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재경 Nov 20. 2019

자기만의 방법

속도와 능률을 올리면서도 재미있게!


우리 동네 구멍가게

  집에서 대문을 나서 골목 끝까지 걸어가, 큰길을 만나면 왼쪽으로 50걸음쯤 걷는다. 바로 그곳에 구멍가게가 하나 있었다. 나무 프레임에 투명한 유리가 끼워진 미닫이 문을 오른쪽으로 밀어 열고 가게에 들어가면, 마주 보이는 곳에는 작은 방이 하나 있었다. 그 방의 문은 하얀색 창호지가 발린 미닫이 문이었다. 군데군데 구멍이 숭숭한 문. 그 문은 갈 때마다 열려 있었다.


  그 방에서는 텔레비전 소리가 흘러나왔고, 가끔은 까만 소반 위에 밥상이 차려져 있을 때도 있었다. 방 너머로는 장미 그림이 그려진 핑크색 밍크 담요와 노란 장판, 아무렇게나 접힌 신문이 보였다.


  그 방 앞쪽으로는 과자가 박스채로 높이 쌓여 있었다. 그 앞쪽으로는 넓게 펼쳐진 매대가 있어, 과자가 한 두 봉지씩 놓여 있고, 그 앞쪽으로는 껌이나 쫄쫄이 같은 작은 봉지의 주전부리들이 누워있었다. 벽에는 여러 개의 칸이 나누어진 벽장 안에, 과자들이 꽉 차 있었다. 새우깡, 양파깡, 스위티 같은 과자들 사이에서 한참을 고르다 보면 손바닥 안의 오백 원짜리가 야속하게 느껴졌다.


  우리가 과자를 고르면 그 방에서 주인아줌마가 높은 구들장에서 다리를 내리고, 앞이 막힌 파란색 비닐 슬리퍼에 발을 끼워 넣고 나오셨다. 어떻게 우리가 과자를 고른 걸 아셨을까?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오백 원짜리 동전을 드리면 아주머니는 동전통에 동전을 탁 던져 넣으셨다. 보지 않고 던지는데도, 곧 동전이 출렁이는 소리가 들렸다. 골인! 그 구멍가게는 아주머니에겐 생계였고, 우리들에겐 군것질을 공급해 주는 금맥이었다.


  구멍가게의 디스플레이는 고객의 입장에서 보자면, 앞쪽으로는 부피가 작고 낮은 것부터 뒤쪽으로 갈수록 부피가 큰 과자까지, 한눈에 볼 수 있는 완벽한 진열 방식이다. 동네 구멍가게마다 정리하는 방식이 조금씩 달라 보물찾기 하는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편의점과 대형마트가 들어오면서 표준화된 편리함에 익숙해졌다.   


지금 우리 동네엔


  지금 우리 동네엔 도서관에서 나와 왼쪽으로 300걸음쯤 걸어가면 내가 좋아하는 빵집이 있다. 벽에는 새하얀 유광 타일을 붙이고, 시시 때때로 유산지에 주인이 직접 메뉴를 써 붙인다. 빨강 파랑 마스킹 테이프 같은 소소한 디테일도 그렇지만, 어딘가 파리의 느낌이 난다. 자기만의 소울이 느껴지는 비즈니스. 버터를 잔뜩 넣고 굽는 스콘의 한결같은 맛도 사랑스럽다.


   일 이주에 한 번씩은 들러 스콘과 샌드위치를 말아 테이크 아웃한다. 잠깐이지만, 가게 안의 시트러스 케이크와 단호박 러스크 같은 빵의 야무진 매무새를 보고 있자면 마음도 단정해진다. 그날따라, 내 마음을 사로잡은 건 내부를 흐르는 음악이었다. 부드럽고 따뜻했다. 이 소리가 어디서 들리는지 찾아보니, 새로운 살림살이가 보인다. B&W의 스피커가 등장했다.

  

  음악이 주는 포근함에 기분이 좋아져 관찰하다, 오디오가 올라가 있는 장식장에 눈길이 간다. 분명히 자주 보던 것인데. 까맣고 바퀴가 네 개 달려 있는 트레이다. 작업용 운반 카트인데, 손잡이가 없다. B&W 오디오를 작업용 카트 위에 얹고, 손잡이를 분리해 오디오 장으로 사용했다. 오호라! 이런 실용주의적이며 창의적인 사고에서 품질과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더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만들도록 노력할 거라는 마음이 느껴진다.


  온라인과 IT가 모든 것을 다 알아서 해 줄 것만 같은 세상이지만,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전문가들의 고심한 흔적을 느낄 때마다 역시 사람이 매력적이다. 오늘은 철물점에서 페트병을 잘라 높낮이를 다르게 해 나사를 수납하는 박스를 만났고, 전기 사장님의 컬러풀한 자재 보관함을 만났고, 목공소에서 벽에 붙여 놓은 계산기를 만났다. 작업의 속도와 완성도를 올리는 자기만의 방법. 그러면서도 일을 즐겁게 하는 노력. 아마, 이런 건 우리만 할 수 있지 않을까.


http://modernmother.co.kr

  http://modernmother.kr

http://instagram.com/modernmother.co.kr


작가의 이전글 빨간 의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