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스케줄이 있어 서둘러 집을 나섰다. 오늘 일정은 필름 공사라, 시끄러운 소음이 발생할 일이 없다. 필름 공사란 제품 수명이 남아 있는 마감재, 주로 문과 몰딩, 창호에 접착제가 붙어 있는 큰 테이프 같은 인테리어 필름을 붙여 내구성을 더하고, 전체적인 톤 앤 매너를 정돈하는 작업이다. 민원이 거의 없는 작업이라, 비교적 편하게 임할 수 있다.
새 공정이 시작하는 첫날엔 확인할 것들이 많아 바쁘다. 급해지는 마음을, 침착하게를 되 뇌이며 차를 몰아 무사히 지하주차장까지 도착했다. 주차 자리가 없어 약이 올랐다. 천천히, 침착하게. 주차장 두 바퀴를 돌아 벽에 일렬 주차했다. 차에서 내려 출입구에 보안카드를 대고 문을 열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입구가 소란스럽다. 무슨 일이지?
여성 두 분이 할아버지 한 분을 엘리베이터부터 차까지 이동하시는 것을 돕고 있다. 한 여성은 오른쪽에서, 다른 한 여성은 왼쪽에서 부축을 하고, 할아버지는 다리를 옮기려 애를 쓰신다. 할아버지는 당신의 두 발로 일어서려 안간힘을 쓰고 계시지만, 엉덩이 쪽으로 말려 올라간 다리는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문 앞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몇 생기고, 문은 자꾸 닫히고...... 엘리베이터에서 출입문을 지나 주차장까지 열 걸음이면 충분해 보이는데, 보기만 해도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방금 전 나에게 했던 말, “괜찮아요. 침착하게, 천천히 하세요.”라고 입에서 흘러나온다. 얼마나 진땀이 날까. 나도 돕고 싶다.
왼쪽에 서 있는 여성은 “아빠, 한 걸음만 더, 저기 가까운데 있어요. 저기 보이잖아.”를 3초마다 말하고 있다. 오른쪽에 서 있던 여성은 낯선 억양으로 “할아버지, 일어서 봐요.”하며 몸을 일으켜 세우려고 안간힘을 쓴다. 두세 걸음쯤 다리를 옮기며 가까스로 바닥을 흐느적거리던 할아버지의 두 다리는, 움직임을 포기하고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두 여성은 어쩔 줄 모르고, “의자, 의자.”, “의자, 의자.”하고 의자를 찾는다. 엘리베이터 앞엔 빨간 의자가 놓여 있다. 익숙한 디자인의 플라스틱 유아용 의자다. 눈치를 살피다, 얼른 의자를 가져와 어르신의 엉덩이 아래에 의자를 놓았다. 혹시 앉으시다 가벼운 의자가 휙 뒤집혀 넘어지실까 싶어, 할아버지 몸이 의자 위에 잘 안착해 몸무게가 느껴질 때까지 나는 빨간 의자를 힘주어 밀었다.
할아버지는 겨우 의자에 앉으시고, 땀이 뻘뻘 나는 두 여성은 숨을 고른다. 엘리베이터 출입구 바로 앞에 차가 주차되어 있고, 차문도 이미 다 열려 있는데. 두 발로 걸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겨우 열 걸음이나 될까. 차문까지 가는 일 이 미터의 거리가 몇 만 년처럼 느껴진다. 외면하고 싶지만, 결국 누구에게나 다가올 일......
일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보니, 할아버지가 앉으셨던 그 자리에 빨간 의자가 그대로 덩그러니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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