 침착하게. 주차장 두 바퀴를 돌아 벽에 일렬 주차했다. 차에서 내려 출입구에 보안카드를 대고 문을 열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입구가 소란스럽다. 무슨 일이지?


  여성 두 분이 할아버지 한 분을 엘리베이터부터 차까지 이동하시는 것을 돕고 있다. 한 여성은 오른쪽에서, 다른 한 여성은 왼쪽에서 부축을 하고, 할아버지는 다리를 옮기려 애를 쓰신다. 할아버지는 당신의 두 발로 일어서려 안간힘을 쓰고 계시지만, 엉덩이 쪽으로 말려 올라간 다리는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문 앞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몇 생기고, 문은 자꾸 닫히고...... 엘리베이터에서 출입문을 지나 주차장까지 열 걸음이면 충분해 보이는데, 보기만 해도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방금 전 나에게 했던 말, “괜찮아요. 침착하게, 천천히 하세요.”라고 입에서 흘러나온다. 얼마나 진땀이 날까. 나도 돕고 싶다.


  왼쪽에 서 있는 여성은 “아빠, 한 걸음만 더, 저기 가까운데 있어요. 저기 보이잖아.”를 3초마다 말하고 있다. 오른쪽에 서 있던 여성은 낯선 억양으로 “할아버지, 일어서 봐요.”하며 몸을 일으켜 세우려고 안간힘을 쓴다. 두세 걸음쯤 다리를 옮기며 가까스로 바닥을 흐느적거리던 할아버지의 두 다리는, 움직임을 포기하고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두 여성은 어쩔 줄 모르고, “의자, 의자.”, “의자, 의자.”하고 의자를 찾는다. 엘리베이터 앞엔 빨간 의자가 놓여 있다. 익숙한 디자인의 플라스틱 유아용 의자다. 눈치를 살피다, 얼른 의자를 가져와 어르신의 엉덩이 아래에 의자를 놓았다. 혹시 앉으시다 가벼운 의자가 휙 뒤집혀 넘어지실까 싶어, 할아버지 몸이 의자 위에 잘 안착해 몸무게가 느껴질 때까지 나는 빨간 의자를 힘주어 밀었다.  


  할아버지는 겨우 의자에 앉으시고, 땀이 뻘뻘 나는 두 여성은 숨을 고른다. 엘리베이터 출입구 바로 앞에 차가 주차되어 있고, 차문도 이미 다 열려 있는데. 두 발로 걸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겨우 열 걸음이나 될까. 차문까지 가는 일 이 미터의 거리가 몇 만 년처럼 느껴진다. 외면하고 싶지만, 결국 누구에게나 다가올 일......


  일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보니, 할아버지가 앉으셨던 그 자리에 빨간 의자가 그대로 덩그러니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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