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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Nov 27. 2019

엄마의 이사

엄마의 이사


"아이참... 빨리 팔고 넘어오시면 좋겠는데......"

"당신은, 왜 그렇게 강요를 하고 그래. 부모님께서는 그 집에서 좋은 추억이 많으니까 옮기시기 싫으실 수도 있잖아."

"엄마, 나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이해되는데. 집에 얼마나 정이 많이 드셨겠어."


  엄마는 서울 끝자락에 있는 아파트에서 31년째 쭉 살고 계신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엄마가 계신 곳까지는 물리적 거리가 한 시간 남짓. 차가 막히면 두 시간도 걸린다. 한창 일하고, 아이를 키우느라 시간을 분으로 쪼개 써도 모자란 나 대신, 엄마는 버스를 타고 두 시간 가까이 걸려 우리 집에 오신다. 먹을 것을 가득 담은 카트를 끌고. 엄마는 사회적으로 성장하며, 아이도 키우고, 그 많은 식물들을 보살피느라 얼마나 힘드냐며, 오히려 나를 걱정하신다.


  나는 엄마 집에 가보지 못 한 지 일 년도 넘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이사가, 스물여덟 살까지 살았던 그 아파트에서 막냇동생이 태어났고, 그 막내가 올해 결혼을 했다. 그 집에서 엄마 아빠는 딸 셋, 아들 하나를 모두 짝 지어 보내셨고, 이제 다시 두 분만 남았다.


  태어나고, 자라고, 어른이 되고, 늙어가고, 다시 땅으로 돌아가는 게 인간의 삶이라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다. 자주 뵙는 시부모님이나 우리 엄마 아빠야 한결같은 모습으로 느껴지지만, 오랜만에 뵙는 어르신들이 점점 늙어가시는 걸 보면, 숙주가 햇빛 아래서 마르는 속도처럼 빨라 당황스럽다. 아이가 볼 때마다 쑥쑥 자라는 것처럼, 어르신들은 뵐 때마다 시들어 가신다.


  앞으로 얼마나 더 뵐 수 있을까. 계실 때 말이라도 한 마디 더 친절하게 하고, 밥이라도 한 번 더 먹어야겠다 생각하면서도 둘 다 시간과 마음을 많이 써야 하는, 에너지 집약형 서비스라는 점에서 애로사항이 있다. 우리 세대는 마음을 표현하는데 서툰 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더하다. 그저, 밥 잘 먹고 다니냐는 인사가 가장 중요했던 시대. 사랑하는 피붙이를 안아 보는 게 서먹했던 시대.


  한 번이라도 더 뵙자는 마음으로 엄마 아빠를 설득해 집을 팔았다.


  엄마가 마음에 드는 아파트를 찾았다며, 계약하러 가신다 해서 따라나섰다. 그 아파트는 언덕 위에 있고, 지하철 역에서 한참 걸어야 하고, 층도 높다.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딘가 어둡다. 이사 열일곱 번으로 쌓인 나의 직감은 분명히, 여긴 아니라고 사이렌을 울리고 있다. 가격 흥정이 안 되는 틈을 타, 뜨끈한 샤부샤부를 사 드리며, 다른 집도 한 번 보러 가자고 설득했다.


  배를 두둑하게 채운 다음, 평지에 있는 아파트를 몇 군데 돌았다. 다행히 엄마의 가장 중요한 조건, 맞바람이 치는 정남향이고, 베란다가 있는 집이 예산 범위 안에 있었다. 넓은 거실 창으로, 나무가 가득 보이는 밝고 환한 집이다. 집에서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 걸 보면 통풍도 잘 되는 집이다. 다행히 엄마 마음에도 쏙 들었다. 지하철 역은 더 가깝고, 평평한 길이라 마음이 놓인다. 기운이 좋다.

인테리어 인문학


"니가 고쳐 줘."

"네, 엄마."

"싸고 좋은 걸로."

"새시는 바꿔야지. 그래야 바람이 술술 안 들어오고 겨울을 뜨뜻하게 날 수가 있지. 튼튼한 걸로. 이중창 하이새시로 해야지."

"또 엄마?"

"거울은 만년 묵기로 쓸 수 있고, 김이 잘 서리지 않는 보오미 거울 같은 걸로 해 주고, 싱크대 앞에는 바람이 불지 않게 스펀지를 한 장 붙이고 장을 붙여주고, 베란다는 칠을 해 줘야지. 잘 안 벗겨지는 튼튼한 걸로."

"싱크대 대리석 색상은 어떤 게 좋으세요?"

"흰색에 검은색이 좀 들어가서 얼룩이 좀 안 생겨 보이는 게 어때? 그러면서도 밝은 게 있나?"

"검은색이 들어갔는데 밝은 거라니요?"

"하하하하. 말이 안 되나?"

"욕실 수도도 바꿔야지. 시원하게 물이 나오면서도 머리가 돌아가는 걸로 해 줘. 변기도 물이 쏴 내려가는 게 최고야."

"한옥 느낌이 좀 나면 좋겠기도 하고......."


 저런 추상적인 표현을 실물로 구현하는 건, 내가 딸이라서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엄마의 요구조건은 엄마의 삶을 담은 인문학이다. 31년 만의 이사. 엄마가 원하시는 걸 최대한 맞춰 드리고 싶다. 내가 만들 공간에서 생활하게 되실 엄마와 아빠. 이젠 엄마 집과 내 집의 거리가 1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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